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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일 Jul 19. 2024

결국 내가 나를 믿는 수밖에

잠깐 신점, 사주, 타로에 미쳐있던 시기 

작년 5월 즈음, 퇴사를 앞두고 점을 많이 보러 다녔다. 신점, 사주, 타로... 그런 거 믿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 스탠스가 무색하게. 아마 평생 볼 점을 다 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보편적 인간이 걸어가는 레이스에서 탈주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를테면 그런 것. 괜찮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괜찮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괜찮은 사람과 결혼을 하는...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나까지 그럴 필요 있어? 나는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살 거라고 다짐했는데 이게 왠 걸.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놓이자 두려움이 앞섰다. 제가 퇴사를 해도 괜찮을까요? 대학원을 진학해도 괜찮을까요? 소설을 계속 써도 괜찮을까요?


거듭된 생각에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됐다. 불쑥 혼자 신점을 보러 갈 결심에 이르렀다.


집 근처에 위치한 신당을 예약했다. 30분이 채 안 된 상담으로 5만 원을 지불했다. 방울을 흔들고 격렬히 몸을 뒤틀면서 신을 찾던 남자 무당은 그렇게 말했다. 절대로 퇴사하지 말라고. 뭐 하러 학교를 다시 가려고 하냐고. 전직 은행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예술 같은 것을 취미로 가져가길 권고했다. 자신에게 배우 지망생도 많이 오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다고 하면서. 전반적으로 불쾌한 상담이었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자는 사람에게 자주 가위에 눌리지 않냐 그러고... (살면서 한 번도 가위눌린 적 없다) 귀문이 조금 열려있어 잡귀가 드나들 수 있으니 부적을 쓰라하지 않나... (돈이 별로 없어 보이니까 초특가 30만 원에 모시겠습니다!) 가짜 무당을 만났다고 그냥 넘기려고 하는데 찝찝함이 남았다. 퇴사하고 다른 회사 가면 여기보다 더 나쁠 거야... 네가 학교를 다시 간다고 만족할까? 자꾸 그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주로 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잘 맞춘다고, 소소하게 화제가 됐던 사주 카페가 있었다. 할머니는 생년월일과 시를 듣더니 한자를 적기 시작했다. 그녀도 퇴사를 만류했다. 일단 2년은 버티라고 하면서. 기성세대 어른의 관점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길을 조언해 줬다.


이후로도 나는 계속 사주랑 타로를 봤다. 10만 원을 들여 얻어낸 조언이지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발심이 들었다. 당신들 내 인생을 얼마나 안다고 그래? 그리고 30분도 안 되는 시간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면서도 유튜브로 계속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쨌든 여전히 불안하니까. 내가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김영하 작가는 사주를 보았을 때 글을 쓸 운명이란 소리를 들은 적 있다고 했다. 내심 나도 점을 보면서 그런 계시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는 답을 기다리는 답정너식 태도.


사주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중 한 유튜버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역술가들과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젊고,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인기를 얻게 된 배경 때문일까.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희미하고, 자기만의 무언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퍼스널 브랜딩과 SNS를 통한 마케팅을 상당히 강조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으로 사주를 봤을 때는 내게 젊으니까 일단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고, 마흔 넘어서 도전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결국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사주 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신을 받은 무당이어도. 인간은 자신이 아는 세계에 국한하여 생각하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계인가? 그냥 당연한 거다. 누군가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데 누군가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근데 이게 누구 하나가 틀린 게 아니다. 둘 다 맞는 소리다. 각자가 믿는 세계에 한해서는.


그러니까 무엇을 믿고 살아갈 것인지, 어떤 조언을 듣고 받아들일 건지, 전부 내 몫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장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후회를 덜 남기고 싶다. 어차피 내 인생 아닌가. 퇴사는 질렀다. 현재 얼어붙은 고용 시장 위에서 구직활동은 난항을 겪는 중. 글을 쓰는 시간은 많아졌다. 소설도 쓰고. 회사를 다녔으면 엄두도 안 냈을 에세이도. 


최근에는 굳이 점을 보진 않지만 드라마틱하게 무언가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걷잡을 수 없는 걱정에 자주 잠긴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잘 될 거라고... 중얼거린다. 정신 승리 같나요? 그래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것보다 될 거라 생각하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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