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O의 시대

불안하다. 무언가에는 투자를 해야 한다.

by 핑크솔트

포모의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주린이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영문 '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를 딴 '포모(FOMO)'와
일련의 병적 증상인 '증후군(Syndrome)'을 조합한 용어이다.
우리말로 '소외 불안증후군' 또는
'고립 공포증'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옥스퍼드사전 온라인판에는
'멋지고 흥미로운 일이 지금 어딘가에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
주로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에 의하여 유발됨'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자신만 뒤처지고, 놓치고, 제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가리킨다.

- 네이버 백과 -







2020년을 코로나 말고 다른 키워드를 찾으라 하면 FOMO가 아닐까? 나를 빼고 현금의 유동성이 미친 듯이 내달렸던 2020년 사람들은 주식이 반토막 났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아는 듯 거침없이 삼성전자에 배팅하였다.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는 망하지 않지'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코스피가 장중 1400을 찍었고 사람들은 폭락을 기회로 삼았다. IMF, 금융위기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났다는 것을 잊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주식'이란 두 글자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1400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동학개미운동의 선두주자 존 리 아저씨의 주식 철학을 듣고 무릎을 탁 하고 치는 계기가 되어 나도 10월에 첫 주식 계좌를 열었다. 스마트 시대답게 스마트폰만 있으면 일사천리로 계좌를 열 수 있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사면 돈이 되었던 시기라 매달 30%의 수익을 내곤 했다. 그래서 좀 본격적으로 주린이로 시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책도 많이 읽고 오전 시황도 매일 듣고 매경신문도 읽으니 '아! 정말 이전에 내가 너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국채금리가 왜 중요한지도 모르며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노마드 선언 후 매일 주식시황을 듣고 요약본을 티스토리에 올리면서 조금씩 주식에 대한 자신감을 쌓는 중이었는데 21년 8월 이후 주춤하더니 현재 21년 10월 첫 하락장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도 공부를 하면서 종목을 샀던 거라 '시간을 이기는 투자를 하고야 만다'는 심정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주린이는 주린이라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주린이든 아니든 아마 주식을 여유자금으로 하지 않았다면 버티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분명한 것은 폭락이 오든 하락이 오든 우상향 하는 것은 맞으니 길게 10년 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4차 혁명인가, 욕망의 두 얼굴 비트코인


어느 날 주변 지인이 비트코인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주식 생활에 재미를 붙인 나는 상승 중이라 매일 수익을 내는 것도 모르고 괜스레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왠지 주식도 잘하는 것 같고 투자의 귀재인가 하는 심각한 착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비트코인을 뜯어 말리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도 불구하고 주변 지인이 매일 백만원씩 벌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식은 기업이라는 대상이 있고 재무제표도 있고 뉴스도 있고 차트라는 것도 있는 확실한 실체가 있는 것에 대한 투자였다. 그래서 말 그대로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서 '이 기업은 안전한가? 망하진 않겠지? 이런 뉴스가 있으니 괜찮겠는데?' 하며 급등을 해서 수익실현을 하면 재밌고 혹시라도 삼성전자 같은 것이 9만 3천 원에 물려도 왠지 삼성전자가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하는 거야 이런 생각에 손절하지 않고 엉덩이로 버텨서 먹겠다는 신념? 같은 것도 생기곤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실체가 없었다. 내가 투자한 코인은 요즘 핫하다는 NFT 코인인데 4차 혁명에 꼭 필요하고 결국 코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얄팍한 지식만 믿고 덜컥 1400만원어치를 산 것이다.


처음 비트코인을 샀을 때는 너무 장이 좋아서 나도 일주일 만에 백만원 이상씩 버니 이 것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만원을 벌었어도 그 돈을 인출한다기보다 또 다시 알지 못하는 코인을 샀다. 거기서도 일주일이 지나니 수익이 제법 났다. 아무 이유없이 알지도 못한 채 돈 넣고 돈 먹기 식으로 돈을 버니 너무 재미가 났다.


신랑도 신이 나서 신용대출을 5천이나 더 하자며 부추기기 시작했다. 다들 비트코인으로 한몫 챙긴 사람들이 많다 보니 욕망이 꿈틀 댄 것이다. 평소 나는 쫄보이기 때문에 이런 큰 투자를 하면 가슴이 후달려서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도 안 하려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덜컥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에게 하고 싶다고 말하니 신랑은 일사천리로 이율이 적은 신용대출을 5천을 덜컥 받아 왔다. 비트코인 계좌에 5천이 찍힌 것을 보니 무섭기도 했지만 왠지 5천이 곧 1억이 될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했다. 계좌의 돈을 코인거래소에 넣으려니 한꺼번에 돈이 들어가지 않고 하루 한도가 정해져 있었다. 하루에 백만원 밖에 입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백만원씩 분할매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400만원 정도 넣었을 때쯤 뉴스에서 갑자기 김치 코인이라며 우리나라 코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것도 모르고 투자 아니 '투기'를 했던 것이다. 욕심을 부린 대가는 어마무시했다. 이 뉴스가 터지고 비트코인이 반토막, 정말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났다. 그리고 곧 코인 거래소에 대한 금융실명제를 한다는 뉴스가 또 터지고 5만 2천 원에 샀던 코인은 5천 원까지 떨어지는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당시 코인 거래소는 오픈, 클로즈 없이 24시간 내내 계속 돌아가는데 코인 자체가 사라질까 봐 매 순간 거래소를 째려봤다. 밤에도 문득문득 잠이 깨어서 차트를 보고 거래량을 보고 가슴이 후달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비트코인의 어떤 성장성이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한 대가는 너무나 아프고 쓰라렸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이들 줌 수업도 준비해주고 삼시세끼 차려 주어야 하는데 밤에 제대로 잘 수 없으니 늘 피곤하고 짜증이 나있었다. 2주 정도 좀비처럼 생활을 하다 이러다 병원비가 더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헤어 나오기엔 너무 많이 돈이 들어갔기에 힘이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5천에서 3천 정도는 아직 투자를 못해 그 돈은 다시 갚을 수가 있었다. 물린 1,400만 원을 계좌에 고이 넣어두고 핸드폰에서 앱을 지워 버렸다. 스스로 제어하기가 어려웠고 물린 돈이 10%밖에 안 남은 상황이 왠지 우리 가족에게 큰 죄를 지은 듯한 죄책감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비트코인이 물론 4차 혁명으로 가는 투자이든 아니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투자를 했고 그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혹독히라는 것은 물질적 손해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정말 욕망에 사로잡혀 이도 저도 못하는 허송세월을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정신적으로 피폐해짐도 말할 수 있겠다.


신기하게도 비트코인을 묻어둔 어느 날 2만 5천원 정도에 매도를 미리 걸어 두었는데 매도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다시 앱을 깔고 들어가 보니 5천 원까지 떨어졌던 코인이 3만 6천원까지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사람이 간교한 것이 5천 원 정도 떨어졌을 때 그냥 반 정도만 올라와도 손절하고 나간다는 심정으로 걸어둔 매도인데 막상 그 이상이 가니 배가 아프고 '아! 더 기다릴걸!!' 하는 아쉬움이 꾸물꾸물 올라왔다. 물린 금액의 반 정도가 반절에 매도가 되고 나는 400만 원 정도의 손실액을 확정지었다. 나머지는 3만 6천원에 손실을 확정 지을 기회도 온 것이다.



하지만 매도를 하지 못했다. 본전을 털고 지금까지 손해 본 것을 다 얻어내고 싶은 욕망이 다시 꿈틀거린 것이다. 그렇게도 이제는 정말 안 한다. 지긋지긋하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앱을 그대로 놔둔 채 나머지 700만 원을 남겨 두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코인은 곤두박질을 치다 다시 오르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남은 돈이 정신적 충격을 줄 금액이 아니라 앱도 매일 보지 않고 간간히 보면서 '아... 십 년은 기다려야 하나...' 하면서 본의 아니게 장투를 하고 있다. 물려서 끌려가는 투자라 하는 것이 더 확실한 것 같다.


비트코인을 하면서 난 별 욕심 없이 지금처럼 소소히 행복한 게 좋다는 나의 다른 이면을 알게 되었다. 나도 욕심을 넘어 욕망 있는 여자라는 것을 말이다.




벼락부자, 벼락 거지, 벼락 세금



현재 21년 10월 기준 우리는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인 듯 아닌 듯, 투자의 성공을 한 듯 아닌 듯하다. 어릴 적부터 우리 엄마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으셨다. 본인 살집도 아닌데 작은 이모의 집을 알아보러 따라 다니셨다. 이모가 산 집은 이른바 2배 이상의 수익을 내면서 점점 중산층이 되어갈 무렵 우리 집은 딸랑 인천에 집 한채를 10년 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물가상승을 반영한 정도의 부동산을 가지게 되었다.


작은 이모랑 같이 다니면서 산 곳을 엄마도 같이 샀다면 지금쯤 노후가 더 풍요했을 텐데 어쩐지 그러지 못한 이유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아버지의 부동산철학은 결국 떨어진다는 철두철미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 시절 그 돈으로 아버지는 주식을 하셨는데 90년대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이 없든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부동산에 매우 회의적이었는데 엄마는 작은 이모가 부동산을 사는 것을 볼 때마다 나에게 부동산 투자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도 처음 주식이 붐일 때 못 들어간 것은 아버지 탓일지도 모른다. '주식 필패 부동산 불패' 같은 공식이 알게 모르게 생긴지도 모른다.


우리 신랑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와 별다르지 않는 것이 '곧 인구절벽이라 부동산이 거품으로 집값이 떨어진다'는것에 확고한 신념이 있으셨다. 그래서인지 시댁도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지 못한 1세대가 남긴 건 꼭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 가구 정도를 생각했고 신랑은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싶어 했다.


그 당시에는 대출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전세 끼고 사는 갭 투자가 가능했다. 갭 투자를 하자고 했을 때 당시 나는 너무나 겁이 나서 평소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는 작은 이모, 엄마, 부동산 관심 많은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결과적으로 '사라'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게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를 약간의 부담을 안고 갭 투자를 하고 말았다. 몇 년간 잠잠하더니 2020년 본격적 부동산 정책을 타고 한동안 잠잠했던 아파트값이 번개에 콩 구워 먹듯 오르기 시작했다. 영끌 투자(영혼을 끌어모아 투자)는 부동산의 큰 불을 지폈다. 우리가 살던 남양주는 정말 10년 동안 집값이 그대로였던 고요한 동네였는데 들썩들썩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생각지도 못한 금액대의 아파트값이 즐비했다.


우리는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고 수익을 확정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일단 다 팔고 전세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수익확정을 할 수 없었다. 남양주 집은 10년 정도 살았지만 부동산이 법이 바뀌어서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받지 못하고 기간 내에 팔지 못해서 20%의 가산세도 내야 해서 세금이 수익의 50%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집은 또 매도 시 2년 이상 거주를 해야 매도할 수 있는데 지금 아이들이 남양주에 초등학교 잘 다니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이사 가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서울집의 전세가 많이 올라서 전세를 올릴 수 있나 알아보니 전세자는 총 4년 동안 원래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임대차 3법으로 전세금은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부동산으로 수익을 확정할 수 없는 우리는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서 보유세를 왕창 내며 있는 것으로 선택하였다. 아마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공급량은 그대로 멈춰 버렸고 부동산은 활황인데 거래가 없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그저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서 '아! 오늘도 부동산은 어떤가?' 쳐다 보면서 벼락 부자의 기분을 느끼면서, 벼락 세금을 내면서, 일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 그런 생활이다. 결국 투자라는 것은 수익 실현하는 그 순간이 수익확정인 것인데 이러다가 부동산값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을 가지며 시간을 보낼 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