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코스모스

by 황인갑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코스모스 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 한다는 것이 미지未知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하는 확신 한다.

코스모스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보물 창고로서 그 우아한 실제, 절묘한 상관관계 그리고 기묘한 작동원리를 그 안에 모두 품고 있다. 코스모스는 너무 거대하여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길이 단위인 미터나 마일로는 도무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지구는 우주에서 결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장소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곳은 더더욱 아니다.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에서 본다면 바다 물결 위의 흰 거품처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희미하고 가냘픈 덩굴손 모양의 빛줄기가 암흑을 배경으로 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것들이 은하다. 지구에서 80억 광년 떨어진 곳, 우리가 우주의 중간쯤으로 알고 있는 머나먼 저곳이 성운들의 세상이란 말이다. 은하는 기체와 티끌과 별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 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모든 은하를 다 합치면 별의 수는 10 ¹¹ ×10 ¹¹=10 ²² 개나 된다.

행성은 혜성보다 좀 더 큰 세계이다. 이들은 태양의 중력에 붙잡혀서 거의 원형의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모든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이다. 태양의 중심에는 수소와 헬륨 기체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용광로가 태양계를 두루 비추는 빛의 원천인 것이다.

에라토스테네스가 보아하니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지구의 표면이 곡면이라는 것이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사람을 시켜 시에네가지 걸어가게 한 다음 그 거리를 보폭으로 재 봤기 때문에 시에네가 알렉산드라에서 대략 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알고 있었다. 800킬로미터의 50배이면 4만 킬로미터, 이것이 바로 지구의 둘레인 것이다.

지금은 수많은 탐험대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이미 다 거쳐 간 후다. 신대륙도 잃어버린 땅도 지구에서 가장 황량하고 외딴 지역이라도 찾아가서 탐사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는 인간이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우주로 과감히 나아가 지구 이외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위대한 시대이다.

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 어이며 카오스 Chaos에 대응되는 개녀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敬畏心이 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eos는 오늘날의 사이비 과학이라 할 점성술을 수집하여 정리했다. 그가 주창한 지구 중심 우주관인 천동설이 1,500년 동안 맹위를 떨쳤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서가에는 사모스 Samos의 아리스타르코스 Aristarchos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때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모두 다 옳았지만 이 사실을 재발견하기까지 인류는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현대의 과학은 고대 세계가 알고 있던 과학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자료에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이가 빠진 듯 여기저기 뚫려 있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 약 150억-200억 년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지능이 더 높은 생물을 찾을 때까지,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지구 밖의 세계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까? 외계에 생명이 살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 것이며, 또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다른 별들 주위를 돌고 있을 수많은 외계행성들에도 생명이 살고 있을까? 만일 살고 있다면 외계 생명 extraterrestrial life도 지구에서처럼 탄소를 기본으로 하는 유기물일까? 외계 생명은 지구 생명과 얼마나 비슷하게 생겼을까? 아니면 그곳 환경에 적응하느라,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를까?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

다시 지구 생명에 눈을 돌려보자. 지구가 생명의 발생과 서식에 있어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우연이며 지구인들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감탄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듣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지구의 자연환경이 인류에게 훌륭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생물들이 지상에서 태어나서 바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도 초기에는 지구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다행히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유기물의 후손이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진화하고 적응해서 살아남은 물질 등은 또한 자기네 환경을 극찬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같은 유기화학적 원리가 지상의 생물들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진화의 코드를 통해서 변신해 왔다. 따라서 지구의 생물학은 철저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구 생물에게는 단 한 가지의 생물학만으로 충분하다. 생물학을 음악에 비유해 볼 때, 지구 생물학은 ,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천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의 생명은 우리에게 어떤 형식의 음악을 들려줄 준비를 해 놓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지구 생명의 이 외로운 음악 하나가 우리가 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일까?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대위법 양식의 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지구 생명이 들려주는 음악 중에서 짤막한 한 토막을 소개해 보겠다. 헤이케 사무라이 무사의 얼굴이 새겨진 게 등딱지를 가진 게가 살아남은 과정이다. 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그 길은 택해서 그런 등딱지 모양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부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선택에 간섭한 결과인 것이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어떤 종의 식물과 동물은 잘 키우고, 또 어떤 것들은 죽여야 할지를 신중하게 선별해 왔다. , 엄청나게 커진 젖소의 젖, 우리가 즐기는 알이 굵은 옥수수, 토끼, 커피, 사탕무, 밍크, 양들을 예로 들어 자연도태, 혹은 자연선택을 알 수 있다. 생물 세계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은 전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진화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다윈과 월리스는 자연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을 했다. 자연선택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 생명의 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 작품으로 조탁해 왔다. 다윈과 월리스에게 퍼부어졌던 그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도 적어도 일정 부분은 억겁의 영원은 고사하고 수천 년조차 상상하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에게 7000만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만 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가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캄브리아기 대폭발부터 지구생명에 대해 알아보자. 30억 년이나 긴긴 세월을 녹조류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시작되자마자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이 바다에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숨 막힐 정도로 급하게 속속 나타났다. 최초의 어류에서 최초의 척추동물로, 바다에서만 살던 식물이 육지로 옮기는 식물로 나타났고, 최초의 곤충이 태어나서 그 후손들이 육서 동물의 선구자가 됐다. 날개 가진 곤충이 양서류와 함께 나타나서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 최초의 나무가 등장했고 최초의 파충류가 출현해 공룡으로 진화해서 포유류가 지상에 출현했고 최초의 새와 최초의 꽃이 생겨났다. 공룡이 멸종하고 돌고래와 고래의 조상인 초기 고래류가 나타났고 원숭이, 유인원, 인간의 공동 조상인 영장류가 지상에 나타났다. 1000만 년 전에 인간과 아주 비슷한 생물이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그 후 겨우 수백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나타났다. 인류의 조상이 숲에서 성장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숲에 친근감을 느낀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저 나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나뭇잎들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 햇빛을 받아야 한다. 식물에 기생해서 사는 우리 같은 동물은 식물이 합성해 놓은 탄수화물을 훔쳐서 먹는다.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 뱉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환성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대기공의 인공호흡인 것이다.

인간은 겉보기에 나무와 뚜렷하게 다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은 나무와는 다른 양식으로 세상을 인지한다. 그러나 생명 현상의 핵심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분자 수준에서 나무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은 화학반응을 통하여 생명활동을 영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사람, 아귀, 심지어 변형균과 짚신벌레 같은 지구의 모든 생물이 과거로 올라가면 단 하나의 조상으로 수렴한다는 결론이다.

외계 생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나는 잘 모른다. 공상과학 소설을 쓰는 작가나 예술가 중에 외계 생물의 모습을 추측하여 제시하는 이들이 많다. 거대 행성의 생물이 극복해야 할 그들 나름의 고충이 따로 있다. 대기는 격렬하게 난류 운동을 하고 대기권 아래쪽 깊숙한 곳은 매우 뜨겁기 때문에, 거대 행성의 생물은 아래쪽으로 끌려 내려가 바짝 튀겨지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거대 행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중의 한 가지는 튀겨지기 전에 재빨리 번식하여 후손의 일부가 상승기류를 타고 대기권의 서늘한 상층부로 이동해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생물들의 덩치가 아주 작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물들을 우리는 ‘추 sinker’라고 부른다. 그러나 ‘찌 floater’ 같은 생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종의 커다란 수소 풍선 같은 생물 말이다. 찌든 유기물질을 섭취하거나 지구의 식물들처럼 햇빛과 공기로부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유기 물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냥꾼’은 빠른 기동성을 무기로 ‘찌’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이다. 추들 중에서 비교적 텅 빈 구조를 하는 것들이 먼저 찌로 진화하고, 그중에서 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최초의 사냥꾼들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호호)‘사냥꾼’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찌’를 다 먹어 버린다면 ‘사냥꾼’도 멸종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역사학에 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 他者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의 생명은 우리가 추구할 궁극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껏 지구라는 작은 세상이 들려주는 생명의 음악만 들어왔다. 이것은 우주를 가득 채운 생명들이 연주하는 푸가의 한 성부만을 들어온 셈이다. 자 이제 저 웅장한 우주 생명의 푸가의 남은 성부들에 귀를 기울여 보자.

4장 천국과 지옥

과거 45억 년의 역사를 통해서 수백만 개의 혜성들이 지구와 충돌해 왔듯이, 작은 혜성 하나가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이 오늘 발생한다면, 현대 지구 문명은 그 사건에 즉각적으로 잘못 반응하여 핵전쟁을 일으키고는 자기 파멸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이 시나리오의 개연성은 혜성충돌로 일어나는 현상이 핵폭발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혜성 자체의 구조, 지구와 혜성의 충돌 가능성 그리고 그 충돌이 가져올 자연재해의 내역과 규모 등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게 연구해 둘 필요가 있다. 즉 지구와 근접 천체의 충돌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현대 지구 문명이 엉뚱한 이유 때문에 핵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908년 6월 30일 퉁구스카의 대폭발은 엥케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혜성 한 조각이 지구와 충돌했기 때문에 생긴 사건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혜성은 인류에게 공포감과 함께 경외심을 불러일으켜 왔으며, 마음을 홀리는 망령된 미신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혜성을 재앙의 전조이자, 신성한 존재의 진노를 예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뉴턴은 혜성도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타원 궤도를 그리며 태양 주위를 돈다고 증명해 보였다. ’ 혜성은 매우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일종의 행성이다. “1707년에 이르러서 그의 친구 에드먼드 핼리 Edmund Halley가 1531년, 1607년, 1682년에 출현했던 혜성들이 모두 같은 혜성으로서 76년마다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밝혀냈다.

행성은 태양 주위의 타원 궤도를 따라 운동하지만, 그 궤도의 모양이 아주 찌그러진 타원은 아니다. 그것에 비해 혜성은 – 특히 공전 주기가 긴 혜성일수록 - 정말 보란 듯이 길쭉한 타원형의 궤도를 그리며 돈다. 행성들이 아주 찌그러진 모양의 타원 궤도를 따라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행성들은 충돌이라는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초기의 파국적 충돌을 모두 이겨내고 이제 우리 태양계는 중년의 안정기에 들어선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 가톨릭의 철학자 조르다노 부르노 Giordano bruno는 1600년에 말뚝에 묶여 화형에 처해진 비운의 인물이다. 브루노는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세상들이 존재하며 그중에는 생명이 사는 곳도 많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과 또 다른 몇 가지의 죄목이 추가되어 그는 화형을 당했다.

소행성들끼리는 서로 충돌이 잦은데, 그러다 가끔씩 어느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우연히 그 조각이 지구가 가는 길에 들어오게 되면 지구로 떨어지면서 운석이 되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이런 자세의 과학이라면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우리는 어딘가에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그러나 생명의 존재여부는 보다 주의 깊은 증거의 축적과 평가를 통해서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결국 금성에는 생물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금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지만 불투명한 대기층 때문에 광학적 방법으로 표면까지 접근하기가 불가능했다. 그 까닭에 금성은 늘 신비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베네라 우주선이 최초로 두꺼운 구름층을 통과해서 표면에 착륙해 보니 금성은 타는 듯이 뜨거운 곳이었다. 늪지도, 유전도, 탄산수의 바다도 없었다. 불충분한 자료에 근거한 추론은 우리를 쉽게 오류의 늪에 빠지게 한다.

세상을 통째로 태워 버릴 듯 맹렬한 더위, 모든 것을 뭉개 버릴 듯한 압력, 각종 맹독성 기체, 게다가 사위는 등골 오싹한 붉은 기운을 띠고 있어서 금성은 사랑의 여신이 웃음 짓는 낙원이 아니라 지옥의 상황이 그대로 구현된 저주의 현장이라고 하겠다. 상대적으로 천국인 우리의 행성을 금성이라는 지옥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기후를 교란시켜 왔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숲을 태우고 나무를 베고 가축을 초원에 방목함으로써 초원과 밀림을 지속적으로 파괴해 왔다. 그 결과 지구의 표면온도가 낮아지게 되었다. 이것이 온실효과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폭주이다. 급격하게 치솟는 반사도 때문에 지구는 종국에 ‘백색 재앙’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름답고 푸른 행성 지구는 인류가 아는 유일한 삶의 보금자리이다. 금성은 너무 덥고 화성은 너무 춥지만 지구의 기후는 적당하다. 인류는 자신의 무지를 망각한 채 대기를 오염시키고 숲을 제거함으로써 지표면의 반사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무지와 자기만족의 만행을 계속 묵인할 것인가? 지구의 전체적 번영보다 단기적이고 국지적인 이들을 더 중요시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녀와 손자손녀를 위한 걱정과 함께, 미묘하고 복잡하게 작용하는 생명 유지의 전 지구적 메커니즘을 올바로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좀 더 긴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인가?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5장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화성은 참으로 경이로운 세계이며, 화성의 미래상은 과거에 우리가 화성에 대해 품었던 억측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로웰이 그린 화성의 모습은 태고의 역사를 간직한 메마르고 쇠락한 땅, 즉 사막의 세계였다. 그렇지만 그 사막은 여전히 지구에서 보는 사막과 같은 것이었다. 로웰의 화성은 로웰 천문대가 있는 미국 남서부 지역의 특성과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그는 화성의 기온이 약간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국 남부”처럼 지낼 만한 정도일 것으로 상상했다. 화성의 대기가 비록 희박하지만 호흡하기에 충분하고, 물이 전반적으로 귀하기는 하겠지만 운하망이 잘 짜여 있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을 화성 전역에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말로만 전해오는 운하를 포함해서 로웰의 모든 결론이 엉터리로 판명 난다 할지라도 화성에 관한 그의 묘사에는 긍정적 측면이 많이 있다. 몇 세대에 걸쳐 나는 물론이고 수많은 여덟 살배기 어린이들에게 행성 탐험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고, 우리도 언젠가 화성으로 갈 수 있다는 상상과 확신을 심어 주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가 현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화성의 미생물학적 존재를 받아들여야 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라는 것이다. 현재 화성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들은 지구 생명의 기원과 지구 생명의 초기 역사를 규명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이킹과 우주선의 개발로 말미암아 화성의 토양과 운석을 가져와서 분석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균상태로 격리가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구에 역 오염 逆 汚染 back-contamination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지구에서 화성으로 가서 살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화성을 지구의 환경과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수백 년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 이것을 지구화地球 化, terraforming라고 한다.

로웰의 운하망은 정녕 화성인이 건설한 것이 될 터이다. 화성인이 없으니 로웰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 당신은 나무라겠지만, 이 틀린 생각마저 나는 하나의 정확한 예언이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된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바로 우리가 로웰의 화성인이다.

6장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지루한 지구에서부터 한참 높이 올라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대자연이 ~ 그렇게 고공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수만 있다면 집을 떠나 먼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집안 구석에서 이루어진 일들의 잘잘못을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더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를 내려서 결국은 모든 것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1690년 하위헌스

미국국립항공우주국소속제트추진연구소에서 1979.7.9. 보이저 2호 로봇과 목성권의 회우가 이뤄짐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뒤로하며 보이저는 태양계를 떠나게 된다. 그 후 별들 사이의 광막한 바다를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할 운명이다.-영화 콘택트를 연상하게 됨. 인간의 가장 뚜렷한 속성이 끊임없는 탐험과 발견 아닐까?

-보이저 여행담 중 이오의 이야기-

목성 가장 가까이에 공전하는 위성임. 무척 붉다. 화성보다 더 붉다. 표면이 변하고 있다. 소행성대 가까이 있으므로 소행성대에 떠도는 돌멩이들의 세례를 끊임없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덩이는 없다. 파인 구덩이를 누가 메웠을까? 대기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보이저 항해 팀인 린다 모라비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버섯구름을 확인한 결과 화산이 아닐까 의심을 한다. 활화산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오의 표면에서 가스와 기타 분출물을 토해내는 활화산을 아홉 개나 발견한다. 화산 용암이 구덩이를 메운 것이다. 화산 분출물이 다양한 색깔로 물든 지표를 배경으로 거대한 호를 그리며 솟아오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장관임에 틀림없다.

목성은 별이 되려다 실패한 비운의 천체다. 목성이 별이라면 태양의 빛을 받아 태양과 짝을 이워 쌍성계를 구성함. 지구의 하늘에는 해다 둘이 떠있을 것임. 밤은 보기 드문 희귀하 현상이 됨. 우리 은하에는 이런 쌍성계가 흔하다고 믿음(칼 세이건의 상상력일까?) 밤이 없는 세상

전파천문학 발달 계기는 목성이 강력한 전파 방출원이라는 사실이 우연히 알려지면서부터이다. 미국 젊은 과학자는 하늘에 뭐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알아보다가 유난히 밝은 천체 하나를 발견 그것이 바로 목성. 목성의 전파방출을 이렇게 우연히 발견. 사실 과학사의 발견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코스모스를 탐독하다가 단 한 줄의 글귀를 발견하고 거기에 몰입하고 의식을 쏟다 보면 위대한 발견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목성과 보이저 1호의 만남이 있기까지 목성은 그저 하늘에서 반짝이는 하나의 목성일 뿐(어린 왕자의 내용과 비슷함). 보이저와 목성이 만나던 날 이제부터 목성은 더 이상 그 옛날의 목성일 수가 없구나. 이제부터 목성은 연구의 대상이며 탐사의 장으로 남을 것이다. 기기묘묘한 세계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코스모스를 알기 전과 후는 다를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여행이야기-보이저호는 목성 토성을 넘어 태양권계를 넘어 다른 항성계들을 넘어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의 공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영원히 방랑할 운명의 우주선이, ‘별의 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다 돌 때쯤이면 지구는 이미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8장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공간과 시간은 서로 얽혀 있다. 시간상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공간적으로 멀리 볼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천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시간상으로 그 천체의 과거의 모습을 보고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일상생활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속도를 더할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 익숙한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은 상대 운동과는 무관한 개념이었다. 상대 운동의 영향 때문에 길이의 단축과 시간의 지연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광속에 가까운 속력으로 여행을 하면 당신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지만, 당신의 친구나 친척들은 여전히 늙어 간다. 당신이 상대론적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몇 십 년씩 늙어 있겠지만, 당신은 전혀 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는 것은 일종의 불로장수 양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주여행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주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이다. 우리는 미래 속으로 빨리 여행으로써 공간 속을 빨리 움직여 갈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어떠할까? 과거로 돌아가서 그 과거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역사책을 다시 쓰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상대론적 우주선을 이용하면 미래 속으로 빨리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설사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케 하는 어떤 장치를 마련한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주장에 따를 것 같으면, 과거의 그 무엇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물리학자들은 역사를 달리하는 두 갈래의 우주들이 서로 나란히 실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두 우주는 양쪽 모두 독립적으로 실재할 수 있는 우주이다. 하나는 당신이 아는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우주이다. 어쩌면 시간은 그 자체로서 수많은 잠재적 차원을 갖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단 하나의 차원과 연관된 세상에서만 살아갈 운명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별, 행성과 같은 세계 또한 우리 인간들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 죽어서 사라진다. 인간 수명이 수십 년 정도인 데 비하여, 태양의 수명은 인간의 수억 배나 된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서도 그들의 미래를 결절할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지구인은 2,500년 전 신비주의와 대결해야 했던 이오니아 학자들이 경험한 바와 비슷한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우리가 우리의 세상을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그 영향이 앞으로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전파되어 결국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제9장 별들의 삶과 죽음

애플파이의 모든 재료는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분자는 다시 원자들로 구성된다. 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자들은 모두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별이 우주의 부엌인 셈이다. 1910년을 전후해서 45년 동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행된 연구의 결과로, 원자의 정체가 인류사상 처음으로 밝혀졌다. 원자의 외곽부는 전자의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자는 전하를 띠는데, 우리는 전자의 전하를 음전하로 부른다. 원자의 깊숙한 내부, 전자구름 속 깊숙한 곳에는 핵이 숨어 있다. 행은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들과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들로 구성된다.

우리 인간도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

아서 에딩턴교수는 ‘내 팔꿈치를 구성하는 원자핵들이 어째서 책상의 원자핵들 사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 지구의 저 속으로 그냥 떨어져 들어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에딩턴의 질문은 전자의 구름(전자의 확률적 분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원자핵 주변에 구름처럼 퍼져 보임)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내 팔꿈치에 있는 원자의 외곽부는 음전하를 띠고 있다. 책상을 구성하는 원자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음전하들은 서로를 밀친다. 내 팔꿈치가 책상을 스스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없는 까닭은 음전하들 사이에 생기는 강력한 척력 때문이다. 전자들의 척력 덕분에 우리는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꾸려 가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이 원자의 미시적 구조에 의존하는 것이다. 전하만 사라져 버리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먼지 부스러기가 된다.

애플파이 자르기를 더 작은 세계로 계속해 가다 보면 무한소의 문제와 씨름하게 되고 큰 세계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무한대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무한대란 ‘그 무엇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애플파이를 오븐에 너무 오래 두면 파이가 아니라 숯이 된다. 탄소원자의 핵에서 한 덩어리를 떼어 내면, 더 이상 탄소 원자가 아니라 헬륨 원자가 된다. 이렇게 원자핵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즉 탄소 원자를 한번 더 쪼갠다면 작은 탄소 원자가 아니라 탄소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원자가 만들어진다. 원자를 자르면 원소의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를 더 작게 쪼개면 양성자 내부에 더 근본적인 입자가 숨어 있다. 물리학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소립자들을 구성하는 더 근본적인 알갱이를 쿼크라고 부른다. 쿼크야말로 궁극의 기본 입자인지 아니면 쿼크도 더 근본적인 입자들로 구성돼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기본입자를 찾는 문제가 현대 과학의 근본 문제인 것이다.

원소의 돌연변이는 연금술이라는 이름으로 중세부터 추구해 오던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연금술사들은 물질이 물, 공기, 흙, 불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고대 이오니아 인들은 흙과 불의 상대 비율을 조정함으로써 값싼 구리를 비싼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귀족들이 부와 영생을 미끼로 연금술사들의 사기 행각에 걸려 막대한 돈을 바치도록 했는데 연금술을 통해 인, 안티몬, 수은 같은 원소들을 새로 발견하였고 사실상 현대 화학은 연금술사의 실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연금술의 시대 이후 새로운 원소들이 속속 발견됐다.

모든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세 가지 소립자들로 구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일이다.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양성자와 전자는 똑같은 크기의 양전하와 음전하를 갖는다. 부호가 다른 전하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이 원자를 원자로 남아 있게 하는 요인이다. 닮은 사람이 서로에게 혐오감을 느끼듯이 부호가 같은 전하들 사이에는 척력이 작용한다.

태양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태양의 수소와 헬륨 기체도 뜨겁게 가열돼 있기 때문에 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질량이 비슷한 두 별은 같은 진화의 과정을 같은 속도로 밟아 간다. 그런데 질량이 다른 두 별이 동시에 태어나 쌍성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쌍성계에서 신성을 볼 수 있고 수소의 핵융합 반응이 신성의 급작스러운 광도 증가의 원천이 된다. 초신성은 혼자인 별들이 겪는 더욱 격렬한 변화이며 규소의 핵융합 반응이 에너지를 충당한다. 성간운에 들어 있던 수소와 헬륨이 뭉쳐서 별이 만들어진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원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변환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이다. 식물을 매체로 하여 태양광선의 에너지를 긁어모으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농업이다. 인류는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유전의 관점에서는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유전 형질의 변화가 진화를 추동한다.

1054년 7월 4일,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황소자리에서 별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별에 손님 별, 즉 “객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기록으로 남겼다. 5,000광년 떨어져 있는 이 놀라운 별을 우리는 오늘날 게성운의 초신성이라고 부른다. 게와 천연덕스럽게 닮은 성운이었다. 그래서 1054년 초신성 폭발이 남겨 놓은 이 흔적을 우리는 게성운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부른다. 은하 하나에서 평균 100년에 한 번 꼴로 초신성이 터진다. 은하의 나이를 대략 100억 년이라고 할 때, 그동안 약 1억 개의 별들이 폭발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의 은하수 은하에서는 1054년 폭발 이후 1572년에 튀코 브라헤가 기록으로 남긴 초신성 폭발이 있었고 1604년에 요하네스 케플러가 적어둔 초신성(별의 붕괴는 찰나의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보통 1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짧지만 강력한 폭발은 은하전체를 뒤흔들며 어마어마한 잔해를 우주 전역으로 뿌린다. 이것을 우리는 초신성 폭발이라 부른다.) 폭발도 있었다.

중력이 아주 강력하면 빛조차 그 중력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나 강한 중력장을 동반하는 천체를 우리는 블랙홀(black hole)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천문학자 존미셸아 1783년에 최초로 블랙홀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워낙 기상천외한 것이라, 최근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관측적 증거들이 최근에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천문학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비유에 의하면 ‘블랙홀은 공간에 패인 바닥 없는 보조개’라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코스모스의 자녀들이다. 우리 조상들이 태양과 별들을 우러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다. 천문학 연구는 바로 이러한 경외감에서 시작된다. 은하는 미답의 대륙이다. 그 대륙에서는 규모는 별의 차원이지만 정체의 오묘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과 실체들이 우리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상상은 조건을 거부한다지만, 우리의 상상은 항시 숨은 조건의 노예일 뿐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이 그 숨겨진 조건들마저 모두 떨쳐 버릴 수 있다 하더라도, 은하에는 상상의 품 안에 담기 어려운 그 무엇들이 우리의 지적 탐사를 기다리고 있다.

인류는 은하 구성물의 정체를 밝히려는 대장정에서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여태껏 이루어진 지적 탐사에서 알아낸 사실은, 은하라는 미지의 대륙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예상 밖의 구성원들이 아직 그득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신성, 초신성, 중성자별, 블랙홀등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 우리의 내면과 겉모습 그리고 인간 본성의 형성기제 모두가 생명과 코스모스의 깊은 연계에 좌우된다는 점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제10장 영원의 벼랑 끝

지금부터 100억 또는 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고 불리는 대폭발의 순간이 있었고 우주는 대폭발에서 비롯됐다. 왜 그런 폭발이 있었는지는 신비 중의 신비다. 대폭발의 순간 이후 오늘까지 우주는 한시도 쉬지 않고 팽창을 계속해 왔다. 초기의 우주는 강력한 복사와 고온 고밀도의 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

대폭발이 있은 지 약 10억 년이 지나자 우주 물질 분포에 비균질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덩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덩어리들은 여타 지역보다 밀도가 약간 높았으므로 주위에 있던 밀도가 희박한 물질을 중력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중력 수축이 진행됨에 따라 원시 은하들의 회전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축에 수직 한 방향으로 원심력을 느낀다.

질량은 은하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밀도가 충분히 놓은 성간운들은 중력 수축을 한다. 질량이 큰 별은 표면에서 막대한 양의 빛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것을 공급하려면 중심부의 수소를 빨리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질량이 큰 별은 작은 별보다 핵연료를 훨씬 더 빠르게 소진하고 자신의 일생을 초신성 폭발로 마감한다.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마다 충격파가 발생하는데, 이 충격파가 주위에 있던 가스층을 통과하면서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그 가스 물질을 가속시킨다. 은하 또는 은하단 규모의 가스 덩어리뿐 아니라 이것보다 질량이 훨씬 작은 가스 구름에서도 충격파로 인해 중력 수축이 촉발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크기의 구조물들이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초신성 폭발이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 진화의 대서사시이다.

오늘날 우주에는 은하가 모인, 수많은 은하단들이 있다. 은하단 중에는 여남은 개 남짓한 은하로 구성된 작은 것들도 있다. 우리 은하 군에서 은하라고 불릴 수 있는 준수한 은하는 오로지 우리의 은하수 은하와 안드로메다 대 은하 단 둘뿐이다. 나머지 열두어 개는 대부분 타원 은하이다.

가장 큰 척도에서 본 인간의 서식지는 은하들로 구성된 우주이다. 그리고 우주에는 어쩌면 수천억 개에 이르는 다양한 구조물들이 존재한다. 매우 규칙적인 모양의 것이 있는가 하면, 또 규칙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한 은하와 다른 은하가 정면으로 부딪히면 구성 별들의 상당수가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으로 빠져나오면서 은하 하나가 완전히 소실되기도 한다. 작은 은하가 자기보다 훨씬 큰 은하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지름이 수천 광년에 이르는 고리 은하가 만들어진다.

은하는 약 1000억 개의 별들로 만들어진 유동성의 구조물이다. 어느 한순간 사람은 대략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가 늘 같은 세포는 아니다. 100조 개의 일부는 죽어 없어지고 동시에 새 세포가 다시 만들어짐으로써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육체이다. 은하도 마찬가지이다. 은하의 자살률은 의외로 높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은하들 내부에서는 거대한 폭발이 진행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수십억 광년 저 너머에는 은하 중심부의 폭발이나 소동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격렬한 변동을 겪고 있는 천체들이 있다. 이 천체들을 우리는 준성 또는 퀘이사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대폭발 이후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동을 겪고 있는 젊은 은하일지도 모른다. 퀘이사는 준성전파원이라는 뜻의 QSO로 흔히 표기한다. 준성체는 우주 팽창에 적극 참여하는 천체이다. 준성체가 흰 구멍, 즉 ‘화이트 홀’이라고 한다. 다른 우주의 블랙홀들로 쏟아져 들어간 물질이 반대쪽으로 다시 출현하도록 하는 ‘깔때기’가 화이트홀이다. 이 이론은 화이트홀이 우리 우주 도처에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퀘이사를 생각하다 보면 그 신비의 늪은 깊어지기만 한다. 퀘이사의 에너지원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즉 전대미문의 거대한 파괴가 퀘이사 내부에서 진행 중이라는 사실 말이다. 파괴되는 세상 중에는 생물과 그 파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외계 은하들을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로 벌어지는 격렬한 혼돈의 폭력 역시 우주의 한 속성이다. 우주 앞에서 우리의 생명, 인생, 문명, 역사는 그저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은하수 은하는 다세포 생물을 닮았다.

우주의 대폭발과 은하의 후퇴 운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도플러 효과라고 알려진 자연의 간단한 원리 덕분이다. 도플러 효과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상이다. 택시 기사가 우리 곁을 지나며 경적을 울린다고 하자. 택시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경적이 일정한 높이의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택시가 지나는 길가에 서 있는 사람은 음높이가 변함을 느끼게 된다. 택시가 다가올 때에는 경적이 고음으로 들리다가 택시가 자기 앞을 지나서 멀어지기 시작하면 점점 저음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우리 곁을 지나는 차의 경적이 점점 저음으로 변하는 것같이 들리는 것이다. 빛 또한 파동 현상이다. 소리와 다르게 빛은 진공에서도 전파된다. 그렇지만 도플러 효과는 빛에서도 나타난다. 이 도플러 효과가 현대 관측 우주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도플러 효과라는 물리 현상이 현대 우주론의 출발점이 된 것을 살펴보자. 20세기 초 당시로서는 최대 구경의 반사 망원경이 윌슨 산 정상에서 건설되었다. 허블과 휴메이슨은 로웰 천문대의 슬리퍼를 따라서 먼 은하들의 분광사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먼 은하들의 스펙트럼이 모두 적색 이동을 보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적색 이동의 정도가 은하까지 거리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적색 이동을 가장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방편은 도플러 효과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하들이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력으로 후퇴한다는 추론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휴메이슨과 허블의 발견은 우주의 기원이 대폭발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적색 이동을 도플러 효과로 해석하여 은하들의 후퇴현상을 현실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우주의 팽창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적색이동이 우주 팽창의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 적색이동과는 별도로 우주배경복사도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는 중요한 관측 사실이다.

우주 팽창과 대폭발 이론이 전반적으로 옳다고 한다면, 우리는 좀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어느 문화권이든지 창조 이전의 세상과 세계 창조에 관한 신화를 갖고 있다. 이 신화들은 인간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뻔뻔함’을 잘 드러낸다. 여기에 예시된 고대 신화들의 우주관과 현대의 대폭발 우주론사이에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제안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위하여 실험하고 관찰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창조 신화들에 응분의 존경심을 표해야 한다.

어느 문화권이든 사람들은 자연에 내재하는 주기성을 즐기며 그 주기성을 최대로 활용한다. 인류 문화의 위대한 종교들 중에서 힌두교만이 코스모스가 무한 반복된다는 것을 믿는다. 현대 우주론이 밝힌 시간척도와 비슷한 크기의 척도로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종교가 바로 힌두교이다. 우리 우주가 영원무궁 팽창하는 우주인지, 아니면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우주인지 누구나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우주 물질의 재고를 조사하는 것과 코스모스의 끝, 영원의 벼랑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전파 망원경은 아주 멀리 있는 천체의 미약한 신호도 잡아낸다. 어떤 전파망원경은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다른 전파 망원경과 연결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우주 구성원들의 인구조사를 철저히 하여 은하, 퀘이사, 블랙홀, 은하 간 수소 가스, 중력파원, 그 외에도 우주의 소수 희귀 거류민들의 질량을 모두 알아낸 후에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운명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거대 구조를 논할 때 천문학자들은 공간이 굽었다느니, 평탄하다느니 하는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은 이것만 아니다. ‘우주는 유한하지만 열려 있다.’라는 식의 설명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던 에드윈 애벗이라는 학자는 모든 것이 납작한 이상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납작이 나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납작이 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을 하나의 짧은 선분으로만 인식하고 도형에서 자기 쪽에 가까운 변만 보인다는 말이다.

납작이 나라와 같은 우주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납작이나라의 주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차원적 우주는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다. 즉 납작이의 2차원 공간은 신비롭게도 3차원으로 구부러져 있는 것이다. 제3차원을 상상하지 못해도 3차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납작이의 고민이 바로 우리의 고민이 된다.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 우주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그 경계 바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차원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중심이 있다면 그것은 그 우주의 주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3차원에 있다. 다시 말해서 구의 중심에 있다. 납작이 나라의 영토는 구의 표면일 뿐이다.

그러면 납작이나라의 납작이들이 3차원 공간에 익숙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4차원적 실체인 ‘초구체’는 중심도, 경계도 없다. 그래서 그 경계의 바깥이란 것은 애당초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달아나는 것같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은하들이 공간에 붙박여 있는데, 공간이라는 이름의 그 천은 모든 방향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우리는 우주도처에서 대폭발이 일어난다고 답할 수 있다.

‘우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전자 같은 소립자도 그 나름의 닫힌 우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하, 별, 행성, 사람으로 구성된 이 우주도, 바로 한 단계 위의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소립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러한 계층 구조는 무한이 계속된다.

힌두교의 우주론은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앞에서 이야기한 우주들의 계층 구조라는 아이디어야말로 힌두교의 우주관을 뛰어넘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우주 외의 또 다른 우주들이 있다면 그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은 우리의 것과는 별도의 체계를 이룰까? 그 우주도 은하와 별과 사람과 사람들이 같이 하는 세상을 갖고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우주의 그것들과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그 우주의 사람은 우리와 다른 구조와 형태의 생물일까, 아니면 비슷한 생물일까? 그들의 세계에 진입하려면 어떻든 4차원으로‘길’을 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쉽게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이 우리를 그 길로 데려가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계 근처에 작은 블랙홀들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 이제 영원의 벼랑 끝에 서서 정들었던 이 우주와 헤어져, 저 우주로 뛰어들 채비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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