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문학 (10)

나인

by 해일

문학에서 천재는 없어요.


강은 단언했다. 어렸을 때 글쓰기에 소질을 보인 적 없던 나는 그 말에 위안받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등단을 했잖아요.


나는 말을 삼켰다. 강의 수업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강은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설의 소질이 될 만한 것은 자기 안에 있다고도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채팅방에 다음 합평자의 소설이 올라왔다.


백지 위 글자가 있다. 검었다. 활자가 뭉쳐 있다. 나는 띄엄띄엄 단어를 읽어본다. 합쳐지지 않았다. 잔상이 남았다. 레이어들이 10 픽셀씩 밀려났기 때문이다. 어지럽다. 담배 냄새가 난다. 나의 뒤에는 나인이 있었다.

나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문장은 가짜였다. 실제의 나인은 침대에서 드라마를 보며 웃고 있었다. 고작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나는 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 조사는 무엇을 붙이고, 시점과 시제는 어디서… 같은 생각 따위로. 나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 문장 역시 가짜였다. 나인은 엄청나게 먹었다. 새벽에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뒤져 엔쵸비를 통으로 씹었다. 그런데도 살이 찌지 않았다. 나인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 문장이야말로 나인과 정반대되는 표현이었다. 나인은 말이 많았다. 며칠 사이에 나는 나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인은 데뷔를 포기했다. 그건 내 선택이었어. 이유에 대해선 함구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인이 아이돌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를 좋아했으니. 언제라도 사고가 터졌을 것이다.


새로운 나인은 자신감이 넘쳤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죽음을 실천했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그 속에 우울은 없었다. 매사 우울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는 알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상태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인은 눈을 반짝인다. 평소에 드러내지 않는 표정으로 드라마를 시청했다. 그녀는 액정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 배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수한 외모를 지녔다. 나는 더러운 꼴을 보기 싫어서 내 발로 나온 거야. 재능? 인성? 그게 뭐가 중요해. 얼마나 괜찮은 스폰을 물었냐. 저 세계에서는 그게 전부라고. 나인은 연예인을 폄하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그들을 지켜보았다.


밤이 되면 우리는 한 침대에 누웠다. 내가 바닥을 자처하자 나인은 나를 위로 이끌었다.


너 손이 엄청 뜨거워.


나인은 나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아주 차가웠다. 따로 이불을 덮어도 어느새 나인은 내 품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면 낮에 하지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너가 좋은 사람인 걸 알아.


미안해.


너가 나를 구한 거야.


협박하려고 협박한 건 아니었어.


그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찾고 있을걸?


내 이름 앞으로 빚이 어마어마해.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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