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해일 Aug 15. 2024

직장인 재데뷔

중고 신입 웹디자이너 적응기 

갑자기 취직이 됐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면접을 두 개 잡았다. 오전에 설렁탕집 위에 위치한 법률 마케팅 전문 회사 면접을 봤고, 다음 면접 장소와 가까운 맥도날드로 이동한 후 멍을 때리고 있었다. 진짜 미치도록 가기 싫다... 몇 달 동안 300개 이상의 이력서를 넣었고, 열 번 정도 면접을 봤다. 연이은 탈락으로 이제 긴장도 희망도 없이 지친 상태. 교통비가 아까우니 얼굴만 보고 오자는 마음 가짐으로 면접에 갔는데... 당일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음 주에 바로 근무 가능하세요? 막상 합격되자 변덕스럽게도 일주일만 더 쉬면 좋을 것 같았다. 순간 불안했던 구직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알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 강남에 위치한 모 에이전시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제 3주일을 향해 가고 있다. 첫 주는 너무 정신없이 보내서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회사까지 한 번에 가는 지하철이 있긴 하다. 거진 앉아서 가는데도 몸이 아주 많이 지친다. 10개월의 웹디자이너 경력이 있지만 출근은 처음이다. 전 회사는 풀재택근무를 시행했었다. 정말이지...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다. 출퇴근 시간이면 인간 떼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 수많은 직원들과(그래봤자 스무 명이지만) 한 공간에 있는 것, 개발자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라서 유난히 남자 직원이 많은 것, 아빠 뻘 되는 어른 분들도 많이 계시는 것, 전형적인 사무실처럼 생긴 공간, 점심시간 다 같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가는 것(비싸다!), 협업하면서 디자인 작업하는 것, 전부! 그동안 너무 쉬었던 걸까? 완전 제로 상태에서 시작하는 기분이다.


아직은 분위기를 읽는 상태. 퇴근 시간이 되어도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왠지 침묵을 깨기 힘들다. 나의 퇴근 시간은 6시 30분. 어쩌다 보니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하게 됐는데... 여기서 10분, 20분 늦게 회사를 나오면 귀가 시간이 달라진다. 칼퇴해야 겨우 오후 8시에 도착할 수 있다. 며칠은 그것 때문에 우울했다. 이게 경기도민의 삶인가? 회사에서 이렇게 일하면 내 시간은 도대체 언제 갖지? 책도 못 읽겠고 글도 못 쓰겠어. 도대체 이런 일과 속에서 운동이나 공부를 병행하는 인간들은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게 돼서 그럴까. 몸살에 걸려버렸다.


다행히도 굉장히 신입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면접에서 세 달 동안은 스터디를 해줄 거란 엄포를 지키려고 하듯이 팀장은 디자인부터 퍼블리싱까지 꼼꼼하게 봐주고 있다. 전 회사에서 입사하자마자 하루 이틀 안에 시안을 완성해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간 얼마나 핀터레스트와 같은 레퍼런스에 의존하면서 디자인을 해왔는지, 지저분하게 CSS를 짰는지, 여실히 느꼈다.


내향형이 압도적으로 많은 회사로 굉장히 조용한 분위기다. 업무적인 대화 이외에 사담은 가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어도 상관없다. 에어컨 온도는 24도에서 26도. 집보다 시원하다. 탕비실에서 가끔 커피를 내려 먹는데 썩 맛있진 않다. 디자인팀 인원은 총 넷. 속단할 순 없지만 결이 잘 맞는 사람들인 것 같다. 친절하시다... 초반에는 단정한 무채색 옷만 입고 다니다가 최근에는 마젠타 계열의 오버핏 티셔츠와 버뮤다팬츠를 꺼냈다. 아직 다른 팀원들 얼굴을 다 모르겠고... 이 동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양산이 필수다.


천천히 일도 사람도... 적응해 가는 요즘이다. 하루종일 긴장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심장 부근이 뻐근하고, 자다가 불쑥 종아리에 쥐가 날 때도 있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이상 오늘 공휴일이라 유난히 행복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내가 나를 믿는 수밖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