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2017) 봄#2
스무 살, 난생처음 부산에 갔다. 일생에 한 번뿐인 스무 살의 막바지였다.
아마 자정 무렵 광안리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의 밤은 밝았고 미친 듯이 몰아치는 파도는 어두웠다.
11월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쉬지 않고 얼굴을 세차게 때렸지만 코 끝에 훅 닿는 바다의 짠 내음이 추위를 잊히게 했다. 나는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원래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문장보다는 바다를 봐도 별 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왜일까. 스무 살의 밤바다가 생각보다 너무 밝아서였을까, 그곳의 열기가 낮 보다 강해서였을까. 바다를 큰 배경으로 한 그 모든 풍경이 내 마음에 세게 박혔다.
단지 그 풍경 하나가 어떤 큰 사건처럼 내 마음을 스치고 갔다.
조금 더 자세하게 내 마음을 풀어쓰고 싶지만 그저 원초적인 느낌만이 떠오른다.
그날의 잔향에 부산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공허를 피해 더욱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혼자일 때 느끼는 불완전한 공허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흰색 원피스를 꺼내 입고 까만색 고양이 인형이 달린 자동차 키를 집어 들었다.
완벽하게 대비되는 흰색과 검은색이 눈에 띠었다.
아이보리 따위의 흰색을 애매하게 가장한 색은 좋아하지 않는다.
버스의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빠르게, 혹은 아주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싶을 때가 있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여러 상념에 젖은 채 운전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체력적으로 조금 힘이 들 테지만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운전을 해서 가기로 했다.
이 즉흥적인 여정을 함께 할 누군가는 내내 옆에 붙어있을 이 까만 고양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창을 열고 달리는 차에 가속도가 붙어 조금 더 날카로운 이른 봄의 바람을 맞았다.
창을 열고 운전하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영하권의 추운 겨울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창을 열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쪽을 선택한다. 인공적인 바람이 아닌 자연의 바람만이 내게 주는 감정이 있다. 바람이 내게 주는 선물을 모든 오감을 곤두세워 받아내고 싶다.
어쨌든 난 아직 겨울의 잔향이 남은 이른 봄의 날카로운 바람을 맞으며 여행길에 올랐다. 급하게 필요한 것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할 요량으로 최소한의 짐만 챙겼다. 사실 얼마나 짧게, 혹은 얼마나 길게 머무를지 내 결정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짐을 챙기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그다지도 먼 장거리 운전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운전을 할 때면 꼭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세 잔 정도 마셨을까. 카페인이 충족되지 않으면 운전의 피로감이 확연히 느껴질뿐더러, 씁쓸하면서 고소한 커피 향이 없으면 무언가 부족한 조금 아쉬운 시간이 된다.
육체적 피로감을 제하면 오감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열린 창 틈으로 살며시 다가오는 바람과 그 바람이 싣고 온 봄의 향기.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눈에 새긴 그 순간과 조금은 쓴 커피.
어떤 날,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물회를 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당시의 난 물회라는 음식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스치듯 그 장면을 본 이후로 언젠간 물회를 꼭 먹어봐야지- 했다.
물론 물회를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가장 원하는 때에 맛을 보고 싶어 그 감정을 아껴두었던 것 같다.
나는 목적지에 주차를 한 후 곧장 보이는 횟집에 들어갔다. 지금이 묵혀두었던 감정을 꺼내기 좋은 때라 여겼다.
난생처음 먹어본 음식의 첫 한 입은 매우 인상 깊었다. 그 한입에서 느낀 감정만으로도 즉흥적인 이 여행에 꽤나 묵직한 의미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왜냐, 그 이후 물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횟집에 혼자 식사를 하는 손님은 나뿐이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부담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말없이 음식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라는 것은 참으로 편안한 일이다. 하지만 혼자임에 따라오는 외로움은 느끼고 싶지는 않다.
편안함만 취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랄까.
물회는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니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고, 또 많이 마신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통창이 있는 카페에 갔다. 이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내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넣어둔 나의 카페가 생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거의 마지막 챕터가 되지 않을까.
아무튼 발길이 닿는 대로 들어간 카페지만 분위기에 실패는 없었다. 맛에 대한 실패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순간 나의 감정과 맞바꾼다 생각하면 너른 마음으로 조금 부족한 맛을 이해할 수 있다.
아, 조금 산만하지만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열어둔 내 카페의 문 틈 새로 추적추적 빗소리가 섞여 들어오고, 내가 틀어 둔 곡이 열네 번째 반복 재생 되는 중이다.(카페 마감 후 사색을 즐기기 위해 남았다.)
이 빗소리가 그날의 나를 더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그날의 난 바다가 보이는 통 창 앞자리에 앉아 꽤 오랫동안 천천히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내가 그곳에서 구매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불완전한 공허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일 테지.
낮의 직사광선이 통 창을 통과해 곧바로 내 얼굴에 닿았지만 괜찮았다. 그저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실재하는 현재를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나는 훗날, 추억과 맞바꿀 시간을 샀다.
아직 다 느끼지 못한 불완전한 공허의 잔상과 함께 카페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