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의 민낯
잊을 수 없는 2020년 1월 21일
배터리가 다 된 핸드폰 마냥 껌벅껌벅 꺼져 갈 때쯤 드디어 리모델링이 끝났다는 사장님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찌나 좋던지 다음날 아이들과 집으로 향할 생각을 하니 제주도를 가기 전 기대에 찬 전날 밤보다도 좋다. 삼 형제를 꾸역꾸역 데리고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제주도 공항에 체온을 체크하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별스럽지 않게 지나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리니 아버님께서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셨다. 감사하게도 데리러 나와 주신 것이다. 아버님과 제주도에 있던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누며 금방 집에 도착하였다. 리모델링한 집을 한번 쓱 보시곤 아직 짐도 안 들어왔던 차라 정리 잘하고 다시 보자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금방 돌아가셨다.
다음날엔 보관 이사를 했던 곳에서 이삿짐을 받고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TV도 설치를 못하고 하루가 금방 가버렸다. TV가 없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길도 관심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1월 21일, 우리는 이쁘게 고친 우리 집에 정신없이 도착을 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다음날 아이들 학원 가면 느긋이 짐 정리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오니 밀린 방학숙제도 해야 하고 다음 학년도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없던 하루하루를 보내고 3일째 TV를 설치하고 뉴스를 보게 되었다.
중국 우한에서 박쥐를 잘못 먹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걸려 전염되었다는 뉴스였다. '참 중국 사람은 아무거나 다 먹네, 별일이 다 있네' 하며 무심히 뉴스를 보았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넘쳐나고 심지어 약국에는 마스크 품귀 현상을 보였다. 대구에서 연일 엄청난 확진자로 거리에는 전쟁이 난 것 마냥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1월 21일, 결국 제주도에서 여행 복귀 후 우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틀면 나오는 코로나 뉴스들
여행 잘 다녀와서 아이들 학원 보내고 짐 정리도 하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하며 제주도 여행 사진을 정리하려던 생각 따윈 저 멀리 날아가게 되었다. 갑자기 전시 상태가 된 것 마냥 매일매일 뉴스에서는 확진자를 표시하고 사망자를 표시해 주었다. 심지어 미국, 유럽에서는 셧다운으로 길을 통제하고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공산국가도 아닌데 거주 이동의 자유가 박탈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통제 상황 같았다. 스페인에서는 시체를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어서 아이스링크를 정부에서 빌려 시체를 보관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외국에서는 사람들이 전시 사항에서나 일어날 일인 생필품 사재기를 하느라 마트가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워낙 인터넷 쇼핑이 잘 발달되어 있어 사재기의 모습은 없었다. 이 시국 큰 수혜는 쿠팡이지 않을까? 집 앞까지 아침식사 전 도착하는 우리나라 클래스, 배달의 민족 또한 큰 한몫을 채운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마스크의 품귀현상으로 보기 힘든 광경을 펼쳐지곤 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는 약국 앞에서 줄을 한 시간 정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뉴스에서는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갔다가 죽은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나왔다. 죽은 고등학생은 코로나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너무나 무서웠다. 2월에는 정부에서 공적 마스크라고 일인당 2장씩 마스크를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워낙 마스크 관련 사기도 많고 마스크 가격이 100배는 넘게 올랐기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는 아직은 추운 2월 사람들은 2미터씩 줄을 서서 추위에 떨며 마스크를 사야 했다. 특히 우리 동네는 다른 동네보다도 3도는 더 온도가 낮았는데 그런 날은 검은색 롱 패딩을 철저하게 입고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갔다. 마스크를 사는 날은 유일한 외출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런 날이 되어서야 동네 사람들 얼굴 구경도 하고 바깥공기를 쐬기도 하였다.
모두 거리두기를 하며 마스크를 기다리면서 선 긴 줄이 공산국가의 밥을 배급받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발 빠르게 마스크 값을 잡아 주어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마스크 가격이 4만 원 이상인 것도 있었고 불량 마스크를 유통시키는 일도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었다. 생명이 걸린 문제였지만 사람들은 이런 것에서 조차도 욕심을 부렸다.
성악설!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악하다는 말이 맞나!! 싶지만 위기에 영웅도 있든 마음이 따뜻해지는 뉴스들도 있었다. 본인의 마스크를 모아 대구 의료진에게 감사의 편지와 함께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
사스 때도 그렇고 메르스 때도 그렇고 우리는 결국 전염병의 종식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던 경험이 있고 '길어야 두서 달이면 끝나겠지 '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집콕을 감행했다. 하지만 집에 있는 날들이 길어지니 힘들고 우울해졌다. 하지만 뉴스에서 많은 의료진들이 대구로 달려가 그들을 돕는 모습에 그리고 그들의 입가에 깊게 파인 마스크 자국을 보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져 우울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대한민국에는 마스크 사기꾼이 판을 치는 썩은 인간들도 있지만 이런 위기에 저렇게 달려가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버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대구로 달려간 소방사님들과 의료진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코로나 시국의 인간의 민낯
코로나 확진자가 결국 서울, 경기권까지 확대되면서 결국에는 우리 동네에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맘 카페에서는 어디 아파트에서 나왔다느니 어디 초등학교 라느니 생난리가 났다. 첫 확진자는 대구 친정부모님과 칠순을 맞이해 여행을 다녀 온 후 확진이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판국에 가족 모임을 꼭 해야 했냐 하며 욕을 했다. 결국 첫 확진자는 대국민 사과처럼 긴 사과문을 맘카페에 남기고 이 동네를 떠나 이사를 했다. 지금은 확진자의 신상이나 동선이 공개되지 않지만 초반에는 동선이나 신상이 누구인지 알 정도로 공개가 되었다.
솔직히 확진이 되어 놀란 마음이 누구보다 컸을텐데 대역죄인처럼 사과를 하고 이사까지 하는 모습에 어려운 시국, 이런 작은 동네에서도 서로를 감싸 안지 못하는 모습이 아쉬웠다. 나 또한 욕을 하진 않았지만 '확진되어 얼마나 놀랐을까'하는 마음보다는 ' 이 시국에 꼭 대구사람을 만나야 했나'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다.
이런 원망스러운 마음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전염병에 동양인 혐오는 나날이 심해져 갔다. 현재 병명이 코로나19로 바꿨지만 처음에는 우한 폐렴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 우한에서 비위생적으로 박쥐고기를 먹다가 생긴 병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천 명씩 죽어나가는 유럽, 호주, 미국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동양인을 마구잡이로 때린다던지, 동양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습격하기도 했다. 위기가 오니 사람들은 원망의 대상을 찾아 폭력을 쏟아내려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심각한 사태여서 해외 교민, 유학생들은 국내로 들어오고 싶어 했지만 하늘길이 막혀 들어오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를 감싸는 소수와 위기 속에 원망하는 다수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한발 내딛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 이렇게 2년이 되도록 종식되지 못할것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위드 코로나로 갈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나 초기 확진자들에게 원망을 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가깝게는 우리 동네를 떠난 그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