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표제에서 솔깃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주인공이 왠지 거창한 정치가나 종교 지도자처럼 느껴져 소설 내용이 궁금해지고 이내 섣부른 선입견이었음을 알게 된다.
화자는 지은 지 이십오 년이 넘은 전 세대 동일하게 십삼 평형으로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방대학 부교수인 ‘나’는 알 수 없는 무력증에 빠져서 일 년 넘게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고 그 무력증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이 화가 나는 증상을 7월 초순부터 겪게 되는데 권순찬을 만난 것도 7월 초순의 목요일 자정 무렵이었다.
권순찬의 첫 만남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먼지 뭉치’였다. 부스스한 머리칼과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 계절에 맞지 않는 검은색 양복, 어깨가 지나치게 좁고 굽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방구석에 머리카락과 함께 둥글게 부풀어 오른, 실이라도 뽑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먼지 뭉치’.
그는 붉은색 매직펜으로 큼지막하게 쓴 대자보 두 장을 합판에 붙여 들고 있었다.
103동 502호 김석만 씨는 내가 입금한 돈 칠백만 원을 돌려주시오!
2014년 6월 3일 하나은행 권순찬 계좌로 일금 칠백만 원을 국민은행 김석만 명의 계좌로 이체하였고, 다시 6월 25일 권순찬의 모친 김복순의 농협 계좌로부터 입금 칠백만 원이 국민은행 김석만 계좌로 또 한 번 입금…… (p50)
502호에는 새벽, 신문이 올 시간이면 어김없이 유모차에 의지해 공장단지로 폐지를 주우러 가는, 눈썹 끝에서부터 귓불까지 검버섯이 피어 있고, 유모차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뚱뚱한 유모차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고 김석만은 그의 아들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 명으로 안내문을 작성하고 반장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특별 모금한 칠백만 원을 마련해 전달하자 권순찬은 사람들의 그 모든 선의를 거부했다.
저는 원래 그 할머니한테 돈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김석만 씨를 만나러 온 거예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일을 해결하려고요……(p68)
다섯 달 가까이 그가 앉아 있던 그 천막은 구청 공무원들에 의해 세 번 철거를 당했고 어느 날 오전, ‘G시 노숙인 쉼터’ 글자가 박힌 승합차가 아파트 정문 건너편에 서더니, 건장한 청년 두 명이 내려서 아무 말없이 그의 팔을 양쪽에서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끝이었다. 이를 덜덜덜 떨면서 끌려가더라고요. 아무 저항 없이.(p82)
나는 주변에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 실례를 직접 목격했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강자(상사) 앞에서는 무력하게 저항도 못하면서 자신처럼 약하고 착한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표 출했다. 우리는 살면서 눈앞에 보이는 불편, 불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낸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가?
권순찬, 502호 할머니, 나, 관리소장 등은 모두 호의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어떠한 비난받을 행동도 하지 않았다. 착한 사람의 고집이 악한 사람의 변심보다 더욱 비윤리적으로 변모하는 현장을 권순찬은 시연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자기 진실에의 집착, 이로부터 비롯된 소통 불능의 상황으로 ‘애꿎은 사람들’(착한 사람들과 권순찬)은 ‘애꿎은 사람들’(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게 화를 냈던 것은 이 사회에 고통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악인(강자)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해서 서로에게만 화를 냈던 것이다.
화자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다시 쓴 이유는 모두에게 고통을 준 김석만이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에야 쿠페형 외제 차를 타고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악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부터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겪는 무력증과 성냄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