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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사족일 뿐, <스탑 메이킹 센스>

콘서트 필름의 명작 <스탑 메이킹 센스> 재개봉

by 채수빈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날 수 없다면, 이 영화가 당신을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공연은 곡 소개도, 인터뷰도, 설명도 없이 시작된다.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고, 보컬 데이비드 번이 카세트 플레이어와 기타 하나를 들고 등장해 첫 곡 'Psycho Killer'를 부른다. 이어서 밴드 멤버들이 하나씩 합류하고, 조명과 무대 장치가 곡 1개를 완곡할 때마다 차례로 쌓여간다. 멤버들이 한 명씩 등장하는 만큼, 시각적인 몰입감도 점차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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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혼자 나타나 기타를 치고 발을 구르는 데이비드 번. 그는 홀로 하는 퍼포먼스 자체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음악과 움직임이 하나씩 더해지자 무대는 점점 완전해지고, 압도적으로 변한다.


<스탑 메이킹 센스>는 토킹 헤즈의 콘서트 필름이다. 영화는 오로지 무대 위 퍼포먼스에 집중하며, 러닝타임 내내 음악으로만 장면이 채워진다. 인터뷰도, 배경 설명도 없다. '왜 이 곡을 불렀는지'도, '무대는 어떻게 구성됐는지'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음악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공연 실황 그 자체에 집중한 '콘서트 필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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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감독 조나단 드미는 1979년부터 토킹 헤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토킹 헤즈의 무대에서 프런트맨 데이비드 번의 무대 매너에 특히 반했다. 드미는 데이비드 번이 풍기는 퍼포먼스가 실제로 마치 촬영을 기다리는 영화같이 느껴졌다고 인터뷰했다. 이후 드미 측이 먼저 콘서트 필름 제작을 제안했고, 토킹 헤즈는 음반사 대신 자비로 120만 달러를 투자해 독립적으로 제작을 진행했다. 이 덕분에 밴드는 창작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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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일반적인 콘서트 필름은 팬들을 위해 공연 장면, 관객 반응, 뮤지션 인터뷰 등을 담는다. 특히 아이돌들의 영화는 그러한 특징이 필수적인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스탑 메이킹 센스>는 관객 모습이나 인터뷰 없이, 오직 음악과 비주얼로만 구성됐다. 이는 데이비드 번의 아이디어였으며, 단순한 공연 기록이 아닌 하나의 '영화'로 기획되었다. 덕분에 토킹 헤즈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팬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팬이 되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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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탑 메이킹 센스>는 음악 제작 과정이나 밴드 내 의사결정 구조를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해석 없이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제목처럼 '의미 부여를 멈추는 것의 의미'를 전한다. 모든 콘텐츠가 해설되고 분석되고 요약되는 지금 시대에, 이 영화는 오히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감정과 리듬을 남긴다. 콘서트 필름이 어쨌든 '공연 녹화본'이 아니라 '필름'인 이유는, 관객이 음악을 눈으로 보며 서사를 느끼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다시 보는 차원을 넘어선다.


오랜만에 1열에서 영화를 감상했는데, 스크린이 더 가깝게 느껴진 덕분에 어느새 나는 극장 속 관객이 아니라 실제 스탠딩석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느껴본 생생한 몰입이었다.


토킹 헤즈의 음악 자체도 콘서트 필름의 속성과 매우 잘 어울리기도 했다. 뉴웨이브의 대표 밴드인 그들의 음악은 가사가 특히 재미있다.



fa fa fa fa fa fa fa fa fa fa

run run run run away

- Psycho Killer



Home is where I want to be

But I guess I’m already there

-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



You may find yourself in another part of the world

...

And you may ask yourself, well,

How did I get here?

- Once in a Lifetime


콘서트 필름 <스톱 메이킹 센스> 속 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들이다. 관객에게 해주는 말 같기도 했던 가사들.


최근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발매한 솔로 앨범, [EROS]의 전반적인 무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최근 발표한 그의 솔로 앨범은 의도적인 난해함과 설명하지 않음이 매력이다. 음악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하려는 태도가 토킹 헤즈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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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탑 메이킹 센스>를 보며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해방감'이다. 이 신나는 노래들 속에서 허무함도 느끼고, 유머 포인트도 느끼며 마지막엔 어쩐지 위로를 느꼈다. 옛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아니다. 나는 요즘 '해석노동'에 지쳐 있었다. 무언가를 꼭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예술, 모든 것이 '콘텐츠화'되는 때에 오히려 ‘의미 없음’으로써 감정을 건드리는 예술이 필요했다.


더위에 지쳐 아무 생각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면, 어느덧 무생물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아졌다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못 찾겠다면? 시원한 곳에서 <스탑 메이킹 센스>를 감상해 볼 것을 추천한다. 어느새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며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릴 테니.


*본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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