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헤어져, 내 살들아

하지만 극도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by 핑크솔트

솔직한 녀석: 체중계


아이들 돌밥돌밥 삼시세끼 잘도 해먹이고 나도 먹고 그런 나날들이 잘도 쌓이고 쌓여 비만이라는 글자로 나에게 안녕하며 빼꼼히 인사를 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은 왠지 밥을 먹고 화장대 밑에 쳐박아 놓은 체중계를 꺼내고 싶었다. 그리고 쌓인 먼지를 물티슈로 대충 닦아내고 약간의 긴장을 하며 체중계에 발끝부터 살짝이 나를 올려놓았다.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영하여 수치로 알려주었다. 믿을 수 없다. 살이 많이 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많이 쪘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기 싫어서 저녁을 굶고 다시 체중계에 올라섰다. 체중이 약간 줄었지만 한 끼 굶었다고 신경질이 나고 왠지 허기진 뱃속이 우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밥 해먹이기도 벅찬 나에게 이런 비만이 다가왔을까? 다른 삼형제 키우는 엄마들은 따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살이 쪽쪽 빠지던데 나는 고생을 덜해서 그런가? 너무 힘든데 왜 안 빠지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고민도 잠시 침대 위에 누워서 어떻게든 빨리 살덩어리들과 안녕을 고할 수 있는 방법들을 검색해보았다. 살이라는 것이 급작스럽게 빠지기가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뺀 살은 결코 오래가지 않아 요요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이라도 빼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패배감, 굴욕감에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허브다이어트 이건 몇 년 전 실패한 다이어트, 한방 다이어트 이건 잘못 먹음 불면증이 오고, 헬스나 필라테스 등은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해서 싫고 이것저것 아닌 것을 체크하다 보니 '카복시'라는 것이 안 해본 종목이었다.


열심히 다른 사람의 후기를 찾아 읽고 뭐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고 하지만 살이 뭐 그냥 빠지랴 하며 집 근처 가까운 곳을 찾아 카복시를 하는 곳을 무작정 찾아가서 바로 10회권을 결제하고 말았다.



너무 아픈 살빼기는 진정한 살빼기가 아니였음을...


첫날 카복시가 뭔지도 모르고 갔다. 건강관리사 분은 나의 식습관과 현재 운동량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셨다. 나는 식습관에 대해서는 조금은 당당히 말할 수가 있었다. 원래 한식을 좋아하고 나물반찬을 좋아하니 별 문제없을 거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장 문제점은 국물음식을 너무나 내가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역시 국물에 흰밥을 말아먹는 것은 정말 포만감을 넘어 안정감까지 주니 끊을 수 없는 식습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건강관리사는 이 부분을 체크해주면서 이 것부터 고쳐보자고 하였다. 일단 살 빼는 것이 급선무였던 나는 일단 그 부분을 고치도록 노력해 보았다. 그리고 하루에 얼마큼 운동하는지 물었다. 솔직히 숨쉬기와 청소 정도의 운동량은 너무 부끄러워 따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건강관리사는 카복시를 하더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며 하루에 40분 이상 운동할 것을 권했다.


그렇게 체크리스트 체크 후 대망의 카복시 시술이 시작되었다. 먼저 20개는 족히 보이는 바늘들을 배와 옆구리 등에 마구 마구 얇게 포를 뜨듯이 찔러댔다. 그렇게 찌른 주사기 바늘로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서 지방을 분해하는 원리라고 했다. 요란하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산화탄소가 내 배의 지방 표피 사이로 뜨겁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견뎌 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중에는 '그만 하면 안 될까요? '하며 애걸복걸하게 되었다.


표피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빼기 위해서는 40분 정도 빠르게 걸어 주어야 한다면서 건강관리사는 신신당부를 하였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집 근처를 배회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흑흑... 어쩌자고 살이 쪄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씁쓸하고 기분이 좋지 못했다. 집에 와서 아이들 저녁만 차려주고 까무룩 침대에 누워 기절한 듯 잠들고 말았다.


다음 날 또 카복시를 하러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미리 결제한 것이 아까운 마음이 공포보다 더 크다. 아줌마 파이팅이다. 다시 침대에 누워 평소 부르지 않던 엄마도 부르고 선생님도 부르고 한 시간이 하루같이 지나 또 40분 정도 배회를 한 후 집에 와 저녁도 못 먹고 기절해서 자길 일주일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5킬로가 쑥 빠지긴 했다.



살빠졌는데, 피드백이 왜이래?


젊었을 때는 살이 빠지면 '어머 살 빠졌네 이뻐졌다' 이런 말을 듣고 했는데 어째선지 나이가 들고 살을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빼니 "무슨 마음고생한 일 있어?" "나이 들어 보여"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살 빠지나 봐" 등등 별로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듣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도 거울을 보니 꽤나 수척해진 몰골이기도 했다.


사실 너무도 피곤하기도 했다. 정신적으로도 이렇게 살을 빼서 뭐하나 싶기도 했다.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한다는 박탈감이 컸다. 평소 음식으로 스트레스 관리를 해왔던 터라 더욱 심했던 것 같다.


마지막 카복시 시술 날은 하도 찔러댄 배가 멍자국으로 가득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배의 상태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말았다. 그날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마지막 10회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에 건강관리사는 다음 스케줄을 잡는다면서 결제를 유도했다. 한번 더 하면 확실히 지방을 뺄 수 있을 거라는 엄청난 영업기술에 훅하고 넘어갈 뻔했지만 그동안의 고통은 다음 결제까지 나를 인도하진 못했다. 다행한 일이다.




살빼려다 멘탈털림


살은 빼지만 상처만 가득한 배를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처연해졌다. 요즘 전업주부들은 왜 이렇게 자기 관리까지 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인지 '아 괴롭다' 그냥 하루하루 아이들 케어하고 살림살이하기도 벅찬데 말이지 디지털 노마드도 해야 하고 주식투자도 해야 하고 시간 관리하면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해야 하는지 갑자기 모든 게 벅차고 하기 싫은 마음에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살라고 한 적 없지만 또 그저 그런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싫어서 열심히 살아보자 한 건데 다시 나의 열심에 내가 방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극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되어 블로그도 주식도 책도 잠시 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