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진은 어디로」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자신의 책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작가 ‘나’가 소심한 복수(?)를 위해 짧은 여정을 시작하면서 전개된다. ‘나’는 판매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직거래에 나선다. 형편없는 평가가 덧붙여진 책 소개에 심기가 뒤틀린 ‘나’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KTX 표를 끊고 자신에게 모욕을 준 판매자가 누구인지 기어코 확인하려 든다. 이름이 알려진 작가에게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인간 ‘이기호’의 가볍고 지질한 면모가 생생히 드러난다. 독자들은 ‘나’의 행동에 실소를 터뜨리지만 그의 감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외부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의 심리는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감정을 솔직하게 겉으로 드러내기에는 조금 부끄러울 뿐.
소설 속 인물과 작가의 관계
소설 속 ‘나’는 작가의 이름과 같은 ‘이기호’이고 광주에 산다. 직업 역시 작가다. 글에 드러난 정황상 여러 부분이 작가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작가 본인의 이야기, 즉 수필인가? KBS <인간극장> 이기호 편 또는 페이크(fake)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가.
이기호의 또 다른 단편소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속의 ‘나’ 역시 G시의 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교 업무의 고된 일상, 가족과 떨어져 학교 근처의 아파트에 세 들어 홀로 지내는 상황 등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로 보인다. 따라서 돈을 돌려받기 위해 아파트 근처에서 노숙하며 1인 시위를 하는 권순찬 씨에게 ‘나’가 멱살잡이를 하는 사건 역시 작가의 경험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주인공과 작가가 동일인인 듯한 설정은 소설 속 사건에 실제감을 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런 시도는 남의 삶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대중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결국 소설 속 인물과 작가의 모호한 경계가 독자들에게 소설 너머 또 다른 상황을 상상하게끔 하며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
‘나’는 중고나라 사이트에 자신의 책이 거래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판매자는 책들을 가격별로 그룹 1, 2, 3으로 나누고 ‘나’의 책을 제일 헐값인 그룹 3으로 분류한다.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이라는 조롱 섞인 한 줄 평 아래 ‘그룹 1, 그룹 2에서 다섯 권 구매 시 무료 증정’이라는 조건까지 덧붙여 놓았다. 심지어 무료 증정 조건이 붙은 책은 자신의 책뿐이다. ‘나’는 심한 모욕을 느끼며 판매자의 정체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의심의 씨앗은 빠르게 싹을 틔우고 비 온 뒤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란다. ‘나’는 광주에서 일산까지 가는 KTX 표를 끊으면서까지 ‘제임스 셔터 내려’라는 닉네임의 판매자를 만나러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짝 뒤틀려 있음을 깨닫지만 자신이 느낀 모욕의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도대체 ‘나’는 왜 광주를 일산 근처라고 우기면서까지 굳이 그를 만나는 데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과거에 친구의 차를 타고 가다 당한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험회사 직원에게 느꼈던 묘한 수치심을 KTX 좌석에 앉아 떠올린다. 6인용 병실 안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작가는 일용 잡급에 해당한다는 보험회사 직원의 말을 통해 평가된 자신의 가치는 일당 1만 8천 원으로 확정되었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서류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따지고 드는 것은 부끄러운 순간을 연장할 뿐이므로. 4000원짜리 한심한 병맛 소설로 낙인찍힌 자신의 책을 중고나라에서 마주했을 때의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외면하기 혹은 마주하기
판매자가 아는 사람이라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는 ‘제임스 셔터 내려’를 만나러 간다.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기회가 많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귈 때는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막상 이별을 통보하자 목 놓아 울게 되는……. 그렇게 슬퍼하면서 비로소 스스로 사랑을 완성하는……. 그때 당시 나는 바로 그 ‘목 놓아 울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렇게 계속 어떤 열기 같은 것을 느끼고, 멈추지 못했겠지……. 바로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소설이, 괜찮아 보였을 테니까. 돌아서면 인정하고 말아야 할 테니까……. (234쪽)
‘-최미진 님께. 좋은 인연. 2014년 7월 28일 합정에서 이기호.’(235쪽)
‘제임스 셔터 내려’는 ‘최미진’에 대해 물으려는 ‘나’를 알아보고 놀라 도망쳤다가 잠시 후 체념한 듯 돌아온다. ‘제임스 셔터 내려’의 사과에 괜찮은 척, 개의치 않는 척하면서도 왜 내 책만 무료 증정인 건지, 진짜 그렇게 한심했는지 캐묻는다. 결국 최미진이 누구냐는 질문에 ‘제임스 셔터 내려’는 눈물을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제임스 셔터 내려’는 광주역으로 돌아온 ‘나’에게 전화를 걸어 최미진은 자신의 옛 연인이며 방을 빼야 하므로 행방을 모르는 그녀의 책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 미진이도 잘 모르잖아요……. 모르면서 그냥 좋은 인연이라고 쓴 거잖아요……. 그건 그냥 쓴 게 맞잖아요……(중략) 그런데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꼭 그 말을 들으려고…… 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 (243쪽)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245쪽)
행동과 속내의 불일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면모를 마주하는 것은 힘들다. 모욕을 되돌려주는 행동은 모욕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기 어렵기에 슬프고 부끄럽다.
나’는 평온해 보이는 몸통 아래 엄청난 발버둥의 반전이 있는 오리 같기도 하다. 그는 자신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연히 굴기도 한다. ‘작가라고 별거 있나요? 다 똑같은 사람이죠.’라고 말한다. 따지려는 것은 아니라며 더 밝은 목소리를 낸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난 모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애써 드러내려는 제스처를 취할수록 자신이 더 비참하고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부끄러움이 주는 위로
이기호의 소설은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도 다른 사람도 모두 부끄러움을 숨기고 살아간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니 너무 힘들고 부끄럽게만 여길 것 없다. 인간은 다 지질하다. 다만 누가 더 잘 감추고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다라고 말이다. 병 주고 약 주고 식의 작가의 밀당에 넘어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소설이 염가판매되는 현장을 목격한다면 과연 나는 ‘이기호’처럼 판매자를 직접 대면하기 위해 찾아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판매자의 정보를 캐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