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국립극단 기획초청 양손프로젝트 <파랑새> 후기
양손프로젝트의 파랑새는 기존 연극의 형식을 벗어난다. 무대에는 남녀 두 명의 배우만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여러 인물을 넘나 든다. 때로는 해설자가 되고, 때로는 서술자가 되며, 반주자이자 효과음을 만드는 존재로 기능한다. 그들의 말과 몸짓이 곧 무대이며, 이 공연의 가장 독창적인 요소는 바로 이러한 전면적인 수행성(performativity)에 있다.
이 공연에서 배우들은 단순히 텍스트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역할과 해설자, 무대 장치와 음향 효과, 심지어 연주자까지 오가며 다층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만들고, 손짓은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며, 몸의 흐름은 물결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의성어나 의태어를 넘어서, 배우들이 공간 자체를 창조하는 행위자가 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관객과 배우, 연출이 서로를 신뢰해야만 가능한 무대라는 것이다. 무대에는 실제로 문이 존재하지 않지만, 배우가 소리를 내면 우리는 문이 열리고 닫힌다고 믿는다. 물이 흐르지 않지만, 배우의 몸짓과 손짓이 물의 흐름을 표현하면 우리는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신뢰는 무대 장치 없이도 상상력으로 구축되는 연극적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공연을 보는 동안, 문득 이것이 일종의 고도로 발전된 낭독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은 단순히 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낭독’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낭독극은 배우가 대본을 들고 읽는 형태로 진행되지만, 파랑새에서는 배우가 스스로 효과음을 만들고, 움직임을 통해 장면을 구성하며, 단순한 목소리 전달을 넘어선다.
여기서 낭독은 단순한 텍스트의 음성화가 아니라, 완전한 퍼포먼스로 전환된다. 배우들이 읽는 대사는 더 이상 대사만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을 만들고, 소리를 구축하고, 서사를 시청각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효과음을 배우들이 직접 내면서, 오디오 드라마와 무대 연극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탄생한 것이다.
이 공연이 기존 연극과 다른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배경음악이나 녹음된 효과음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된 소리들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 공연의 주된 음향은 배우들의 입과 몸짓에서 비롯된다. 이는 마치 배우들이 직접 텍스트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익숙한 음악극과 달리, 이 공연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멜로디와 리듬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리듬 자체가 하나의 음악적 구성으로 작용한다. 텍스트가 단순한 말의 흐름이 아니라, 리듬과 질감을 가진 음향적 요소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공연을 ‘텍스트 콘체르토(Text Concerto)’라고 부르고 싶다. 협주곡(Concerto)이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라면, 여기서 배우들은 텍스트를 연주하는 독주자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이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 공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연극의 개념을 확장한다. 배우들이 스스로 효과음과 장면을 창출하는 방식은 연극적이면서도 음악적이며, 동시에 퍼포먼스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단순한 연극으로 분류하기보다는 텍스트 기반 퍼포먼스(Text-based Performance), 혹은 소리 연극(Sonic Theatre), 텍스트 신체극(Text Physical Theatre), 리듬적 표현극(Rhythmic Expressive Theatr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다. 공연 내내 배우들이 텍스트를 전달하는 방식은 마치 언어를 넘어서 음향적, 시각적 요소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종합적 퍼포먼스로 작용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듣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통해 공간과 리듬을 경험한다.
양손프로젝트의 파랑새는 텍스트 중심의 연극이 음악극의 형태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음악극이라고 하면, 멜로디와 리듬이 조화를 이루는 형태를 떠올리지만, 이 공연은 ‘음악’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킨다.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몸짓이 하나의 악기가 된다면, 이 공연은 ‘악기 없는 음악극’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혹은 텍스트를 연주하는 공연이라면, ‘텍스트 콘체르토’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우리는 이 공연을 통해 ‘연극’이 무엇인지, ‘음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경계를 어떻게 허물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기존의 낭독극을 확장한 형태인지, 연극과 음악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실험인지—이것이 무엇이라고 불리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양손프로젝트의 파랑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극의 틀을 벗어나, 배우의 수행성과 관객의 상상력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 예술을 창조해 냈다. 이것은 단순한 연극이 아니라, 텍스트를 위한 퍼포먼스였으며, 무대를 소리와 몸짓으로 연주하는 협주곡이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으며,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