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귤
Y 중학교의 오랜 전통인 합창대회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열혈 음악 선생님은 ‘아에이오우’ 등 기본 발성부터 차근차근 지도했다. 선생님은 우리 목소리가 작다며 화를 내시고는 다시 부르게 했다. 혼나기 싫어서 아까보다 더 크게 불렀다. 선생님은 우아한 손짓으로 노래를 멈추고 지휘봉으로 나를 가리켰다. 비록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음정이 안 맞는 ‘음치’지만 열심히 부르고 있다며 칭찬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히자마자 얼굴이 빨개졌다. 열심히 한다는 칭찬보다는 ‘음치’라는 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 주목받는 것이 한창 부끄러울 사춘기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합창 연습을 했다. 마지막 교시 종이 울리면 일제히 책상을 뒤로 밀고 4줄 간격으로 섰다. 키가 작았던 나는 앞줄에 설 수밖에 없었고 바로 내 앞에서 지휘하는 친구가 내 목소리를 들을까 봐 무서웠다. 연습이 막바지로 향해갈 무렵, 옆에 있던 친구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친구의 표정을 보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불길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조심스럽게 친구의 입으로 시선을 내렸다. 친구가 말했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
작게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컸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민망하게 그렇게 말하는 게 어디 있어. 눈앞이 흐려져 잠시 눈을 감았다. 통째로 악보를 외웠음에도 음정에 맞게 부르는 것이 어려웠다. 음표의 위치를 떠올리며 더 작게 불렀다. 그러나 친구는 다시 한번 내 어깻죽지를 잡았다. “야, 안돼. 너 때문에 지면 어떡해. 그냥 립싱크해.“
비참의 심연으로 빠지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꾀꼬리 사이에 섞인 서글픈 매미였다. 엄청난 울음소리로 소음공해를 자아내어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매미처럼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립싱크할 거면 도대체 왜 연습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합창 연습을 빠지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립싱크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박자를 열심히 익혔다. 연습하면 할수록 립싱크 실력은 어느새 일취월장했다. 결국 나는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우리 반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29명의 꾀꼬리와 숨죽여 입만 뻥긋거리는 1명의 매미 덕분에 결선까지 오르게 되었다. 우리 반이 계속해서 이기는 것은 좋았지만 갈수록 꼭두각시가 된 기분 때문에 힘들었다. 결국 최종 결과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니 길을 가다가 그 친구를 마주친다면, “오랜만이야 반가워!”하고 폴짝폴짝 뛰면서 함께 카페로 가겠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는 진동벨이 울리기 전까지 근황을 주고받겠다. 음료를 가져오고 나서는 혹시 합창대회를 기억하는지 물어보겠다. 분명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대답하겠지. “너 그때 나한테 립싱크하라고 했던 거 기억나?”라고 말하고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친구의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겠다. 나의 힘에 옆으로 밀린 그 아이를 다시 잡아주며 뻘쭘해하는 친구의 어깨를 잡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야,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 그 뒤로 나는 가창 시험 때마다 울었어. 어디론가 숨고 싶은데 숨을 수가 없어서. 아무리 목소리를 작게 내도 모두가 듣고 웃어서. 내 목소리가 창피했어. 근데 뭐 지금은 괜찮아. 그냥 말하고 싶었어. 그때 슬펐다고. 그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