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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의 생존 법칙

넴릿

by 핸드스피크

초등학교 입학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소리만 듣지 못할 뿐, 겉모습은 여느 어린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불과 한 주 사이에 나는 반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몸소 깨쳤다. 그래서 생존 법칙을 만들었다. 그 아이들과 똑같이 평범한, 1학년 4반 학생의 일원으로 살아야만 했다.

[해수의 생존 법칙]

1.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기

2. 그림자처럼 모방하기

3. 누구보다 평범하게 튀지 말기

수업하고 있던 어느 날, 고개를 푹 숙인 채 펼친 교과서를 한참 읽고 있었다. 교실은 고요했다. 아이들의 고개가 칠판 쪽을 향한 채 하나같이 멈춰있는 걸 보니 눈앞에 펼쳐진 정적에 지루한 듯 눈을 끔벅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나른해 가는 몸을 지탱하려고 두 손으로 턱을 괴던 참에 내 앞에 있는 의자가 뒤로 움직이면서 책상과 부딪혔다. 그 진동이 책상을 타고 전해졌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걸 보면 이제 쉬는 시간이 되었나 보다. 하지만 내가 알던 쉬는 시간의 풍경 같지 않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반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은 평소와 달라 보였다. 쉬는 시간인데 모든 아이가 왜 교실이 아닌 복도에 꼼짝 말고 있는 건지, 뭐 때문에 줄을 서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로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본능대로 아이들을 따라 복도로 나섰고, 일렬로 줄을 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이래야만 문제가 없어 보일 것만 같았다.

막상 똑같이 줄을 섰지만, 눈을 이리저리 돌렸고 하얀색 실내화 속에서 발가락을 끊임없이 꼼지락거렸다. 저 멀리서 맨 앞에 있던 선생님과 첫 번째 순서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찡그리면서 유심히 관찰했다. 선생님의 오른손에 무언가를 들었다. 말랑말랑한 재질의 투명 용기인데 그 위에 빨대처럼 생긴 것과 결합한 빨간색 뚜껑으로 막혀있다. 그 용기 안에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듯했다. 그 아이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입을 크게 쩍 벌리고 있지 않나. 그 모습에 미소를 띤 선생님은 아이의 얼굴 앞에 정체불명의 용기를 힘껏 꾹 눌렀다. 그러자 투명한 액체가 그 아이의 입안으로 발사되었다. 물을 머금은 채 꼭 다문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는 모습 그대로 우리 반 옆에 있는 5반, 그 옆의 6반, 또 그 옆의 7반을 지나서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쌩 달려가는 듯했다. 두 번째 순서의 아이도 똑같이 입을 벌리고 선생님에게서 무언가를 받았고 같은 방향으로 쌩 달려갔다. 그 뒤를 이은 아이들도 모두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기가 무섭게 아기 새들은 덥석 잘 받아먹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뭐길래 줄을 서서 받아먹는 걸까? 무슨 맛일까? 근데 교실이 아닌 화장실로 왜 가는 걸까? 왜 달리는 걸까? 저기서 뭐가 있는 걸까? 칭찬스티커를 받을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걸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의문이 커졌다. 약간 상기가 된 듯 두 볼이 볼그레했고 애꿎은 검지 손톱을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이 입을 열어 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대답 대신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눈을 찌끗 감으면서 입을 아 하고 서서히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진 게 뭔가 물 같지는 않은데 미적지근한 느낌에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작은 입안에 넘칠까 봐 잽싸게 입을 닫았다.

‘그다음에 화장실로 가는 거였지?’

주문을 외우듯이 화장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걸어가지 않고 앞선 아이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려고 무작정 판박이처럼 달려갔다. 화장실에 도착했지만, 그다음 행동을 미처 보지 못했다. 입안에 물이 가득 차 있는 바람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왠지 모르게 발길 닿는 대로 변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금과 동시에 꿀꺽 삼켰다. 턱을 타고 살짝 흘러내린 액체를 옷소매로 대충 쓱쓱 닦았다. 화장실 문을 나서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다가 마주친 내 다음 순서의 아이는 내 쪽으로 달려오더니 나를 지나쳐 갔다. 몸은 앞으로 가는데 고개가 저절로 그를 향해 옆으로 돌아갔다. 그 아이가 화장실 밖에 있는 개수대로 가서 퉤 뱉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왜 뱉는 거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걸 보면 수업 시간 종이 울렸나 보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교실로 돌아가서 자리에 앉았다. 수업 도중 느닷없이 진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손을 들어볼까 했다. 그 찰나에 다른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주제넘게 튀지 않겠다는 의지로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저 모두와 같아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선생님이 교탁 위의 교과서를 덮자마자 교실을 뛰쳐나갔다. 화장실에서 속에 있는 것을 전부 게워 냈다. 울렁거리던 속은 가라앉았지만,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눈물이 찔끔 났다. 하교하는 길에 괜스레 목을 자꾸 만지작거리면서 집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들려주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잠깐만 있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불이 꺼진 안방으로 사라졌다. 누군가와의 전화 통화를 마친 엄마가 다시 나와 내게 다가왔다.

"네가 먹은 건 치아를 튼튼하게 해주는 불소란다. 수요일마다 선생님이 네 입안에 넣어줄 거야. 헹구고 꼭 뱉어야 하는 거란다. 알았지?”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지금은 몸이 괜찮니?"

그러고는 나를 꽉 안아 주었다. 평소보다 오래 한참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 순간 불소인지 뭔지 몰라도 이것만은 바로 알아차렸다.

내가 잘못이구나. 엄마를 걱정하게 했다는 걸.

다음 학기가 시작되고, 불소 양치하는 날이었다. 새로 전학을 온 친구가 내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그때의 나처럼. 나는 먼저 다가갔다. 왼손으로 불소 용기를 든 시늉을 하고, 오른손으로는 입을 다물라는 손짓을 했다.

‘입안에 넣고,’

이어서 꿀꺽 삼키는 동작을 보여주자마자 바로 양팔로 크게 X자를 그리며 호들갑스럽게 손을 휘저었다.

‘삼키지 말고!!!!!’

양 볼에 바람을 가득 불어 넣어 오른쪽, 왼쪽으로 헹구는 시늉을 하고는 입을 활짝 벌렸다.

‘입을 헹구고 뱉으면 돼.’

온몸으로 설명한 내 모습을 이해했는지, 친구는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눈이 반달처럼 휘어질 만큼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르다는 게 잘못인 줄 알았다. 아무리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봐도 발 없는 말이 천 리 가듯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정보가 수많이 스쳐 지나간다. 그림자처럼 모방하고 누구보다 평범하게 보이려 애써도 언젠가는 들킬 수밖에 없다. 그 아이들처럼 똑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할수록 나만 더 숨이 막히고 지쳐간다. 그 생존 법칙은 오히려 나를 한동안 어둠 속에 가두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그림자처럼 숨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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