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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괴로움 속에서도 무대를 찾는 이유

연극 '삼매경' - 배우의 실제 기억을 엿보다

by 채수빈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위 ‘작두 타는’ 순간의 희열을 잊지 못해서다. 처음에는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과 그런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의식하며 머리를 싸맨다. 그러다 점점 봉인이 풀리듯 손이 빨라지고, 글이 마무리되어갈 즈음엔 손이 키보드 위에서 날아다니듯 춤을 춘다. 이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 나는 매번 툴툴대면서도 기어이 글로 옮기고 싶은 글감들을 찾아 헤맨다.


이와 개념적으로 비슷한 것이 달리기에서 말하는 ‘러너스 하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어느 순간을 넘기면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내가 나를 잊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온전히 느끼는 순간이다. 글쓰기와 달리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한 번 그 몰입의 맛을 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다시 그 순간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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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자꾸 무대 위를 찾는 이유도, 어쩌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연극 <삼매경>은 바로 그 ‘몰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가 자신을 잊으려 애쓰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피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마주하는 순간을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다.


<삼매경>은 구조가 독특한 극이다. 1939년 초연된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바탕으로 재창작된 메타 연극으로, 원작의 서사 위에 배우의 실제 기억이 덧입혀져 있다. <동승>은 깊은 산속,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자승 도념을 중심으로 불성과 인성, 욕망과 금기의 갈등을 다룬, 한국 낭만주의 희곡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우의 실제 기억’이란, 1991년 연극 <동승>에서 도념 역을 맡았던 배우 지춘성이 다시 무대에 올라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34년이 지난 지금, 그는 ‘도념’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 무대에 선다. 관객은 돌아온 도념의 기억과 실패, 욕망과 시간, 현실과 무대를 교차해 보며, 마치 윤회하듯 반복되는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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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은 원작의 서사 구조 위에 자전적 서사가 덧입혀진 극이다. 관객은 함세덕의 원작 <동승>, 1991년 지춘성 배우가 연기했던 <동승>, 그리고 오늘날의 <삼매경>을 모두 함께 경험한다. 그래서 극이 끝나면 마치 여러 편의 연극을 동시에 본 듯한 감각이 남는다. 언어, 상징, 사건이 서로 공명하며 울리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가고픈 욕망을 지닌 어린 동자승의 이야기는 배우라는 직업과 묘하게 닮아 있다. 34년 전 자신의 연기를 실패로 여겨왔던 지춘성 배우는 과거와 현재, 무대와 현실의 경계에서 다시 그 배역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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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념을 연기했던 배우는 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나는 그가 메소드 연기를 추구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해서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소드 연기는 배우가 배역에 깊이 몰입하여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까지 투영하는 연기 기법이다. 이 과정에서 배우가 배역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거나 심리적으로 고통받게 되는 위험이 따른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메소드 배우와 정신분열증 환자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연기 방식은 때때로 이상한 모습을 보이게도 만든다. 그만큼 정신적, 감정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되는 기법이다. 결국 메소드 연기를 지향한다는 것은, 배우 본인이 그로 인해 동반되는 리스크에도 베팅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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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경> 속 배우 역시 현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저승길로 걸어들어가 삼도천을 건넌다.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자아와 역할,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삼매경’ 그 자체다. 비록 논란이 많은 연기법이지만, 나는 메소드 연기의 가장 큰 장점도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엄청난 연민을 갖게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배우는 물아일체를 지향하며 인물의 상처와 외로움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자신 안의 상처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연기를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그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관객에게 계속 손을 내밀고,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깊이 연결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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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드 연기의 끝은 ‘나를 비워내는 일’이다. 타인의 삶을 입고 나를 내려놓을수록, 나는 점점 더 확장된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연기를 하며 배우는 것은 결국, 진짜로 살아가는 법이다. 이것은 연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짙게 스며드는 불교적 세계관과도 닿아 있다고 느꼈다. ‘무(無)’, ‘공(空)’, ‘열반(涅槃)’ 같은 개념들이 대사 속에서 반복되며, 무대는 배우가 승천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국립극단에서 올린 또 다른 극, 고선웅 연출의 <유령>이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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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춘성 배우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광기 어린 행동을 일삼는 순간, (그의 상상 속에 있는) 주지스님이 그를 위로할 때. 배우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하며 연기를 할 때, 그는 도리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게 위로받는 지점에 다다른다. 그는 결국,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게서 위로받는 경지에 이른다. 배우가 배역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이 역전의 순간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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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왜 이토록 고된 일을 반복하는 걸까. 왜 자신을 소멸시키며, 역할이 되기 위해 발악하듯 몰입하는 걸까. 김혜리 영화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의 일은, 내가 가장 잘 견딜 수 있는 고문이다.”<삼매경>은 단지 배우의 이야기, 연극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창작자’라는 이름으로, 혹은 ‘꿈’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온 모든 것들의 삶의 굴레, 실패의 기억, 끝없는 반복과 좌절을 다룬다. 그래서 연극이 끝날 즈음, 이 작품이 특별한 공감을 끌어내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삼매경>은 기꺼이 삼매경에 빠지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연극 마지막 장면에서 지춘성 배우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어떤 날, 이 연극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 쉬워 보이지만, 실은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은 어느 날 밤이면 <삼매경>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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