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소설책은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총 8편의 단편으로 엮어져 있다. 각각의 작품에서 나오는 슬픔에 괴로워하는 모습과 갈등을 각각의 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해결이 어떤 형식으로 전개되어 가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작품에서 상실이라는 공통 주제가 있다. 아들의 죽음, 강아지의 죽음, 동거녀의 이별 통보, 부족의 사라짐, 교수임용의 실패, 혼혈아 비하를 통한 인격의 상실, 남편의 죽음. 이 모두가 말해주듯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상실에 대한 단편적인 내용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 제목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읽은 내내 생각을 했다. 8편에 담긴 주인공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은 뜨거운 여름일지라도 내가 사는 공간은 한겨울처럼 추운 공간에서 덜덜 떨고 있는 마음의 공간을 역설적으로 표현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1. 고통을 아시나요?
「입동」 시어머니가 집안일을 보아주시고 있다. 어린이집 다니던 아들이 어린이집 차가 후진하다가 사고로 아들이 죽게 된다. 아들의 죽음에 싫어증에 빠진 며느리 대신 집안일을 돌보고 있다.
내가 보험회사 직원이란 근거로 동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돈 것도 그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듣고도 믿을 수 없어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끔찍한 건 몇몇 이들이 그 말을 정말로 믿는다는 것였다. 아내는 직장을 관두고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나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22쪽)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부모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면 모든 것이 종결이 되어 버렸다. 부모의 상실은 돈과 맞교환된 수단이며 충분하다고 결론을 짓고는 어린이집의 과실을 덥기 위해 피해자인 부모를 아들 목숨 값으로 잘 산다고 소문을 퍼트려 이중 가해를 하고 있다.
「노찬성과 에반」 찬성은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고속도로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와 근근이 살고 있는 외로운 아이였다. 찬성에게 친구가 없었다. 에반이 나타나기 전 까지는 그랬다. 터미널에 가장자리에 묶여있던 유기견인 에반을 데려와 외로움의 슬픔을 극복하던 중이었다. 찬성에게 죽음은 이별의 고통과 외로움의 슬픔을 상징한다.
온종일 끙끙대며 뒷다리를 핥던 에반이 찬성 옆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찬성의 얼굴에 엷은 그늘이 깔렸다. 동물병원 의사는 에반이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노견이라 '수술이 더 안 좋을 수도 있다'라고. 찬성은 그 쉬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몇 차례 눈을 깜빡였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의사가 숨을 고른 뒤 차분하게 답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드물게 안락사를 선택하는 분들이 있어.
(중략)
그렇지만 찬성은 어떻게 해야 잘해주는 건지, 에반이 진짜 원하는 게 맞지 알 수 없었다. 때마침 건넛방에서 할머니가 한숨 토하듯 "아이고, 죽어야 모든 고통이 사라지지. 죽어야 근심이 없지. 하나님 나 좀 조용히 데려가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61 ~ 62쪽)
에반은 늙어서 버려졌다. 그런, 에반을 거두었지만 에반은 늙고 병듦을 알지 못했다. 사고로 죽은 아버지는 자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에반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찬성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에반을 죽게 하는 건 찬성의 행동에 달린 것이다. 찬성은 사랑하는 에반을 위해 안락사를 결정한다. 찬성의 잘못이 아닌 이별을 스스로 결정하는 고통을 보여준다.
「건너편」 두 사람은 노량진 공무원 준비 중 만나 동거를 한다. 도화는 2년 만에 경찰에 합격했으나, 도화는 그렇지 못하였다. 몇 번의 탈락 끝에 새로운 직장을 연연하였다. 이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도화는 더 이상 이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직장이 없는 이수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이별통보만을 생각한다. 두 사람 중 나의 위치에 따라 이별통보에 대한 부담이 있고, 이별통보를 받는 사람은 이별에 대한 슬픔이 있을 것이다.
도화가 이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늘 이런 식이야……' 생각했다. 도화가 이별을 준비할 때면 두 사람 사이에 꼭 무슨 일이 생겼다. 이수가 새 직장의 면접을 앞두고 있거나, 도화가 승진을 하거나, 이수의 생일이거나, 누가 아픈 식이였다. (94쪽)
두 사람에게 한 사람의 공무원이 되지 못함에 이별이라는 현실적인 고통을 각자의 고통을 보여 준다. 나 때문에 이별을 하나? 스스로 자문하는 두 사람의 이기적이면서 현실적인 서로 가해자가 된 고통이다. 건너편의 서로 다른 입장에서 나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침묵의 미래」 외부와 접촉이 제한된 '소수언어박물관'에 지내는 사라지는 언어를 가지고 사는 곳이다. 그들 한 명이 죽으면 그 언어는 사라진다. 그들은 서로 사랑도 할 수 없기에 그들의 죽음은 언어의 죽음인 것이다. 15살에 수면제에 취해 잡혀온 노인의 이야기이다. 그는 35살에 탈출해서 고향을 찾아갔으나 그곳은 허허벌판이었다. 그가 본 것은 이제 혼자라는 고통이다.
단지 관리자는 거지꼴로 돌아온 사내를 감정이 절제된 사무적인 얼굴로 쳐다봤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행정절차를 밟았다. 사내는 소독약 섞인 물로 샤워를 하고 의료진 이 처방해 준 약을 받은 뒤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곤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했다. 그의 목에 이상이 온 건 그때부터였다. 그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날마다 지지직댔다. (141쪽)
스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언어를 쓰는 생존자였다. 스스로 언어를 닫아 버리고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
「풍경의 쓸모」 이정우 선생은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K시 B대로 시외버스 출퇴근 중이었다. 학교 앞 정류소에서 학과장인 곽교수와 우연이 만나게 되고, 남부터미널에 내려 주겠다고 한다. 곽교수는 낮술을 한 상태였다. '반주로 딱 한 잔'했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이선생, 오늘 이거……
-네.
-이 사고, 아니 이 차 말이야
-……
-이선생이 몬 걸로 하면 안 되겠나?(166쪽)
곽교수는 차가 밀리자 본인만이 다니는 샛길로 간다. 뻥 뚫린 길이라 마음을 놓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어린 여자아이를 치고 말았다. 곽교수는 음주운전이 걸릴까 봐 이선생에게 대신 운전한 것으로 부탁을 한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곽교수는 주임교수가 되었다. 그 무렵 교수 임용공지가 뜨게 되고 곽교수에게 부탁하는 마음으로 찾아간다. 임용되기만을 기다리며 밀어두었던 어머니 환갑잔치 겸 예순둘인 어머니와 가족동반 태국어행을 떠난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배송 주문서를 작성하는 데 다시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내가 아는 번호였다. 휴대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가자 아내가 불안함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멀리서 바라봤다.
-아, 네. 선생님.
모교 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 박사논문 지도교수로 나를 B대에 소개해 준 분이다.
(중략)
-그런데 자네 그 사람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잘못이요?
-아니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해서.
-아니요, 그런 거 없는데요.
-여기 김교수가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말이야, 곽교수가 자네를 좀 강하게 반대했던 모양이야. 나한테는 그냥 혼자 알고 있으라 하더라고. (178~179쪽)
곽교수의 교통사고의 죄를 뒤집은 대가는 이선생의 임용탈락으로 이어진다. 8년 동안의 힘든 시간강사생활을 끝낼 수 있던 순간 이선생의 호의는 배신의 고통을 당한다.
「가리는 손」 재이는 엄마만 있고, 아버지는 동남아 사람인 한부모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는 아이이다. 재이에게는 가혹한 차별이 늘 따라다녔다. 가난과 혼혈아라는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의 편견의 고통이다.
청결에는 청결의 관성이, 얼룩에는 얼룩의 관성이 있음을 실감한 건 재이 초등학생 때 일이다. 내가 재이에게 경외감을 느낀 그 크리스마스 행사를 며칠 앞두고 재이는 성가대 대표 선출 선거에서 세 표 차로 졌다. 한창 클 때 이기고 지는 거야 별일 아니지만, 한 투표용지에 좀 목욕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나 보다. 사회를 보던 아이가 경솔하게 그걸 또 읽었고 분위기가 싸해진 가운데 몇몇이 작게 웃었다. 재이는 그때 누가 웃나 너무 궁금했지만 몸이 굳어 돌아보지 못했단다. 실은 선거에서 진 것보다 그 웃음소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반년 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듣는데 가슴이 죄어왔다. 그동안 재이 마음을 전혀 몰랐다는 데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203쪽)
재이의 사회의 편견의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했던 슬픔과 고통, 그걸 몰랐던 죄인이 된 엄마의 고통은 그들의 죄가 무엇이기에 겪어야 하는가? 죄 없는 사람에게 편견의 죄목을 만드는 바로 당신들이 죄인은 아닌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제일 난해한 제목의 소설 속 그녀는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그녀는 분명 남편이 죽지 않았던 그 시절 나른한 주말 오후에 그저 그러했으나 함께했던 그 순간이었기에 이런 제목을 택했으리라. 그녀가 남편의 사고를 듣고 어떤 판단을 했어야 했을까? 제자를 구하지 않는 선생님으로 살아남았어야 했을까? 제자와 같이 죽어 선량한 선생님으로 남고 내 옆을 떠나야 했을까?
아침에 옷을 벗다 배꼽 주위 반점이 다섯 개로 번진 걸 봤다. 그때서야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인터넷을 검색을 했다.(중략) 지금 내 몸 상태와 가장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이 올린 치료 후기였다.(중략) "원인 불명의 급성 염증 질환으로 일종의 '피부 감기'입니다. 정확히 밝혀진 건 없지만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등이나 배에 '원발진'이 생긴 뒤 잠복기를 거쳐 보름에서 한 달 뒤 작은 발진들이 일어납니다." (238 ~ 239쪽)
사람은 누구나 이별을 고통을 느낀다. 선량한 남편의 죽음을 인내하고 마음을 위로 하로 떠난 영국에 있는 사촌 언니의 집 생활 중 찾아온 고통의 발견. 반점은 슬픔의 해소를 하지 못한 그녀의 몸이 보내는 고통이 치유되지 않았음을 표현한다.
8편의 단편 소설에서 각자의 고통이 있다. 어쩌면 겪지 않아서도 되는 고통을 그들은 삶 속에서 의례 하는 선택이 이별이라는 고통이 아무렀지 않듯 찾아오고, 슬픔의 깊이를 타인의 입장에서 다름을 보여 주고 있다.
2. 슬픔을 토하거나 외면하거나
「입동」 슬픔을 토했다. 시어머니에게 함부로 말했다. 그렇게라도 토해냈다.
-아이 씨……
어머니가 바닥을 훔치다 말고 고개 들어 아내를 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벽면에선 여전히 검붉고 끈끈한 액체가 세로로 긴 자국을 남기며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어색해진 분위기 따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이게 뭐야.
-미진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지그시 아내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글픈 비명을 질렀다.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12쪽)
시어머니의 실수는 아니었다. 죽은 아들에게 어린이집에서 매실원액을 보냈다. 오랫동안 한구석에 있었다. 시어머니는 매실병을 열었을 뿐이다. 그렇게 매실이 터져 멈출지는 몰랐다. 시어머니는 내려가셨다. 슬픔을 토함으로 일상이 시작되었다.
「노찬성과 에반」 찬성에게 소중했던 에반과 휴대폰이었다. 에반의 안락사 비용을 아르바이트로 모았지만 병원이 닫혀있었다. 찬성은 휴대폰을 개통하고, 휴대폰에 돈을 쓴다. 에반에게 암의 고통을 참을 수 있지? 하며
찬성은 꽤 오랫동안 그 자루 앞에 서 있었다. 몇 번 '노끈을 풀어볼까?'라는 충동이 일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루 아래로 방금 전보다 더 많은 양의 피가 새어 나왔다. 만지면 아직 따뜻할 것 같은 피였다. 이윽고 찬성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자루에 든 게 뭔지 끝내 확인하지 않고, 그때까지 오른손에 꽉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든 채 자리를 떴다.(80쪽)
에반은 암의 고통을 참지 못 하고 스스로 로드 킬을 당한다. 찬성은 끝내 에반의 사체를 확인하지 않는다. 슬픔의 회피이다. 에반에게서 외로움을 상쇄했으나, 어린 찬성에겐 하고 싶은 게 많은 어린 가난한 아이였다. 찬성은 슬픔을 외면해야만 했다. 그래야 마음의 죄를 벗을 수 있으니.
「건너편」 도화는 이수가 잘해준 것에 대해서 큰 빚을 가지고 있다. 도화는 이수의 여러 차례 공무원 시험 실패 이후, 마음을 뜬다. 도화는 과거와 미래 중 미래를 택한다. 빚을 상쇄시키고 싶다.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처럼. (118쪽)
이수는 다시 공무원시험을 도전하기 위해 보증금 일부를 주인아주머니에게서 받는다. 도화는 헤어질 기회를 잡았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이수가 나에게 잘못을 했다. 헤어져도 나의 잘못이 아니다. 면피를 했다.
「침묵의 미래」 소수언어박물관은 열 명의 이하의 소수민족 중 본인의 동의가 있는 고아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곳 단지를 에워싼 야트막한 구릉 너머로, 방사선 형태의 도로가 끝없이 펼쳐진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도로 위로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선 게 보인다. 그런데 그 중심에 뜻밖에 소수언어박물관이 있다. 평소 담장 역할을 하는 언덕이 박물관 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지만 그 너머로는 가히 장관이라 할 만큼 공장 또 공장뿐이다. (145쪽)
누구를 위한 박물관인가? 사라지는 민족과 언어를 위해서 인가? 박물관을 에워싸고 있는 대도시 사람들은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상품화하였다. 박물관에 있는 소수 민족 각 개인은 스스로 외면하며 삶을 마감한다. 부족과 언어는 그렇게 사라진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풍경의 쓸모」 이선생에게는 재혼해 사는 아버지가 있다. 태국에게 가기 며칠 전 아버지는 돈을 빌려 달라 찾아왔다. 그의 부인이 암이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그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부고였다. 그리고, 한 통의 통화를 받는다. 주임교수님으로부터 임용 실패에 대해서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섯 시간 동안 일단 아무 생간도 안 할 작정이었다. 잠을 청하려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속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올랐다. 마른침 삼키며 침착하게 그것을 내려 보냈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라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83쪽)
이선생은 열심히 산다고 살았다. 그의 말처럼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 그는 속으로 울분을 토하고, 스스로 상황을 외면한다.
「가리는 손」 할아버지를 구타한 동영상이 유출된다. 아들은 인형 뽑기를 하는 모습과 할아버지를 구하지 않고, 인형만 가지고 도망간 영상이었다. 아이는 잘못이 없으나 도덕적인 잘못이 있다.
-누구야?
-그냥 아는 애.
재이가 제 바지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으며 앞에 앉는다.
-학교에서 애들이 뭐라 하진 않아?
-상관없어.
상관없다는 말하는 재이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서린다. (218쪽)
그 동영상으로 인해 아이가 공범이라는 소문이 난다. 아이는 사건현장에 있었기에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 편견의 죄가 추가되었다. 아이는 고통을 회피한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명지는 영국에서 돌아왔다. 우편함에서 죽은 아이의 누나의 편지를 읽게 된다. 같은 고통에 있는 두 사람의 교류로 위로가 되었다.
혼자 남은 그 아이야말로 밥은 먹었을까. 참으려고 했는데 굵은 눈망울이 편지지 위로 두둑 떨어졌다. 허물이 덮였다 벗어졌다 다시 돋은 내 반점 위로,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얼룩 위로 투두둑 퍼져나갔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266쪽)
눈물의 의미는 고통을 배설하는 과정이며,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의 의미이다.
3. 고통의 끝은 어디쯤일까?
8편의 단편 소설 속엔 고통의 끝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고통을 겪은 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아 상실이 크기 때문이다.
-여보?
-……
-영우 엄마?
-......
-미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도배지 든 양손을 벽에서 떼지 못한 채 아내를 내려다봤다.
-여기……
-응?
-여기……영우가 뭐 써놨어……
-...... 뭐라고?
-영우가 자기 이름……써놨어.
아내가 떨리는 손으로 벽 아래를 가리켰다.
-근데 다 …… 못 썼어……
아내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렸다.
-아직 성하고……
-……
-이응 하고 ……
-……
-이응 하고, 아니 이응밖에 못썼어……
아내가 끅끅 이상한 소리를 내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34 ~ 35쪽)
아이의 죽음을 딛고, 매실액으로 버려진 벽지를 쌌다. 아이의 보상금을 쓰기로 했다. 아이의 잃음에 슬픔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벽지를 붙이다 맞닥뜨려진 아이의 흔적에 기쁨과 볼 수 없는 슬픔이 교차한다. 우리의 고통은 그럴 것이다.
8편의 인간이면 한 번쯤 겪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우리가 맞이할 수도 있는 고통은 서로의 위로나 시간의 흐름에 고통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은 늘 마음 한구석에서 희석되기만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있다. 아이 엄마는 그렇게 꾹꾹 숨겨둔 슬픔을 표출하고 눈물은 슬픔을 희석해 줄 것이다.
바깥은 여름인데 왜? 나는 추운 겨울 속에서 살고 있나요?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도 마음은 추운 겨울입니다. 겨울 다음 계절은 봄이기에. 남들이 지내는 사계절이 몇 년이 흐른 뒤 언젠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계절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녹여 주리라. 마음의 봄바람이 불 때까지 방안에 있어도 좋아요. 뜨거운 한여름의 열기로 뛰어드는 것도 좋아요. 어떤 선택이든 우리 마음의 겨울을 녹여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