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했던 인간, 되갚아 주는 지구
지구의 경고
2020년 여름, 한 달 내내 기록적인 폭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있기도 했지만 여름이 되니 쇠창살과 같은 굵은 비들은 우리 모두를 집안에 꼼짝없이 오도 가도 못하게 하였다. 마침 휴가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 비속에 많은 사람들은 휴가를 떠났는데 숙소에서 그냥 하루 종일 있었다며, 휴가 같지 않은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폭우를 피해서 늦은 휴가를 준비했다.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세상 느껴보지 못한 폭염을 느끼며 여름휴가를 갔다. 뭐랄까 지구를 가마솥에 넣고 펄펄 끓인 느낌의 폭염이었다. 우리 가족의 휴가지는 전 여름휴가때 가보고 너무 마음에 쏙 들던 채석강 근처 변산해수욕장으로 정했다.
남양주에서는 꽤 먼 변산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아이들이 놀기에 딱 알맞은 물 깊이에 다시 한번 찾았다. 피난민 같은 많은 짐들을 숙소에 내동댕이 치듯 풀고 부랴부랴 아이들의 성화에 바닷가로 향하였다. 어서 모래놀이도 하고 바닷물에 수영도 하고 싶어서였다.
바다에 도착한 아이들은 크록스 신발을 내팽겨 치고 모래밭으로 뛰어 들었다.
"으악!! 모래가 프라이팬이야!!"
먼저 내달려 모래에 발을 내딘 첫째가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속으로 얼마나 뜨겁다고 하고 모래를 만져 보았다. 모래가 금방이라도 녹아 유리 공예가의 용광로에서 나올 것 같은 뜨거움에 모래를 세게 탁탁 털어냈다.
"어머 손 데겠다. 어서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는 물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엄마, 바닷속은 괜찮을 거야!!" 하며 바다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바다도 뜨거웠다. 바다가 뜨겁다니! 미지근도 아니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뜨뜻함이었다.
우리나라가 그럼 괌처럼 되는건가?
코로나가 오기 전 아이들과 괌에 놀러 갔을 때, 적도 부근이라 그런지 모아나에서나 나올법한 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알 수 없는 지평선에는 모닥불을 지펴놓은 것 마냥 하얀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당시 세살배기 막내랑 바다로 들어 갔는데 바닷물이 미지근한 온수 상태의 물 온도에 '적도의 바다는 미지근하구나' 하면서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던 이색적인 외국의 바닷물 온도에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근데 지금 우리나라 변산 앞바다의 온도가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뜨겁다니 아이들은 땡볕 더위에 점점 뜨거워지는 물 온도를 참지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
모래도 너무 뜨거워 모래놀이를 할 수 없었고, 바다는 온천같이 뜨거워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 해가 진 후 나오자고 했다. 바다 위에는 녹색의 알 수 없는 물질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아무래도 너무 더러워 보여 몸을 담그고 있기가 불쾌했다. 그럼에도 작은 물고기들은 잘도 돌아다녔지만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저 물고기들은 더 이상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을 텐데. 이렇게 지구는 우리 인간에게 경고하는 것 같아 보였다. "더 이상은 안돼! 나 열 받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네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적도에서나 볼 법한 구름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저런 멋지고 이쁜 구름이 있다니...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이제 사계절이 점점 없어지다 적도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한다. 지구의 온난화와 바닷속 오염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정말 이제는 한계선 끝까지 온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많은 나로서는 내가 누린 자연을 누릴 수 없는 나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든다.
또 다른 바이러스의 출몰
지구가 이렇게 뜨거워지면 가장 문제는 북극과 남극에 있는 빙하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 녹아내린 빙하들 속에는 몇천 년 전부터 살고 있던 바이러스들이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를 거쳐 지구는 이 많은 바이러스를 얼음 속에 꽁꽁 봉인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인간들은 이 빙하를 녹여 버렸고 몇만 년 전 잠자던 바이러스는 바닷속으로 풀어져 나왔다.
그렇다. 바다는 지금 살인마로 돌변할 수준으로 오염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지금 빙하가 다 녹는다면 베이징을 수중도시로 만들 수준이라고 한다. 베이징이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미래학자들은 우리나라는 태백산맥만 남고 다 잠기게 된다고 한다. 믿기지가 않는다. 코로나로도 이렇게나 갑갑하고 2년간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다.
어떤 미래학자는 코로나는 감기 수준의 약한 바이러스일 뿐 또 다른 바이러스의 출몰은 예견돼 수순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나도 걱정이다. 이럴 땐 정말 무자식 상팔자인가 싶다. 이제는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아진 바이러스의 존재가 나타나고 알지 못했던 수많은 박테리아의 출현으로 지구의 인간들은 계속해서 백신을 만들고 불안해해야 한다니 우울하기 그지없다.
뜨거운 지구의 악순환은 바다의 오염, 산불의 발생, 기후의 재앙, 그것으로 인한 가뭄과 가난의 연결고리들을 끊을 수 있을까 정말 이런 마당에 어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나 또한 나의 일상의 불편함을 주는 노력을 깊게 하지 않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일상이 아주 불편할 정도로 노력해야 그나마 지구가 숨 쉴 수 있다고 해서 비닐과 플라스틱이 없는 것을 중점으로 장을 본 적이 있다.
일단 마트에서 장을 보면 안 된다. 일반 과일을 따로 개수로 파는 곳을 애써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고기도 미리 담을 통을 가지고 가서 담아와야 한다. 인스턴트나 과자류를 사면 그 즉시 아웃이다. 비닐포장과 플라스틱 포장 없는 제품을 찾기가 어렵다. 소비자에게는 지구를 망칠 수밖에 없는 쇼핑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제발 기업들이 하루속히 친환경 소재의 포장들을 내놓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래도 코로나와 미세먼지 속에서도 꽃은 핀다.
기후재앙의 예고편 같았던 2020년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아마 내년 봄엔 마스크를 벗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도 21년도의 봄은 마스크의 일상이 우울함으로 가득했다. 여전히 마스크는 써야 했고 사람들은 코로나에 익숙해졌지만 좀처럼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아 지쳐 있었다. 일상의 자유를 잃어버린 지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집 앞 산에는 우아한 모란꽃 봉오리를 맺었다.
아직은 터지지 않은 꽃망울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코로나와 미세먼지 속에서도 꽃을 피운 저 모란꽃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20년의 여름은 살인적 폭우와 폭염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가을의 산들은 도토리와 밤을 만들어내고 겨울이 되면 꼭 말라서 죽어있던 가지들이 이윽고 봄이 되면 잎을 내기도 전에 꽃을 피어낸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아직은 꽃을 피운 나뭇가지의 생명력을 보며 아직은 시간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코로나 지치고 우울한 나에게 " 우리 지구의 빙하가 녹고 바이러스가 킹덤의 좀비 떼처럼 몰려와 우리 주변에 득시글득시글 거리며 기후재앙이 우리를 덮치곤 있지만 아직은 나도 꽃을 피워낼 수 있으니 힘을 내! 무슨 일이라도 해!" 하며 응원을 해주는 것만 같다. 괜스레 가슴 한 곳이 피어나는 꽃처럼 희망이 뭉클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