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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이탈 충동

오늘도 글쓰지 않았다

by 양해일 Dec 15. 2024

요즘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글을 거의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 세 시간의 출퇴근. 빨리 귀가했을 때 시간이 여덟 시. 회사에서 일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지쳐 있다. 최근 며칠 사이에는 밥 해 먹는 시간도 귀찮아서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그전에는 배달음식을 먹었는데 가까스로 200만원을 넘기는 급여로 매번 주문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작가들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글을 쓴다고 하지, 1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여도. 나는 잠들기 전 서너 시간 동안 유튜브를 본다. 시간 죽이기에는 용이하지만 그 내용은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며. 일단 잠을 청한다. 내일 출근은 해야 하니까. 혹 글쓰기를 내 인생에서 일순위로 삼은 것은 착오일까? 꽤 긴 취준 기간을 거쳐서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안정적인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한편으로 마음 한 구석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웹디자이너(라고 부르고 퍼블리셔라고 답한다)로서의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효용성을 상당히 중시하는 편인데. 웹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보람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럭저럭 일을 처리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직업이 전혀 안 맞는 것 같진 않은데. 글쓰기와 병행하기 적합한 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온종일 디자인을 한 날에는 자기 직전까지 머리가 과열 상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뇌 속이 핑핑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놓는 것이 중요하니까. 어떤 익숙한 말이 들린다. 누가 말했더라.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불가하게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여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마음에서 우러난 소리는 아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먹고 사는 문제다. 하지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 감각이 조금 어긋나 있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강남을 오가던 어느 날, 엄마는 그런 질문을 던졌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얼른 내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나는 익히 그런 규칙을 알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재산을 축적해가는 방식에 대하여. 하지만 최근의 나는 그런 것과는 반대로, 아예 연고 없는 지방이어도 훌쩍 떠나고픈 심정이었다. 돈은 먹고살 만큼만 벌고 싶어. 있으면 있는 대로 소비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없다고 해도 거기 맞춰서 살면 되는 거니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은 머릿속에서 계속 리플레이된다.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J 사원과 퍼블리싱을 할 때면 눈을 반짝이는 L 대리님과 다르게. 회사를 다니게 만드는 나의 동기는 점점 옅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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