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예술단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 후기
오늘은 독특한 소재와 화려한 무대 장치로 주목받고 있는 <천 개의 파랑>을 관람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각적 요소와 배우들의 역량 면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담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작품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무대 전방을 가득 채운 가로세로로 긴 전광판이었다. 각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전광판을 통해 배경 이미지가 유연하게 전환되는데, 단순한 LED 스크린 효과를 넘어 ‘근미래 사회’라는 배경을 실감 나게 표현해 주어 극의 몰입도를 크게 높여주었다.
무대 바닥 또한 ‘레일’ 형태로 설계되어 있어, 소품과 무대 장치를 유기적으로 들였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무대 전환도 빠르고 역동적으로 진행되었고 다양한 공간적 배경을 표현하기에 무척 효과적이었다.
음악적 완성도 역시 눈여겨볼 만했다. 특히 앙상블이 함께 부를 때 느껴지는 화음이 무척 탄탄했으며, 주연배우들의 노래 실력도 대단했다. 이들의 ‘성우’ 같은 목소리와 정확한 딕션 덕에 귀도 편안했다. 무대 위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곡과 곡 사이의 연결도 매끄러워 관객 입장에서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너 가지 이상의 주제를 한 작품 안에 동시에 담으려는 시도가 다소 무리하게 느껴졌다. 작품은 크게 1)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관계, 2) 인간과 동물(말)의 관계 [또는 휴머노이드와 동물(말)의 관계], 3) 장애와 비장애의 관계, 4) 아빠를 잃은 가족의 상실과 소통 문제,라는 네 가지 축으로 이루어졌다.
이 네 가지 이야기가 각각 흥미로운 소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뮤지컬 안에서 모두 소화하기에는 분량과 깊이 면에서 부담이 커 보였다. 결국 공연 시간은 세 시간에 달했고 중반부부터 산만해지면서 관객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 특성상 어린이-청소년 관객들이 많은 것에 비례하여 이른바 ‘관크’의 빈도 역시 점점 높아졌다.
무대를 화려하게 채우고 싶은 의도는 이해하지만 배우가 로봇 역할임이 이미 명확한데 굳이 로봇 모형을 함께 등장시킨 점은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실제 기수 로봇 ‘콜리’의 첫 등장 이후 로봇 소품과 로봇 조작 인원은 경주마 ‘투데이’의 모형 뒤에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또한 경주마 ‘투데이’ 모형을 움직이기 위해 조작 인원 세 명이 붙고 여기에 더해 휴머노이드나 주변 인물들도 많아지다 보니,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캐릭터인지 혹은 무대 연출만을 위한 인원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은혜’가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역시 사람이 ‘은혜’를 직접 들다 보니 자유로운 느낌보다는 다칠까 봐 불안한 느낌이 더 컸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한꺼번에 녹여내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근미래 세계관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무대 장치와 뛰어난 노래 및 음악적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대형 전광판과 레일 무대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는 정말 매력적이라 미래 도시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듯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로봇, 인간-동물, 가족 간의 상실과 소통, 장애와 비장애의 문제 등 너무 많은 소재를 한꺼번에 풀어내려다 보니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에 있는지 초점이 흐려졌고 공연시간이 길어지는 아쉬움을 남았다.
그래도 다양한 실험정신이 돋보이고 무대와 음악이 좋았기에 볼거리를 찾는 분들께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이 작품이 조금 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축을 다듬는다면 훨씬 매끄럽고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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