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러 가는 길

귤귤

by 핸드스피크


민영은 아닌 밤중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거울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거울 주변은 옷 무덤이 된 지 오래였다. 긴 고민 끝에 세 가지 코디를 완성한 민영은 친구들에게 SOS 요청을 했다. 친구들은 민영이 보내준 코디 사진을 신중하게 보고는 첫 번째 코디인 하얀색 반팔 티셔츠와 연한 청바지에 투표했다. 민영은 결정을 내려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옷 쇼핑을 미리 하지 않아 더 예쁘고 화려한 옷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기본이 제일 예쁜 법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평소보다 부지런히 일어나 채비를 시작한 민영은 거울을 보며 어제 일을 회상하였다. 민영의 머리 길이는 원래 어깨에 닿는 단발머리였지만, 그날만큼은 색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싶었다. 머리를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들자마자 곧장 미용실로 출동했다.


연화제를 바르고, 롯드를 말고, 샴푸를 받고, 중화제를 바르고, 머리를 말리는 등 오랜 인고의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끝났다는 미용사님의 말에 민영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봤지만, 웬 사자가 앉아있었다.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절망스러운 표정을 한 사자와 마주할 뿐이었다. 민영이 애써 마음에 드는 척 미용사님께 양쪽 엄지를 발사하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미용실을 빠져나왔던 것이 어제 일이었다. 사진과 다른 것 같다고 말이라도 할걸, 왜 마음에 드는 척 엄지를 날렸을까 후회하는 민영은 잊고 싶기라도 한 듯 고개를 내젓고는 드라이기와 고데기를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거울 속의 사자는 여전히 민영을 떠나지 않는다. 사자의 모습에 굴복한 민영은 결국 머리를 묶고 말았다. 미용실에 다녀온 보람이 없었다.


머리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민영은 기차를 타고 가며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10년간 순수한 우정으로 쌓아온 친구 사이가 어느샌가 피어오른 연정 때문에 하루아침에 남이 될 수도 있는 이 위험한 도박 앞에서, 그럼에도 민영은 마치 최고의 패를 들고 있는 듯했다. 거절당할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태혁이 싫다고 하면 그럼 앞으로 딱 3번만 만나보자고 할 참이었다. ‘3번의 데이트 동안 나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민영이었다.


남녀 사이에 친구는 있다고 외쳐왔던 민영은 태혁을 좋아하게 됨으로써 모순적인 사람이 됐다. 우리의 사례를 들어-만일 고백에 성공한다면-남녀 사이에 친구는 있을 수 있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라고 해야겠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기차는 대전역에 도착했다. 태혁은 민영이 내리는 승강장을 확인하고는 미리 마중을 나갔다. 태혁은 수많은 승객들 사이로 민영을 찾다가 반가운 얼굴이 등장하자 활짝 웃는다. 민영은 자신을 향해 무해한 미소로 웃어주는 태혁을 본 순간 지금까지 했던 모든 고민과 걱정은 다 사라짐을 느꼈다. 그래, 머리는 사자 같고, 옷이 마음이 들지 않아도 그게 뭐 대순가, 이렇게 활짝 웃는 당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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