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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향(向)

너(2017)봄#1

by 리그리지 전하율

그해의 시작은 어린 고양이가 대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늑장을 부리는 것처럼 여유로우면서도 누군가에 쫓겨 숨도 못 쉬고 도망치는 사람처럼 마음이 조급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감정이지만 난 꽤 자주 그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다.

아마도 나의 긍정과 부정의 충돌이 모순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대개 이러한 모순적인 감정을 느낄 때면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이야기에 드러날 대부분의 감정이 조금은 모순적이고 이중적일 것이다.



우선은 어릴 적 첫 감정의 시작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아마도 열 살 때 즈음 어머니를 따라갔던 백화점 꼭대기 층 문화센터에서 [연극반 모집]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았다. 뒤에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 극. 반. 모. 집이라는 그저 다섯 글자에 꽂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작은 손을 들어 배너에 쓰여있는 다섯 글자를 가만히 만져보았다.

열정. 내가 처음 ‘열정’이라는 감정을 느낀,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 작은 파도가 일렁인 날이었다.

물론 아주 어릴 때였으니 열정이라는 단어를 바로 떠올리지 않았겠지만 좀 더 머리가 자란 후 단어에 대한 개념이 생겼을 때 내가 당시 느꼈던 감정이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가족은(부모님) 어릴 적부터 나의 영민함을 알아보고 내가 평범한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길 바랐다.

하지만 가족이 진작 알아챘던 나의 영민은 고집이 되었고 가족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연기라는 작은 파도를 내 손에 쥐었다.

열정이 꿈이 되는 순간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어느 순간 인생이 되었더라는, 뭐 그런 전개다.

끝까지 나의 작은 파도를 반대하던 어머니가 연기 학원에 가라며 내게 카드를 건네던 날이 시작이었을까.

아무튼, 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작은 파도와 함께했다.

그렇게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내 시간은 흘렀고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입시라는 피할 수 없는 산이 내 앞에 위협적으로 놓여있었다. 그 산은 참 몸집이 거대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 단 한 번, 더 이상 나의 파도가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몹쓸 마음은 나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교활하게 숨어있다가 그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몸집을 불려 악당처럼 등장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의 파도가 아름답지 않다고 느꼈을 뿐이다. 나는 꽤 예민했다.

그 누구도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내 결정을 바꾸기 위해 나를 설득했고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확고해졌다.

당시의 난 아름답지 않은 것은 내게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치관 때문이었을까. 고3에 입시를 포기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친 짓거리를 저지르고도 난 태연했다.

단지 새로운 것에 나를 맡기고 싶었다.

그래, 어쩌면 짧은 내 인생의 전부였던 작은 파도에 대한 권태감이었을 수도 있겠다.

처음으로 내 마음에 일렁인 작은 파도를 내 손으로 놓은 이후 나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유로웠다. 그러나 슬펐다.

그 작은 파도는 나를 잡지도, 구속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모순적인 감정 속에서 헤매었지만 결국 새로운 파도는 없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나의 마음에 일렁였던 작은 파도에 돌아가기로 했다.

내 멋대로 행동해 물의를 일으켰다는 죄스러운 마음에 부모님에게 비용을 일절 지원받지 않고 조용히 대입을 준비했다.



2017년 봄,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어린 고양이가 대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늑장을 부리는 것처럼 여유로우면서도 누군가에 쫓겨 숨도 못 쉬고 도망치는 사람처럼 속이 애달팠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런 모순적인 감정이 들었다.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감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당시의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연기에 대한 미적지근한 마음과 눈을 낮춰 입학한 학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만과 모순의 합은 참 못났더라는 생각을 한다.

난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켰지만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는 신입생들 사이에서 오롯이 혼자라는 건 생각보다 큰 공허감을 주었고 나는 공허를 느낄수록 모순적인 감정에 집착했다.

스스로 높게 쌓아 올린 담장이었지만 그 담장이 어느새 끝이 보이지 않게 되니 정말 내가 혼자이길 바란 것이 맞는지 헷갈렸다. 그 헷갈림은 결국 공허였다.


마음이 불안한 날이 있었다.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오전 여섯 시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다. 물이 거의 끓어 갈 때 즈음 난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오롯이 혼자일 때 보다 타인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형상이 없던 공허는 실체가 되어 다가온다.

그날은 단지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공허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것을 관두고 아직 끓는 지점에 도달하지 않은 물이 담긴 전기 포트의 전원을 껐다. 완벽히 끓진 않았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엔 오히려 적당한 온도였다.

거실의 좌식 테이블에 앉아 애매한 온도의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다.

부산에 가고 싶었다. 정확히는 부산의 광안리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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