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AGA와 온톨로지, 그들만의 리그

향수에 젖은 수사와 일자리를 소멸시키는 현실

by 정관영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스산한 공장 지대 위로 "위대한 미국을 다시(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가 울려 퍼질 때, 유권자들은 땀과 열기로 가득했던 용광로의 부활을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열망이 만들어 낸 보호무역의 장벽 안에서, 정작 현실의 공장은 인간의 온기 없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다크팩토리(Dark Factory)로 채워지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향수에 젖은 정치적 수사(MAGA)와, 바로 그 과거의 노동을 영원히 소멸시키는 기술적 현실(Ontology)이 기묘하게 손을 잡는 역설. 이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질주하는 정치 엘리트와 기술 엘리트가 협연하는 ‘그들만의 리그’이며, 그 무대 밑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비극의 장이다."




노동 패러다임 전환, 그 심장부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AI는 생산성 극대화라는 기업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성실한 노동이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는 인류의 오랜 사회계약을 파기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기도 하다. 인간의 육체노동은 물론이고 인지 노동까지 대체하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공장 전체에서 쏟아지는 빅데이터에 위계와 질서를 부여하는 온톨로지, 그리고 수많은 휴머노이드들을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여 다크팩토리 전체의 운영체제(OS)가 되는 AI. 우리는 이 거대한 변화의 본질을 법의 프리즘으로 분석하고 다가올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준비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섰다.



향수의 망령과 자동화의 칼날 ― 귀환하는 공장, 사라지는 노동자


1. 낡은 약속과 새로운 질서의 충돌


MAGA는 단순한 정치 구호를 넘어 경제적 기반을 잃어버린 미국 제조업 노동 계층의 불안과 향수를 동력으로 삼는 보호무역주의적 경제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그 핵심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시켰다고 진단하고, 강력한 관세 장벽과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제조업 일자리가 넘쳐나던 과거로 회귀할 것을 약속하는 데 있다. 이는 효율성보다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는 신중상주의(Neo-mercantilism)의 부활이며,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블루칼라들의 잃어버린 자부심을 되찾아주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에 맞서는 기술적 현실은 ‘온톨로지(ontology)’로 대표되는 완전 자동화의 질서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가 주도하는 이 개념은 이전 챕터에서 ‘데이터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으로 설명되었듯이, 이 맥락에서 인간의 개입 없이 24시간 동작하는 다크팩토리의 지능형 운영체제(OS)를 의미한다. 온톨로지는 AI와 결합하여 공장 내 모든 설비와 로봇·공급망 데이터를 연결하고, 현실 공장의 ‘쌍둥이’를 가상공간에 구축하며(디지털 트윈), 이 가상세계 안에서 현실의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통제한다.¹ 인간의 모호한 자연어 지시를 이해해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작업을 명령하고 생산 과정의 모든 비효율을 스스로 최적화하는 것. 이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생산 공정의 변수로 간주하고 제거하려는 새로운 산업 질서의 등장을 알린다.


이 두 세계 - MAGA와 온톨로지 - 의 접점에는 다름 아닌 AI가 있다. MAGA 구호의 핵심인 제조업 리쇼어링은 AI가 탑재된 휴머노이드와 공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온톨로지가 구축하는 새로운 질서 역시 AI의 지능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예컨대 AI 비전 시스템은 미세한 불량을 인간의 눈보다 정확하게 찾아내고, 강화학습을 거친 로봇 팔은 복잡한 조립 공정을 스스로 터득한다.² AI 기반의 온톨로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스스로 학습하고 대응하며 인간의 인지적 판단 능력까지 모방하고 뛰어넘는다. 결국 MAGA가 되돌리려는 ‘인간 중심의 생산 현장’은, 바로 그들이 보호하려는 자국 영토 안에서 AI라는 더 지능적이고 효율적인 ‘기계 노동자’에 의해 가장 먼저 대체된다. 이보다 더한 역설이 있을까?


2. 역설적 동맹 ― 왜 반대되는 힘이 같은 결과를 낳는가?


MAGA의 향수에 젖은 수사가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 문제를 넘어 ‘존엄성의 상실’이라는 깊은 상처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제조업에 종사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의 중추를 이루었던 노동자들에게 공장의 해외 이전은 단순한 실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사회적 정체성의 붕괴이자, 자신의 노동이 더 이상 가치 있지 않다는 자괴감을 의미했다. MAGA의 구호는 이들에게 잃어버린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자부심 넘치는 생산자이자 가장(家長)’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겠다는 강력한 약속으로 다가온다. 이는 상처받은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심리적·문화적 메시지이기에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가지며, 어떤 합리적 비판보다 강력한 심리적 유대를 형성한다.


반면,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치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윤 극대화’와 ‘경쟁에서의 생존’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냉엄한 논리에 따라 온톨로지 기반 자동화를 멈추지 않는다. 24시간 가동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임금, 복지, 노사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AI가 통제하는 공정은 인간의 실수를 원천 배제하여 압도적인 생산성을 보장한다. AI의 압도적인 경제적 효율성은 기업 경영진에게 초자동화(Hyper-automation)³를 단순한 선택이 아닌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경영 전략으로 만들며, 정치적 수사와 현장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특히 MAGA의 보호무역주의는 역설적으로 자동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수입 관세로 말미암아 국내 생산의 필요성이 커져도, 높아진 국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은 노동자를 채용하는 대신 ‘국내의 무인 공장’에 투자한다. 이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동기로 움직이는 두 힘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며 같은 결과를 낳는다. MAGA를 외치는 정치 엘리트들은 관세와 보조금으로 ‘공장의 귀환’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얻어 유권자에게 선전한다. 기술 엘리트들은 정치권이 만든 보호무역 장벽을 활용하여 해외의 저임금 노동력 대신 미국 내에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는 ‘다크팩토리’를 짓는다. 결국 MAGA의 정치적 목표(리쇼어링)와 온톨로지의 기술적 목표(완전 자동화)가 역설적으로 만나 서로의 명분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MAGA라는 운동 자체의 대중적 서사를 전복시킨다. 이 리그 안에서 정치권과 빅테크 기업은 각자의 실리를 챙기지만, 그 결과는 리그 바깥의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없는 공장의 귀환”이라는 냉혹한 현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3. 파괴된 사회계약과 낡은 법의 한계


프리츠 랑 감독의 1927년 작 《메트로폴리스》는 부유한 산업가들이 지상에서 메트로폴리스 시를 지배하는 동안 지하의 노동자들은 도시에 동력을 공급하는 기계를 작동하기 위해 비참하게 일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혹독한 노동, 과로사, 폭발사고와 사망을 묘사한다. 하지만 개봉 후 1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현실은 영화와 같은 모습은 아닌데, 현시대 인류는 기술 발전을 통해 노동과 산업재해를 줄여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트로폴리스》가 짚은 인간성 상실이나 계급 갈등 같은 통찰과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기계 문명과 인간 소외, 삶의 의미를 잃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모습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경고한다. 또한 영화는 양극화된 두 세계를 보여주어 계층 간의 갈등이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배층이 만든 여성형 로봇 ― 노동자들의 성녀 마리아를 본떠 만든 ― 이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장면을 통해 지배계급이 대중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드는 ‘기만적인 기술’을 암시한다. 그리고 오늘날 AI가 주도하는 현실은 이 경고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MAGA와 온톨로지의 위험한 동맹, 다시 말해 미국의 신 우파 엘리트들과 실리콘밸리 빅테크 자본가들의 연맹이 필연적으로 일자리 소멸로 귀결되는 이유는 ‘생산의 귀환’이 ‘노동의 귀환’과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MAGA의 수사는 노동자들에게 ‘과거의 좋은 일자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온톨로지의 현실은 그 자리를 영원히 삭제해버린다. 생산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넘어가면서 AI와 로봇을 소유한 소수의 빅테크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고, 노동력을 대체당한 대다수는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다. 극심한 양극화는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대중을 더욱 극단적인 정치 선동에 취약하게 만들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환멸을 낳는 씨앗이 된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 공동체 자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험을 초래한다.


‘성실한 노동이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는 20세기의 사회계약은 이로써 파기된다. MAGA로 ‘존엄성’을 되찾으려던 노동자들은 다시금 사회에서 ‘소외’되고, MAGA-온톨로지 동맹의 0.003%에 해당하는 최고 정치엘리트들과 거대 기술엘리트들이 나머지 99.997%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⁴를 지배하면서 계급 갈등은 극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는 것이다.


기존의 법률 체계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 앞에 무력하다. ‘인간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노동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계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단적으로 다크팩토리에서 새로운 유형의 위험⁵이 발생했을 때 그 법적 책임을 AI 소프트웨어 개발사, 로봇 제조사, 공장 운영자 중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더욱이 현행 조세 제도는 인간의 노동에는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부과하면서 기계 노동(자동화 설비)에 대해서는 오히려 투자세액공제 등 혜택을 준다. 이는 기업이 인간을 고용하는 것보다 로봇을 도입하는 것이 세금 측면에서 더 유리하도록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든다. 이러한 법적·사회적 역설은 근본적으로 AI라는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AI는 인간의 지시 없이도 판단하고 행동하는 대리인(Agent)의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결국 ‘MAGA와 온톨로지’의 기묘한 동맹이 드러내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를 약속하는 정치가 실제로는 그 과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자기 파괴적 모순이다. “기존 사회계약의 파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와 생산성을 어떻게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전환할 것인가”라는 정치 철학적 질문이다. 이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가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다가올 AI 시대를 유토피아로 만들지 또는 디스토피아로 만들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담대한 도전 ― 멀리 가려면 함께 가기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인간 노동의 종말의 시대를 맞이하여 어떤 법적·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까?


기술의 흐름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를 인정하고,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를 사회 전체가 공유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계약과 법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담대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먼저 AI와 로봇이 창출한 이윤의 일부를 ‘로봇세’ 형태로 징수하고, 이를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사회적 의제로 본격 논의해야 한다. 이는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사회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온톨로지 권력이 소수 빅테크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공공 데이터와 핵심 알고리즘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AI의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그 작동 방식에 대한 투명성과 설명 책임을 강제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개편하여 전 국민이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과 인문학적 소양을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노동 중심 사회 이후의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기술이 아닌, 기술로 인해 증폭된 부와 기회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정치와 철학의 문제다. AI가 열어젖힌 새로운 생산의 시대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분배와 참여의 규칙’을 만드는 용기 있는 사회적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¹ 가령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의 플랫폼은 공장 현장을 전체 가치 사슬과 연결한다. 식품 제조업체인 랜드오프로스트(Land O'Frost)의 사례에서 40시간이 걸리던 생산 일정 수립 프로세스를 30분으로 단축시킨 것처럼, 실시간 공급망 데이터와 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생산 일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 Rudro Chakrabarti, 「Palantir CEO says he'll 10X revenue while reducing workforce over 10% in 'crazy efficient revolution' — what investors need to know as stock hits record high」, Moneywise, 2025. 8. 10., https://moneywise.com/news/investing/palantir-ceo-says-hell-10x-revenue-while-cutting-500-jobs-in-crazy-efficient-revolution 참조. (최종 방문일 : 2025. 8. 16.)

² 카메라와 AI 기술이 결합된 시스템으로, 로봇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 기술에 기반한 피킹 로봇은 딥러닝 비전(Vision)과 강화 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상품을 스스로 분류하고 처리하며, 이는 물류 작업 프로세스에 필요한 시간을 줄여준다. SK 주식회사 AX, 「Vision AI(비전 AI)로 진화한 로봇이 산업에 가져온 혁신」, 2025. 3. 4., https://www.skax.co.kr/insight/trend/3174 참고. (최종 방문일 : 2025. 8. 17.)

³ 초자동화는 조직이 최대한 많은 비즈니스 및 IT 프로세스를 신속하게 식별, 검증 및 자동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즈니스 중심의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말한다. AI, 머신러닝,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 도구 또는 플랫폼을 조율하여 활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Gartner, 「Definition of Hyperautomation」, https://www.gartner.com/en/information-technology/glossary/hyperautomation 참고. (최종 방문일 : 2025. 8. 17.)

⁴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처음 쓴 말로, ‘불안정하다(Precario)’는 이탈리어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다. 플랫폼과 AI가 주축인 사회 구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업 상태로 전락하거나 단순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서 나왔다. 윤석만, 「[윤석만의 인간혁명]AI 불평등 ‘프레카리아트’ 계급사회 온다」, 중앙일보, 2017. 11. 1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082398 (최종 방문일 : 2025. 8. 17.)

⁵ 다크팩토리와 같은 스마트 팩토리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일반 공장에서 발생하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 송/수신의 오류 또는 이상 전송에 따른 설비 오작동, 인간과 로봇 간의 충돌 등과 같은 안전사고 등이 그것이다. 정소미, 2019, 「화학공정산업의 스마트 팩토리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에 관한 연구」, 아주대학교 공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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