한 여자의 삶이 남긴 최후의 진실
<듄>, <컨택트>로 거장의 대열에 들어선 드니 빌뇌브 감독의 초기 걸작 <그을린 사랑>이 4K 리마스터링되어 6월 25일에 재개봉한다. 드니 빌뇌브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관객이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그을린 사랑>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할 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는 영화다.
알 수 없는 중동의 어딘가에서 어린 소년들이 머리를 깎이는 장면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한편 현재의 시간에서 캐나다에 사는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그녀의 유언을 듣게 된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렇다 - 만나지 못한 형과 아버지가 있으며, 그들을 찾아가 각각 봉인된 편지를 전해야 한다는 것. 외면하는 시몽을 뒤로하고, 잔느는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해나간다. 그렇게 영화는 두 개의 시간축을 오간다. 과거의 시간에서는 나왈의 청춘이 펼쳐지고, 현재의 시간에서 이를 뒤늦게 알아가는 잔느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이 한 여인의 삶을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는지를 감히 짐작해보게 된다.
나왈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이슬람계 청년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한다. 가족의 명예를 이유로 그녀의 오빠들은 나왈의 연인을 나왈이 보는 앞에서 살해한다. 그들은 나왈 또한 살해하려 하지만 나왈은 겨우 살아남아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이도 마찬가지로 종교 앞에서 무력했다. 가족은 그녀의 아이를 강제로 그녀와 떼어놓는다. 그러나 나왈은 기독교를 여전히 믿는다. 그녀의 믿음이 무너진 것은 아이가 보내진 고아원이 불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계속 아이를 찾기 위해 이슬람 버스를 얻어타고 가지만, 기독교 민병대에게 버스의 인원 전부가 살해당하고 기독교도인 나왈만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나왈은 그녀를 지탱해왔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게 된다.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며 이슬람 테러 단체에 합류하고,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직접 암살한다. 그 대가로 나왈은 감옥에 갇혀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문 기술자'에게 성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해야 했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들이 바로 이러한 그녀의 역사를 전혀 모른 채 성장한 잔느와 시몽이었다. 잔느는 가슴 아픈 어머니의 행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인생 또한 재구성한다. 한편 계속해서 이를 회피해오던 시몽은 잔느의 끈질긴 설득에 이끌려 나중에야 함께 과거를 향한 여행에 동참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20분에서 관객은 폭탄과도 같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나왈의 첫째 아들 '니하드', 감옥에서 나왈을 지속적으로 폭행했던 고문관이자 잔느와 시몽의 아버지 '아부 타렉'. 이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역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으나 전사로 길러진 후 기독교 단체로 인해 결국 어머니를 고문한 자가 되었다. <그을린 사랑>은 단순한 '반전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그을린 사랑>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반전' 영화다.
나왈은 니하드이자 아부 타렉에게 두 장의 편지를 남겼고, 모든 것을 알게 된 잔느와 시몽은 이를 그에게 전해준다. 한 편지는 고문관 아부 타렉에게 보내는 용서였다. 그리고 다른 한 편지는, 아들 니하드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사랑만이 가득한 편지였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불편한 진실만을 재현하는 데에서 영화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을린 사랑>은 나왈의 잔인하고 이해불가한 인생을 보여주며 계속 질문한다. 우리는 과거를 마주할 수 있는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진실을 품을 수 있는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영화의 원작은 레바논 태생 퀘벡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이다. 드니 빌뇌브가 극을 보고 충격을 받아 판권을 샀다고 한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5년 동안 영화화를 준비해 만든 <그을린 사랑>은 2010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개봉한지 15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이어지고, 종교적 갈등은 여전하다. 따라서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이미 끝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인물은 여성이다. 특히 여성의 몸은 고통받는다. 사랑 때문에 낙인이 찍히고, 감옥에서 무참히 고문을 당하며, 아이를 빼앗긴다. 영화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전쟁과 이념의 전장으로 이용되는지를 드러낸다. 나왈을 보며 나와 너무나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왈이 겪은 참혹한 일들을 쌍둥이 남매가 전부 알았어야만 했을까, 마음속에서 작은 토론을 해보게도 된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 중 어느 것이 옳을까, 곱씹게 된다.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 주기라도 하듯, 나왈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태어난 순간부터가 시작이라면 그것은 공포였을 테고, 너희 아버지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편지는 두 장이었지만 한 장이었다. 무거운 진실을 마주하고 사랑을 선택한 나왈은 순교자가 되었다.
진실을 향한 여정은 왜 중요한가? 그 여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제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이란다.'로 끝났던 나왈의 편지를 잊을 수 없다. 평생 아들을 그리워했던 마음, 앞으로의 자식들이 누릴 행복을 빌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득했다.
최근 '기독교를 믿는 연예인이 절에 가서 들은 말'이라는 제목의 쇼츠를 우연히 본 적 있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독교를 믿는 연예인이 지나가듯, "저 기독교인데, 괜찮겠죠?"라고 하자, 절 앞에서 안내해 주시는 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교회는 사랑이고 불교는 자비예요. 다 한 길이야."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서로 다른 길 같지만 결국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하나라는 것. 종교, 전쟁, 이념, 심지어 고통스러운 진실까지 결국 사랑 앞에서 다시 읽힌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는 6월 25일, 6.25에 개봉하는 <그을린 사랑>은 그 모든 무너짐을 지나, 이해와 사랑의 가능성을 묻는 영화다. 사랑은 그을릴지언정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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