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평소엔 TV를 보지 않았다. 특히 드라마는 더더욱. 최신 유행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멍청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Y의 첫 번째 주연 작품이었다. 내가 그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단순히 외모가 출중하고, 연기를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
그녀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Y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저 사람 좋아해요?
그녀가 픽 웃었다.
여전하네. 표정 하나로 우려먹는 거.
그녀는 Y와 잠깐 만났다가 헤어졌다고 말했다.
쟤 그렇게까지 좋아할 인간 아니야. 여자도 존나 밝히고.
네?
진짜라니까?
그녀는 명랑했다. 나는 TV와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믿기 싫음 말고.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 배고파. 저번에 먹은 파스타 맛있더라.
냉장고에 명란은 없었다. 레몬도 괜찮아요? 뭐든. 주는 대로 먹어야지. 얼떨결에 요리를 시작했다. 이상했다. 저 여자는 누구지? 마른 몸. 아름다운 얼굴. 흉측한 상처.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누운 채 계속 말했다. Y는 원래 배우를 꿈꾸지 않았어. 아이돌 연습생이었지. 그건 세상에 알려진 적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3개월 있다 잘렸어. 끼가 너무 없기도 했고. 연애 금지인데 걸렸거든. 참고로 나도 연습생 출신. 자그마치 5년. 그나저나 언제까지 너라고만 할 거야? 아까부터 좀 거슬리네. 나인이라고 불러. 데뷔했을 때 쓰려고 철학관 가서 50만 원이나 주고 지은 예명이야. 내 돈은 아니고. 나를 성추행하려 했던 사장 돈. 돈 날린 거지. 나인이 소리 내어 웃었다.
치즈와 노른자를 올린 레몬 버터 파스타를 내놓았다. 나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생략하고 먹었다. 2인분이 훌쩍 넘는 양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담배 한 갑 사줘. 맛있긴 한데 좀 느끼해. 제로 콜라로 부탁해.
나인은 너무 당연한 태도로 주문했다. 나는 설거지도 하지 못하고 편의점에 갔다 왔다. 나인은 콜라를 단숨에 다 마셨다. 그리고 캔을 재떨이 삼아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기 금연 건물이에요.
그래서?
나인이 내 얼굴에 숨을 뱉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신고라도 하게?
뻔뻔한 낯 아래로 멍이 노랬다.
나가요.
응? 나 돌아갈 집이 없어.
그건 당신 사정이죠.
아니, 아니지. 나인이 담배를 털었다. 공중에 흩날리던 재가 벽에 안착했다.
죽으려던 나를 살린 건 너잖아. 그러니 너가 나를 책임져야지.
저에게 그럴 의무는 없어요…
나인은 제 목을 가리켰다. 내가 만든 상흔을 정확히 겨냥하며.
한 번 신고해 봐. 그럼 너가 나를 죽이려 했다고 말해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