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문학 (9)

합평

by 해일

합평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강은 모두가 참여하길 권고하나 의무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차례를 넘겼다. 사람들이 쓴 단편을 읽으려고 했지만 한 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글을 두고 이입이 됐다든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강에게 감탄했다. 그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장점과 나아갈 지점을 말해주었다. 그 형편없는 글에게. 아주 상냥한 어투로.


저는 회사를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에요.


그래서일까. 강은 조용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뱉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겸손하게 깎아내렸지만. 사실 회사라는 건 시간을 대가로 돈을 받을 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한 손이 올라왔다. 한 남자가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발언권을 얻었다.


저는 이 소설이… 잘못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옳지 못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한 가지 물어보고 싶네요. 혹시 가난해 본 적 있으세요?


누군가 크게 비웃었다.


가난은 도대체 어떻게 증명하는 거죠? 아니 왜 그런 게 필요한 것인지, 제가 되려 묻고 싶네요.


소설의 당사자는 무척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숏컷을 파랗게 염색했다. 아주 얇고 여린 목소리였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발음이 명확했다.


보통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전형적인 가난을 그려내죠. 나이브하게. 그냥 조금 더 오래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이렇게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침묵이 길었다. 강은 그저 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자는 잔뜩 상기되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화를 참는 것 같기도 눈물을 참는 것 같기도 했다. 프린팅된 그녀의 글은 딱 한 장이었다. 단락을 전혀 나누지 않은. 하나의 검은 덩어리. 불쑥 내 입이 열렸다.


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뒤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음… 그게… 끝인가요?


강이 물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다시 입을 열었지만. 강에 의해 무산됐다. 흥미로운 논쟁이었지만 앞으로 합평에서 조금의 규칙은 필요해 보이네요. 강은 미소를 지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이 글은 너무 짧아서 제가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이 소설을 확장할 계획이 있나요? 여자가 머뭇거렸다. 아직 모르겠어요.


정해진 합평일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소설을 보여주세요. 모두에게 드리는 말이에요.


여자가 눈을 비볐다. 눈물이 난 걸까? 수업이 끝나자 남자가 제일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몇몇 사람들이 여자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저는 사실 이 소설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저 남자가 갑자기 돌변하는 건 아닐까… 신춘문예에 낼 건가요… 그들은 뒤에 일정이 없다면 가벼운 뒤풀이 자리를 제안했다. 그새 강은 사라지고 없었다.


뒤풀이 함께 가나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자가 물었다.


아니요.


가까이서 보자 여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일 정도로 앳됐다.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나는 괜히 변명을 덧붙였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있어요? 나중에 소설 얘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제가 SNS는 안 해서요…


여자가 머쓱하게 웃었다.


대신 번호 알려드릴게요.


여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환히 웃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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