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와 시크한 바깥양반
비자발적 전업주부와 시크한 바깥양반
1. 1n년째 연애중, n년째 동거중
우리는 비자발적 남성 전업주부와 성실하고 착실한 여성 직장인 커플이다. 남성이 가사를 하고 여성이 직장에 다닌다는 사실에 대한 의문은 다소 구시대적이고 성차별적일 수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부부도 아닌 연인 사이에 실질적인 부양과 피부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의아함 역시 삶의 다양성이라 얼버무리고 넘어가기로 하자. 다소 의아하고 신기할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잘살고 있다.
대학 cc로 시작한 우리 사이는 어느덧 20대를 홀라당 까먹고 30대 초반을 질주하고 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저찌 잘 이겨내 왔다. 여전히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연애는 아니지만, 좋아 죽고 없이 못 사는 사이 같긴 하다.
동거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내가 20대부터 늘 자취를 한 탓에 거의 반 동거 같은 나날이 익숙했고, 직장 문제가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께 통보는 했어도 허락을 구하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 가운데 직장생활이 드문드문 짧게 이루어졌던 나와는 달리, 착실하신 바깥양반께서는 꾸준히 직장생활을 해오셨다. 바깥양반께서 긴 준비 끝에 원하던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하면서 잠시 떨어져 지낼 뻔하였지만, 어차피 백수인 나는 긴 고민 없이 바깥양반의 직장 근처(걸어서 5분) 거리로 이사를 단행했다.
합격과 이사까지 일주일 만에 집 알아보기, 대출 받기, 이사하기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이사 당일 바깥양반은 출근을 피할 수 없었고, 내 본가 식구들의 도움까지 받아 간신히 이사를 마쳤다. 이렇게 다소 성급한 결정을 한 것은 몇 년 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시기의 영향이 컸다.
내가 갑작스레 서울에서 꽤 떨어진 지방 도시에 취직하였고, 경기 외곽에 있는 자취방에는 주말에만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바깥양반은 자취방에 남겨진 고양이들을 위해 서울에 있는 본가를 두고도 경기 외곽에서 서울 중심지로 출퇴근을 하셨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인프라가 부족했던 신도시에서 서울 중심까지 빠르면 편도 1시간 반, 날씨 등의 영향으로 교통상황이 혼잡해지면 편도 3시간은 우습게 걸렸다.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렸던 날 바깥양반은 올림픽대로 위 좌석버스 안에서 5시간을 갇혀있었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함께 보낸 시간이 길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던 중 바깥양반께서 ‘안 가면 안 돼?’냐고 드물게 슬픈 얼굴로 물었다. 사실 그 질문은 매주 주말이 끝날 때마다 듣던 것이었는데도 이상하게 그날만은 달랐다.
그날 그 질문 하나로 갑자기 바깥양반이 지난 몇 년 간 혼자 감내해 온 아픔들이 오롯이 전해졌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나가야 하는 2시간 거리 출근길, 칼퇴를 해도 8시 반, 어쩌다 야근이나 회식을 했다간 사라지는 저녁 시간. 그렇게 돌아와 간신히 고양이들을 챙기고 잠드는 것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 팍팍함.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리면 나타나서 고작 하루 이틀을 형식적으로 시간 보내고 사라지는 미운 애인까지.
지금도 이 당시 아픔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가가 시큰해진다.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사람을 이렇게 방치했을까. 아무튼 그날로 바로 직장에 사표를 냈다. 당시 직장만큼 내 성격과 적성에 맞는 직업도 없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날의 결정에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덕분에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깨달았으니까.
아무튼 그 뒤로 가능한 바깥양반 옆에 딱 붙어 있으려 노력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전업주부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비자발적 전업주부와 시크한 바깥양반>은 평범하지만은 않은 속성들로 가득 찬 관계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평범한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사는 흔한 연인, 가족의 이야기다.
※ 바깥양반의 한 마디
너무 내가 발목 잡았다는 느낌의 글인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