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는 손」은 이야기 속 가려진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에 대한 강력한 궁금증을 독자에게 던진다. 굳건히 믿었던 대상에 대한 의심이 섬광처럼 번뜩이고 지나갈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 나와는 다른 존재이지만 내가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서 낯설고 불편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취할 수 판단과 태도는 무엇일까. 믿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균열의 틈 속에 어떤 감정이 스며드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나’는 이혼 후 여느 엄마처럼 지극 정성으로 재이를 키워 왔다. 모유 수유와 이유식에 공을 들여 키운 아이가 이젠 너무 많은 사회의 억압과 피로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동남아 출신의 아빠를 둔 재이가 커 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불합리함과 차별은 ‘나’의 보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그저 아이가 시기마다 어려움을 겪어 왔음을 짐작하며 안타까워하고 대견해할 뿐이다. ‘나’의 가족은 사회의 삐딱한 편견을 자주 받아 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에게 던지는 시선이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평가와 피해를 받아온 사람도 늘 피해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상처를 주는 이가 될 수도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재이가 열다섯 살이 된 어느 날 불미스러운 일에 휩쓸린다. 십 대 아이들 네 명이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담배를 사다 줄 것을 부탁하다 거절당하고 훈계를 듣자 시비가 붙게 된다. 아이들 중 하나가 노인에게 발차기를 날리고 노인은 바로 고꾸라져 의식을 잃는다. 그 광경을 건너편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있던 재이가 목격한다. 아이들은 주위를 살피다 도망가고 재이 역시 자리를 피한다. 그러나 이내 재이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인형 뽑기 기계 위에 두고 간 라이언 인형을 들고 다시 자리를 뜬다. 이 모든 장면은 편의점 앞에 주차된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으로 남아 경찰서에 제보된다.
사건이 일파만파 퍼져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버전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게 되고 재이의 신상이 노출된다. 재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라는 이유로 더 눈에 띄고 목격자에서 주동자로 언급되기까지 한다. 소문의 진실에 대해 재이에게 어렵게 질문했을 때 서글픈 얼굴로 아니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나’는 미안함을 느낀다. 재이의 생일 케이크 초를 켜기 위해 성냥을 찾다가 ‘나’는 문득 재이에게 죽은 할아버지 장례식에 갈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에게 절할 때는 밥 먹는 손을 가리는 거라고 자세히 알려준다. 하지만 케이크의 초를 끄기 직전 재이가 짓는 웃음 속에서 ‘나’는 동영상 속 재이가 입을 가리며 놀라는 모습이 미소에 가까운 듯한 표정이었음을 불현듯 느끼고 탄식을 터트린다.
이 소설은 절대적 진실에 대해 ‘내’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알고자 하나 절대 알 수 없는 것, 알 수 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게 한다. 또한 차별과 편견으로 점철된 인간관계의 모순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게 한다.
1. 연쇄적 차별과 편견
‘나’는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들른 제과점에서 이웃 여자들이 동영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 아빠가 동남아 사람인 재이의 외모가 눈에 띄어 여자들의 수다에 오른다. 재이가 한패, 주동자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개는 목격자”라는 누군가의 말은 묻혀버리고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말로 재이를 규정한다.
오래전 남편과 팔짱을 끼고 걸을 때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자 남편은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그들이)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반발심을 느끼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학교 급식실에서 주방 아주머니들은 주방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나’를 예민한 여자 취급한다. “여자 혼자 살아서” 그렇다거나 “저래서 이혼했나 봐”라는 거친 편견의 말들이 들려온다.
하지만 ‘나’와 ‘나’의 엄마도 차별과 편견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재이가 성가대 대표 선출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쓰인 모욕적 문구가 아이들 앞에서 공개되어 상심했을 때 ‘나’는 차별적 언어로 재이를 위로한다. “재이야, 너희 아빤 여기 일하러 온 거 아니야. 공부하러 온 사람이었어.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대.” ‘나’의 말은 또 다른 인종차별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나’의 엄마는 사촌 언니 두 명이 한 달 새 나란히 사고로 아이를 잃자 “우리 집안 죄받았다 할까 봐 부끄러워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낸다”라고 사촌언니 앞에서 무례함을 드러낸다. 내내 피해자로 보이던 재이 역시 소설 후반부에서 동영상 속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틀딱”이라고 얘기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재이의 얼굴에서 차별과 편견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비처럼 타인을 물어뜯어 상처를 낸다.
2. 청결과 얼룩의 관성 그리고 진실의 관계
요양병원 식당의 영양사로 일하는 ‘나’는 자신이 노년의 청결과 위생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청결도 청결의 관성이 있어 자주 치우는 곳만 살피게 되던데. 얼룩도 계속 놔두다 보면 괜찮아질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엄마를 떠올린다. 자신의 눈에는 잘 띄는 얼룩이 시력이 약해진 엄마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변의 먼지가 눈이 흐려 보이지 않는다면 먼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듯 작은 얼룩이나 흠집이 있더라도 내 시야 밖에 있으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진실을 파악하는 것도 어쩌면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재이가 직접적으로 비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쓰러진 할아버지를 방치하고 인형만 챙겨간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매우 편협하다. 재이는 아직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날 일로 재이가 받았을 충격에 대해서만 걱정한다. 하지만 재이는 경찰서 조사관에게 “학원 수업을 빼먹어서 들통나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신고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안다. 그날 수업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이의 말은 ‘나’의 가슴에 묘한 얼룩을 남긴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재이의 이면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워왔지만 재이는 엄마가 모르는 자신의 세계가 있음을 종종 확인시킨다. 어린이집 앞에서 한숨을 쉬는 재이를 보고 “쪼그만 게 웬 한숨이냐”는 말에 “어린이는 원래 힘든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초등학교 때 교회 성가대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독창을 하던 재이는 며칠 뒤 “넌 좀 특별한 것 같”다는 친구들의 말 때문에 노래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는 칭찬이라고 말하지만 재이는 “엄만 한국인이라 몰라”라며 엄마와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명확히 한다.
‘나’는 요리를 할 때, 생일 초에 불을 붙일 때 켠 가스레인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태곳적 사람들이 저녁때 피우던 불을 생각한다. 춥거나 허기지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 피우는 불. 지금은 그중 어느 때일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재이가 분 생일 촛불이 꺼지자 어둠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재이의 얼굴을 찾으려 꼼짝 않는다. ‘나’는 ‘나’가 아는 재이와 ‘나’가 알지 못하는 재이 사이 존재할 진실을 찾으려 내면의 불을 켜기 위한 부동(不動)의 몸부림을 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