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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Jun 19. 2024

이제는 떼고 싶어

소란

"운전면허 있어?"

"응.“

"소리를 못 듣는데 어떻게 운전을 해?"

“……”


운전을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면허 있나는 질문이 나온다. 면허가 있다는 나의 대답에 의아한 표정으로 '운전할 수 있어? 어떻게?'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벙찐 표정을 지은 채 욱하는 마음으로 '면허를 땄으니까 운전을 하죠.'라고 받아친다. 가끔은 호기심 뒤에 숨어 무례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청인을 마주할 때면 씁쓸해진다. 거기다 운전을 아주 잘한다고도 받아치고 싶었지만 현실의 나는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장롱면허 보유자였다. 면허를 딸 때만 해도 내가 장롱면허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수험생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한달 남짓 남은 시점에 어른이 되면 무엇부터 할지 목록을 써 내려갔다. 염색하기, 술집 가기, 여행 가기, 운전면허 따기 등을. 그중에서 제일 먼저 도전한 일은 운전면허를 따는 거였다. 운전을 고른 이유는 딱히 없었다. 놀이공원에 가면 꼭 타는 기구가 범퍼카였는데, 차 운전이 범퍼카 운전과 크게 다를 거 같지 않아서였다.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나의 결정에 시득씨가 굉장히 불안해했다. 꼭 따야겠냐고, 본인이 태워주겠다고 온갖 말로 회유하던 시득씨는 완강한 딸의 태도에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그렇게 나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운전 학원을 등록하였다.

학원 등록 첫날부터 이론 수업을 들었다. 깜깜한 강의실에서 빔 프로젝터 스크린에서만 빛이 나오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운전자로서 알아야 할 기본 상식과 주의해야 할 점을 글과 그림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장내 기능 시험과 도로 주행 시험을 위해 동영상을 보여줄 때부터는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내가 곧 운전대를 잡다니, 진짜 어른이 되는 거 같아서.


수험생으로서 큰 숙제를 해치우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던 열아홉살의 나는 필기시험을 가뿐하게 통과하고, 기능 연수 날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대망의 기능 연수 날, 직접 운전대를 잡은 기분이란 마치 내가 카트라이더 게임 속의 캐릭터가 된 거 같았다. 다만 현실의 운전은 게임과 달리 무거운 책임감이 따랐다. 아무리 차를 험하게 몰아도, 장애물에 부딪쳐도 멀쩡한 게임과 달리 현실은 내가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동승자의 목숨, 손해 배상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감과 별개로 운전 자체가 재미있었던 나는 강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고,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기능 시험도, 도로 주행 시험도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하였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즐기면 못할 일이 없구나라고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운전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크나큰 착각이자 자만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기세등등했던 나는 시득씨에게 운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득씨는 고민 끝에 비장한 태도로 “그래. 가보자”라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나는 집 주차장에서부터 운전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시득씨는 한적한 동네로 가서 연습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득씨는 사람도 차도 드문 동네로 갔다. 시득씨의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장소에 도착하니 내가 이토록 시득씨에게 신뢰가 부족한 자식이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곧 운전할 생각에 설레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주차장에서의 짧은 주행으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시득씨에게 도로로 나가고 싶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의 눈빛이 간절했는지 시득씨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득씨의 허락을 받은 나는 당차게 도로로 나갔다. 그렇게 나는 한적한 도로를 나에게는 느린, 시득씨에겐 빠른 속도로 달렸다. 옆에서 시득씨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딸을 위해서 손짓으로 열심히 말을 했다. 한 손으로는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들거나 방향을 가리키는 손짓을, 한 손으로는 좌석의 손잡이를 잡은 채로. 특히 시득씨는 속도를 줄이라는 손짓을 자주 했다. 시득씨에게 보조 브레이크 장치가 있었더라면 몇 번이고 브레이크를 밟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가 운전을 하면 할수록 시득씨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도로 주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선 길목으로 빠져야 했는데, 길목에서는 공사 탓에 포클레인이 세워져 있었다. 포클레인을 의식하며 조심히 잘 지나왔다 생각했는데, 시득씨의 표정을 보아하니 잘 지나온 거 같지 않았다. 표정의 의미를 물어보니 “차 긁을 뻔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조금 더 가다가 시득씨가 차를 세우라는 손짓에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시득씨는 한 마디를 했다. “내리라.”

자리를 바꾼 후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던 나는 시득씨에게 어땠는지 물어봤더니, 속도 줄이라. 시선을 넓게 봐라. 차선 잘 지키라. 고쳐야 할 점을 하나둘 나열하더니 마지막에는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운전 초반에 비해 지친 티가 역력한 시득씨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의 운전 실력이 썩 좋지 만은 않구나라고 깨달았다. 운전 학원에서의 나는 학원의 정해진 코스 대로 운전하는, 주입식 교육에 단련된 수강생이었던 걸 재능이 있는 걸로 단단히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시득씨는 나에게 운전을 권하지도, 운전 연습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면허를 따고도 운전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점점 감을 잃어갔고, 그렇게 장롱면허 보유자가 되었다.


면허를 딴 지 십여 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장롱면허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핑계를 대자면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운전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장롱면허로 지내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면허가 있냐는 질문이 무섭게 느껴진다. 면허가 있다는 이유로 운전을 시킬까 봐 쫄려서다. 가끔은 친구들과 차를 빌려 여행을 갈 때 교대를 해야 하거나,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대신 운전해 줄 사람을 찾는 상황이 올 때면 동공이 흔들린다. 마음만큼은 멋있게 ‘내가 할게’라고 외치고 싶지만 내 몸뚱아리는 너무나도 정직해서 긴장되는 반응을 숨길 수가 없다.


열아홉살의 나는 대체 무슨 깡으로 운전을 하고 면허를 땄을까. 미디어로 차량 사고를 간접적으로 많이 접한 나는 이제는 도로가 전쟁터 같은데, 어떻게 열아홉살의 나는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열아홉살의 패기였을까. 하지만 이제는 장롱면허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다. 도로는 여전히 무서운 곳이지만 취했으니 데리러 오라는 부름에 흔쾌히 달려가는 친구가, 운전이 힘드니 바꿔달라는 요구에 당당히 내가 할게라고 외치는 멋진 친구가 되고 싶다. 난 오늘도 시득씨를 꼬신다. 다음 주말에 집에 갈 테니 제발 운전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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