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라고 영원히 살리라 믿은 것도 아니었는데
고양이라고 영원히 살리라 믿은 것도 아니었는데
1. 우리 하얀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대요.
우리는 연애 1년 차에 이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온몸이 새하얗고 정수리에만 검은 하트가 그려진. 파란색, 노란색 서로 다른 색의 눈이, 어린 시절 조물딱 거리던 유리구슬 같이 예쁜 아이를. 이 하얀 고양이의 나이를 샘하려면 당연시래 우리의 연애 연차를 떠올렸다. 그랬던 아이가 벌써 만으로 13살을 맞았다.
사료를 제대로 씹지 않는 것이 처음엔 그저 밥투정인 줄로 알았다. 평소에도 워낙 털이 찐 아이라 체중이 20%나 줄었다는 걸 저울로 확인한 뒤에야 척추뼈 굴곡이 쓰다듬는 손끝에 느껴지는 걸 알았다. 워낙 잔병치레도 없었던 터라 실로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찾아간, 친절하고 고양이를 잘 보기로 소문난 동네 병원 원장님도 영상 검사에서 뭐가 보이긴 하는데, 혈액 검사에 특이점이 없으니 큰일을 아닐 것 같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원장님은 우리를 2차 병원에 꼭 가보라고 소개해주었다.
예전에 누가 애완동물 CT, MRI 찍는다는 얘기를 듣고 혀를 찼었는데. 막상 내 일이 되어보니 그저 아무 일도 없기만을 기도했다. 보험도 없던 터라 검사비만 수십이 나왔는데, 그저 돈 낭비로 끝났으면 했다.
얘나 나나 같은 포유류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선생님이 쓰는 각종 단어, 장기의 명칭 등이 어찌 그리 익숙한지. 아, 심지어 병의 성격도, 죽음에 이르는 길도 비슷하구나. 아, 우리 아이가, 우리 하얀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구나.
명확한 진단을 위한 추가 검사의 결과는 예고했던 닷새를 넘기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병명을 검색하다가 울고, 병명을 검색하다가 울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다가 울고, 설거지하다 울고, 운전하다 울고, 이쯤이면 눈물샘도 마르지 않았을까 아 아니네 아직 나오네 하고 울고.
그렇게 검사 뒤 일주일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재택근무, 와이프는 퇴근 3시간을 앞두었을 때,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상담, 긴 사전 조사를 마친 덕에 긴 대화 없이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평소 루틴대로 소파에서 느긋하게 뒹굴던 하얀 고양이를 한참을 쓰다듬다가 이내 저녁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오늘 종일 출장 다니느라 점심도 과자로 때웠다던데, 일단 밥은 먹여야지. 그래, 밥은 먹고 이야기해야지.
와이프가 퇴근하고 식사를 함께하는 동안 속으로는 그저 식사를 마치기 전에 와이프가 검사 결과를 묻지 않기만을 바랐다. 굳어진 내 표정을 와이프가 눈치채지 못하기만을 바랐다. 내가 와이프보다 감정이 무디다는 사실이 이 순간만은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어차피 지금 울기 시작하면 밤이 새도록 멈추지 않을 텐데 밥은 먹어야 울 힘도 나지. 그래 밥은 먹어야지.
그날 저녁 아니, 밤이 되도록, 우리는 지난 일주일간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그러는 중에도 고양이가 이 눈물의 의미를 모른다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 하얀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결국 죽어가고 있는 것과 매한가지 이것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속도로 빠르게,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