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참여했던 사람중에는 구두닦이, 넝마주이, 술집 웨이터, 부랑아, 일용품팔이가 있다. 특히 홍등가에서 성매매하는 황금동 여인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아무런 기록이나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도 황금동 여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황금동은 금남로 옆에 있는 곳이다. 황금동 여인들은 주먹밥을 만드는 일, 헌혈에 참여했다. 시위대가 도피할 때 위험을 감수하고 그들을 숨겨주었다. 황금동 집 구조가 복잡하고 다락방이 도피하기 좋은 곳이다. 소설에는 치마 속에 숨겨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두껍지 않아 읽기가 쉽고 드라마틱한 전개로 5.18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고통받는 광주시민을 위해 일하고 상무대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5.18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5월이 차라리 없었으면 한다. 다시 기억하기 조차 싫기 때문이다. 총을 쏜 공수부대도 죄책감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는 피해자다. 이제 세월이 흘러 43년이 되었다. 5.18에 묻혀진 이러한 사료를 발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렇게 묻혀질 뻔한 황금동 여인들의 기록은 중요한 자료이다. 이 주제가 소설로 만들어졌다.
세상에 힘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의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5.18을 맞아 황금동 여인들의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힘없는 여성 우리의 누나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지금 60대에 이르렀다.
가두방송을 했던 전옥주(본명 전춘심)는 성고문을 받았다. 이렇게 5.18은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참여했다.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대에게 공급한 시장 아주머니들이 있다. 이렇게 남녀노소 광주는 대동단결해 불의한 세력과 싸웠다. 5.18은 총과 싸워서 대항한 민중들의 전쟁이었다. 그들은 보도블럭과 짱돌, 화염병과 횃불로 맞섰다. 일명 ‘황금동 콜박스’ 일대는 화려한 유흥업소가 어깨를 마주하듯 다닥다닥 붙어있던 곳으로서 민주화의 상징인 금남로와 전남도청과 인접한 곳이었다.
민주화의 전초지였던 금남로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황금동 여인들’은 목숨을 걸고 당시 계엄군에게 쫓기던 시위 군중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었고, 시위가 격화되었던 금남로 등지의 부상자들에게 수혈할 피를 구하는 병원의 헌혈 대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고, 계엄군에 맞서 던질 수 있는 화염병을 만들었고, 시민군을 위해 음식이나 자금 등을 제공했고,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였다.
그들이 보여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광주시민들이 그동안 마음속에 장벽같이 높게 쌓아왔던 ‘성매매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편견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5.18’당시 목숨을 담보로 ‘대동 세상’을 꿈꾸며 자발적으로 그늘에서 묵묵히 눈물겨운 헌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바로 그 선행으로 인해 삶이 유린당하는 고문과 학대를 당했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역사의 증인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시대의 흐름에 생을 맡긴 채 묻혀 지내고 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