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라고 영원히 살리라 믿은 것도 아니었는데
고양이라고 영원히 살리라 믿은 것도 아니었는데
2. 처음이 아닌데도 능숙하지 못하고, 처음이라고 마냥 서투를 수 없는
성인이 된 이후 비교적 가까운 가족을 둘이나 병으로 떠나보냈다. 결과로서야 아주 짧은 한 문장이지만 그 가능성을 인지한 순간부터 결과로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의 놓이지만, 선택에 도움이 되는 확실한 사실은 매우 드물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의 간격은 짧아지고 무게는 더해진다. 기어코 연이은 선택의 끝에 누구도 원치 않았던 불가역적인 결과를 맞닥뜨리고 나면, 덮쳐오는 후회들로부터 자신과 남은 가족을 지키는 일이 제출 기한 없는 막막한 숙제로 남는다.
처음으로, 그 슬픔과 고난들을 미리 겪은 것에 감사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아니 실제로 잠시 잠깐 틈이 날 때마다 바스라지고 있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내가 아주 약간이나마 나은 상태인 덕에, 함께 눈물 흘리는 와중에도 먼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먼저 토닥여주고, 먼저 눈물 닦아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먼저 겪은 고행이 선물해준 아주 약간의 평정심을 끌어모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설득했다. 이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말자고. 우리 곁에 하얀 고양이를 붙들어놓기 위해 괜스레 괴롭히지 말고,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자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엄마 손에 이끌려 여러 병원과 치료시설을 전전하던 외할머니를 떠올려야만 했다. 적어도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라는 교각이 있었지만,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하얀 고양이에게 그 고된 과정을 납득시킬 수단이 없었다. 우리의 간절함이 욕심이 되고, 아이에게 고통이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 뒤에 남을 숙제가 너무 무서웠으니까.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에 대해 조사하고, 검사 결과를 ai에게 입력하며 분석하고, 여러 병원에 자문을 구했다. 그래도 내 설득 덕인지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한 노력을 탓하거나, 우리의 현실을 원망하는 일은 적었다. 그거면 되었다. 어차피 슬픔이란 각자 소화해야 할 몫과 방식이 있는거니까.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닥쳐오는 슬픔의 크기는 매 순간 우리를 압도했다. 점점 두드러지게 만져지는 하얀 고양이의 뼈마디,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밥그릇, 점점 늘어가는 약봉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검사 결과 속 여러 숫자들 같이 변화한 일상에서도. 우리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는 착한 발걸음, 손만 닿으면 들려오는 그르릉 소리,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맞아주는 소파 위 모습처럼 늘 그대로인 일상에서도. 슬픔은 그렇게 너무 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마다 우린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상을 붙들기 위해 의연히 일어나야만 했다. 나는 이미 겪어본 슬픔임에도 전혀 능숙하지 못했고, 그녀는 처음 맞는 슬픔임에도 마냥 서투를 수 없었다. 우리 품 속 하나의 생명이 점차 꺼져가고 있다는 무거운 현실 앞에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놓치면서도, 막연히 해야 할 것들을 꾸역꾸역 챙겼다.
병, 아픔, 슬픔 따위의 것들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