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제 말해."
겨울의 끝자락, 고집스러운 한기가 여전히 남아 몸을 움츠리게 하던 2월의 어느 밤.
나는 당신이 나의 실재가 아님을 알았다.
당신은, 그저 허상이었다.
일 년 전.
오늘보다 더 매서운 바람이 뼛속 깊이 파고들어,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기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그날.
당신은 ‘암이 재발했다’는, 공포에 가까운 문장을 내던졌다.
지난 일 년 동안 나의 단 하나뿐인, 가장 대단한 바람은
당신이 실재이기를 바라는 일이었다.
당신은 침묵을 지킨다.
당신이 끝내 지켜낸 그 침묵 속에서,
우리의 계절을 오가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은
결국,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 작품이 전하는 언어는—
"감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누군가는 어떤 작품을 보고, 감히 사랑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누었던 무언가도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지금 이 순간에도 놓지 않고 있다.
당신이, 이 여백을 깨주기를 바란다.
나는 꽤 오랫동안 자주, 당신의 죽음을 상상했다.
만약 당신이 이 짧은 생을 끝내 끝내 나의 손을 놓아버린다면,
나는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만개한 꽃이 지는 봄날의 끝자락에서,
환하게 웃으며 당신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죽음’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나는 침묵 속에 갇힌 당신의 표정을 살핀다.
당신의 그 무표정이, 결국엔 모든 사소한 의미조차 상실해 버릴까 두렵다.
우리의 사랑이 단 한순간이라도 실재했는지 이젠, 설명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