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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듣는 방법

말하지 않은 것을 듣고자 하는 마음

by 채수빈

'맆소녀'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초록빛의 잎사귀다. 어린 아이는 '맆'처럼 파릇파릇하지, 라고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잎'이 작중에선 '담뱃잎'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까이는 담뱃잎을 따며 살아가는 소녀이자,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는 '잎'이다. <맆소녀>는 까이의 실종과 귀환의 이야기 속에서 폭력의 구조와 침묵의 공범성, 기억의 연대 가능성을 탐구한다.

1. 맆소녀(The Silent One) - 극단 생존자프로젝트 - 포스터 370 520.jpg

소아과 의사 연영은 NGO 활동으로 인도의 한 마을에 파견된다. 이곳은 불법 아동노동 농장이 존재하던 곳으로, 연영은 평생 담뱃잎을 따오던 어린 소녀 까이를 만난다. 까이는 거인증과 니코틴 중독을 앓고 있으며, 농장을 운영하던 어머니 시마는 체포된 뒤에도 “운명”이라며 까이의 수술을 거부한다.


한편 마을에는 수간 사건으로 소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 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말하지 않다가 극의 후반부에서 애타게 연영을 붙잡으며 수어로 표현한다. 그녀는 여덟 살임에도 강제 결혼 의례에 내몰리며 폭력의 소용돌이에 계속 잠식되어 간다. 홀리 축제의 혼란 속에서 시마의 방화, 명무의 과거 고백, 디네쉬의 몰락이 겹치며 사건은 정점을 맞는다. 연영은 과거의 트라우마와 방관의 기억을 직면하고, 까이와의 마지막 작별에서 서로 가슴에 손바닥을 얹는 몸짓으로 안녕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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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맆소녀>는 아동 학대, 성폭력, 종교적 운명론, 카스트 제도 같은 폭력들이 서로 얽혀 거대한 구조를 만든다는 점을 드러낸다. 한 개인의 상처가 또 다른 방관을 낳고, 결국 공동체 전체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조다. 그 원리는 바로 '침묵'이다. 결국 <맆소녀>의 부제 ‘The Silent One’이라는 제목은 피해자의 침묵, 방관자의 침묵, 그리고 사회 전체의 침묵을 동시에 가리킨다. 나의 상처를 말하지 못하고,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 두려움으로 인한 방관이 앞서는 사이 폭력은 견고해진다.


까이를 아껴주는 연영 역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침묵한다. 연영은 과거의 폭력이 몸에 남은 기억 때문에 행동을 멈추곤 했다. 그러나 까이와의 마지막 이별에서 손바닥을 맞대며 기억 속 아이를 이전처럼 무자비하게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반대로도 가능한 말 같다. 타인에게서 분명 잊고 있던 나를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혹은 내가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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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듣는 방법은 무엇일까? <맆소녀>는 언어보다 ‘몸’을 중심에 둔다. 까이는 말 대신 몸짓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연영은 아이들의 몸을 진찰하다 폭력을 발견한다. 무대 역시 대사량이 많기보다는, 형용사를 몸짓으로 표현한듯한 안무로 관객이 유추할 수 있게끔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눈치채는 것들이 있다. 결국 체념의 정적을 만들지 않는 것은 '관심'이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할 수 있다. <맆소녀>는 영상 매체가 아닌 무대라는 시공간을 공유하는 작품이기에, 우리의 관심을 더욱 촉구한다.


<맆소녀> 속 그들들의 침묵을 들은 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폭력의 구조를 단절시키는 첫걸음은 말하는 용기, 그리고 듣는 관심일 것이다. <맆소녀>는 관객에게 그 책임을 남기며, 무대를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질문을 던진다.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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