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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이야기가 스릴러인 이유

영화 <수연의 선율> : 지금 아이들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by 채수빈

내가 봤던 독립영화들의 공통점은 어딘지 모를 스산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그 화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서스펜스가 넘친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일상적인 것들이 위협처럼 다가오는 리듬을 펼쳐 보인다. 특히나 아이들의 시선을 다루는 영화라면 내 심장은 더 조여든다. 한없이 여린 생명체가 화면 안에 있는데 이 아이에게 어떤 생채기가 나지는 않을까, 끝까지 조마조마하게 보게 된다. 어여쁜 아이들의 이야기인 <수연의 선율>의 장르가 스릴러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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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세상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은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질서나 판단, 윤리, 시스템, 감정 표현 방식, 말투, 태도, 침묵, 거리 같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설명 없이 화내고, 혼내고, 그냥 아이들이 알아서 적응하길 바란다. 아이는 길을 잃었는데,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아무도 그 아이가 길을 잃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세상은 자기 일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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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선율>은 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주인공 수연은 열세 살.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집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 그대로 남고 싶지만, 세상은 자꾸만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연은 보호자를 스스로 찾아보기로 한다. 그러다 유튜브 브이로그 속 ‘이상적으로 보이는 가족’을 발견한다. 입양된 아이 선율, 다정한 엄마, 든든한 아빠, 환한 집. 아침 식사와 따뜻한 대화가 흐르는 영상은 수연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수연은 조심스레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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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연의 보호자 만들기 작전이 시작된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선율을 뒤따라가며 친해지고,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유리와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유리가 갈치를 좋아한다고 하자, 수연은 갈치조림을 직접 요리해 들고 간다. 중학생이 채 되기도 전의 아이가 매일매일 긴장된 표정으로 유리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은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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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작전은 통한다. 유리는 수연에게 관심을 보이고, 아이들도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가족은 어딘가 수상하고, 수연의 노력은 마치 사활을 건 취업 준비처럼 보인다. 포트폴리오를 내고 면접을 보고, 노력 끝에 통과한 그 ‘가족’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유튜브 안에서만 가능한 이상적인 이미지였다. 수연이 입양되자마자, 부부는 한밤중에 도주하고, 수연은 선율과 단둘이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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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을 데리고 다시 원래 지내던 재개발 아파트로 돌아온 수연. 그녀는 선율을 몇 번 곁에서 떨어뜨릴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그러지 않는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되는 장면들이다. 수연은 툴툴대면서도 선율을 돌본다. 그렇게 얼떨결에 아이를 돌보게 되면서, 수연은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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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던 수연은, 선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바람처럼 날아와 그를 지킨다. 선율도 마찬가지로, 악몽을 꾸는 수연을 밤새 곁에서 보살핀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보살피는 존재가 됨으로써 자기 존재가 더 또렷해진다. 어쩌다 만난 수연과 선율이지만, 존재에 대한 확인을 주고받는다. 수연이 살던 동네는 곧 재개발될 예정이다. 더 나은 집을 위해 지금의 보금자리를 허무는 세계 안에서 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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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보호’와 ‘돌봄’을 다르게 정의한다. 보호는 제도라면, 돌봄은 관계이다. 보호는 통제를 위한 것이고, 돌봄은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어른이 되어도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유는 충분히 돌보아지지 못한 어린 시절에 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면 결국 누군가를 실망시킬 것 같다’는 어그러진 마음은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다. 영화 내내 사랑받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의 초조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사랑에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된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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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룡 감독은 교사로 일하던 시절 만났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은 어떤 불안을 품고 있을까. 지금 아이들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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