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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Sep 30. 2022

3. B씨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가 이혼했다, 마침내

엄마가 이혼했다, 마침내     


3. B씨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대학은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다. 가족들과는 어느새 명절에나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졌고그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미움도 옅어지게 만들었다.     


명절에 친척들과 교류하지 않게 된 즈음부터 우리 가족은 모일 때마다 성토대회를 열었다. 가족사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을 되짚으며 품었던 속마음들을 털어놓았다. 무슨 이야기든 피고는 주로 B씨였다. B씨도 이 시기에는 비교적 둥글둥글해져서 나름대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성토대회를 반복하며 아주 충격적인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B씨가 자신이 기소된 사안들에 대해 거의 공통되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여겨왔다는 점이다.     


자녀들과의 대화는 J여사가 하고 있으니 충분한 줄 알았다. 자녀들의 의식주를 챙기는 일은 J여사가 늘 하던 일이니 맡기면 되는 줄 알았다. 경제적 역할도 J여사가 해내고 있으니 빠듯하긴 해도 부족함 없었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집안 전부가 움직이긴 했으나 J여사가 뒷받침해주었으니 안정된 줄 알았다. 자녀들과 어릴 적 충분히 교감하지 못한 것은 이제 아이들이 다 컸으니 된 줄 알았다.      


그는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다른 이의 노력이나 상황의 변화로 문제들이 어떻게든 해결되었고그로 인해 자신의 책임이 발생하지 않았으니 그냥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충격적인 두 번째 사실은 이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던 가정사 중 큰 변곡점을 일으켰던 부분에 대해서 그의 아내인 J여사와도 충분한 소통이나 합의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돌배기를 친정에 맡기고 일터에 나갈 때도, IMF가 터진 해에 다시 학업을 시작했을 때도, 자신의 결정으로 가족 전원이 큰 두 번의 변곡점을 겪을 때도, 그는 늘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이해할 만한 명확한 이유나, 상대를 설득하려는 충분한 설명이나, 상대의 의견을 수렴하고 계획을 수정할 여지는 일절 없었다. J여사가 대학 시절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B씨는 한번 한다면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 탓에 J여사는 늘 혼자 감내해야만 했다. B씨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빠졌는지, 눈앞의 시련을 어떻게 홀로 해결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감내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최소한 그녀가 보기에 B씨는 여전히 성실하고, 아내에게 충실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녀의 수많은 질문에 B씨도, 그녀가 믿는 신도 늘 대답이 없었지만, 그저 이 길이 맞는 길이리라각자에게 맡겨진 역할과 사명이 있으리라그저 그렇게 믿었다.     


B씨가 자신의 노력 없이도 모든 것이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이 오롯이 J여사의 노력 덕분이었던 만큼, 그녀가 젊음의 동력을 잃고 이전처럼 홀로 감내하기를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부터 슬슬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의심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30년을 한결같이 자신의 수고를 당연히 여기고 꼼짝하지 않는 B씨를 이대로 두어야 하는지. 그런 의심이 점차 커지던 중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모든 믿음은 송두리째 뒤집어졌다.     


J여사는 배신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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