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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황인갑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논제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 자유 논제

1. 정신의학박사 빅터 프랭클은 독일 나치가 점령하던 1942년, 테레지엔슈타트 강제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굶주림과 가스실에서 학살당합니다. 빅터 프랭클만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출간하는데요. 책은 작가가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화와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별점과 함께 소감을 나누어 봅시다.


2.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3.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우리가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리가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라고 이유를 밝히는데요. 하지만 작가는 수용소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체험을 책에 담습니다. 그는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털어놓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었다”(p.30)고 고백하는데요. 여러분은 자신의 체험을 책으로 출간한 작가의 선택을 어떻게 보셨나요?


강제수용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글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있었다. (중략) 앞으로 전개될 글에서 내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런 체험의 명확한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수용소 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을 위해 나는 그들의 체험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수용소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그래서 아직도 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당했던 일에 대해 말해 주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중략)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털어놓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었다. 이 책을 쓸 때 나는 원래 내 수감번호만 쓰고 이름은 익명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원고를 완성했을 때, 익명으로 책을 출판할 경우, 책이 지닌 가치의 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용기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장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p.29~31)



4. 강제수용소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반응들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하는데요. ‘무감각의 단계’ 즉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p.52)에 놓이게 됩니다. 사람들은 수용소의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면서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p.54)고 저자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한 사람이 같은 반 동료들과 함께 행진을 나가기 위해 문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비명 소리와 함께 동료 한 사람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으켜 세워지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알고 보니 그 사람에게 열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병실 담당자에게 말할 시간이 적절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해 규정에 어긋나는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심리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선 그 사람은 그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p.54)


5. 수용소에서 병든 사람을 요양소로 보내는 ‘환자 호송계획’에 의사가 필요해서 저자의 이름(번호)이 리스트에 올라가게 됩니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주치의가 리스트에서 빼주겠다고 하자 저자는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p.104)고 말하며 주치의의 호의를 거절합니다. 한편 혼란을 틈타 수용소를 탈출할 수 있게 된 저자는 환자들의 ‘슬픈 눈초리’와 ‘절망적인 눈빛’을 보고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p.110)는 체험도 전하는데요. 여러분은 저자의 이런 선택을 어떻게 보셨나요?


병든 사람을 ‘요양소’로 호송하게 될 때 내 이름(즉 내 번호)이 리스트에 올라갔다. 의사가 몇 명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목적지가 요양소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부터 몇 주 전 비슷한 호송계획이 있었는데, 그때도 역시 사람들은 호송되는 환자들이 모두 가스실로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중략)

“내가 당직실에 얘기를 잘해두었소. 당신을 리스트에서 빼도록 했으니 10시까지 당직실로 가보시오.”

나는 그에게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연민의 빛을 띠었다. 마치 내 운명을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그는 말없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삶을 위한 악수가 아니라, 삶과 작별하는 악수였다.(p.103~104)


■ 선택 논제


1. 저자는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도 단 한 가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p.120)는 것인데요. 저자는 결국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p.121)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저자의 이런 주장에 공감하시나요?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보이는 심리적 반응은 어떤 물리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단순한 표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p.120~121)


- 공감한다.

- 공감하기 어렵다.


2. 저자가 만든 정신치료법 ‘로고세러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p.167)입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p.168)으로 보는데요. 이론에 의하면, 삶의 의미는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p.184) 삶의 의미에 다가가게 되는데요. 여러분은 셋 중 어느 쪽이 우리 사회에 보다 더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중략)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써만 얻어진다는 말이다.(p.183~184)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것 -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 -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마지막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p.184)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p.186)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


■ 토론 소감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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