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압? 단열? 채광? 역세권? 아니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내 20대의 주거환경은 고시원-하숙집-고시원-반지하-옥탑, 이 순서로 정리할 수 있다.
처음 대학에 다니기 위해 올라왔을 때, 보증금이 없으니 선택권은 고시원이나 하숙집.
고시원에서 2년 반 정도 살다가 하숙집으로 옮겨봤는데 얼마 못가 휴학을 하게 되어서 또 알바 자리가 많은 동네의 고시원에서 살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언니가 둘이 돈 모아서 반지하 투룸을 얻자길래 그러자고 했고, 아- 그때의 나는 너무 멍청해서 보증금 모은걸 그냥 그 언니 주고 월세도 공동명의조차 안 했다. 그 집에서 나올 때 나는 빈손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 이름으로 계약한 인터넷 약정 해지금이랑 뭐랑 여하튼 엉망진창이 되어 돈만 날리고 고시원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던 중 다른 알바를 하며 알게 된 언니가 내 사정을 듣고선 자기가 지금 반지하 투룸에 사는데 방이 하나 비니까 보증금 없이 월세 조금 내고 거기 살래?라고 해서 살게 된 이 반지하살이는 휴학이 끝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년 반을 이어가게 된다.
이 반지하는, 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처럼 화장실을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화장실 안에서는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었다. 방에는 조금만 방심하면(사실 방심 안 한다고 뭐가 달랐겠냐만) 곰팡이가 창궐했고, 뭐 벌레는 나타나면 그냥 '아 저기 벌레가 지나가네' 하고 생각이나 하고 마는 정도였다. 집에 나오는 벌레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너무 피곤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거기서 한창 곰팡이가 퍼지던 계절에 폐렴에 한 번 걸려 입원했다가 병원비에 기겁해서 뛰쳐나왔고, 후두염 합병증으로 거의 몇 주간 말을 못 했다.
그런데, 이 반지하의 진짜 문제점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여자 둘이 살기도 하고, 얼마간은 여자 셋이 살기도 했다.
한쪽 창에는 방범창이 있었고, 다른 한쪽 창에는 방범창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범창이 있는 큰 방의 창문은 자바라 식으로 된 방법창이 가운데 자물쇠로 잠겨있는 형태였고, 작은방은 그마저도 없었다. 작은 방과 큰 방 모두 창문을 열면 곧장 맞은편 빌라의 빨간 벽돌이 보였는데, 그 폭이 약 1미터 정도였고, 통로는 대충 막혀있어서 사람이 출입할만한 공간이 아니라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에어컨을 살만한 돈이 없는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20대들이었고, 무더운 여름의 해결책은 창문을 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환경은 우리를 쉽게 범죄에 노출시켰다. (실제 문제는 환경보다는 범죄자들에게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늦은 새벽, 큰 방의 자바라 방범창의 자물쇠를 뜯으려는 남성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해야 했고, 한밤중에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듣고 깬 적도 있다. 아, 가장 소름끼치는 순간은 그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 새끼와 누워있던 내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이다. 내 머리맡 쪽 창문에서 위에서 핸드폰을 들고 날 내려다보던 그 눈빛. 늘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집주인한테 좀 더 이쪽에 밤범창을 신경 써달라고 하라거나, 이미 도망가서 잡을 수는 없다는 그런 얘기들 뿐이었다.
더운 여름이어도 우리는 편하게 얇은 옷을 입지 못했고, 창문도 열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 아주 작은 소음에도 흠칫 놀라 깨기 일쑤였다.(나는 지금도 자는 중 나는 작은 소음에도 아주 쉽게 깬다. 깊은 잠을 못 자는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으로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먹고 있다.) 그리고 나는 대학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이 내 방도 없는 본가로 이사했다.
취업 후 집을 구하러 다니던 때, 한정된 예산으로 볼 수 있는 집들 중에는 반지하가 많았다. 반지하 답지 않게 채광이 좋다는 둥, 여기는 리모델링도 다 마쳤고 1층이나 다름없다는 둥 그런 말들은 아무 의미 없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반지하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바깥에서 날 내려다보던 그 눈빛은, 반지하에 또 사느니 그냥 안 살래- 라는 마음을 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후, 나의 집을 보는 기준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아주 달라져있었다.
주변에 유흥가가 있는지, 내 집 입구를 비추는 CCTV가 설치되어있는지, 보안은 2중 이상인 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창문마다 방범창은 설치되어있는지.
처음 나 혼자 사는 자취방으로 (고시원과 하숙집은 제외하자) 보증금 500을 모아 구한 옥탑은 그런 조건을 만족한 곳이었다. 정말 대문 코앞에 CCTV가 있었고, 대문에서 1차 보안, 2층으로 올라가는데서 또 번호키로 문을 열어야 했으며, 내 옥탑 방으로 들어오는 데에도 열쇠가 필요했다. 한쪽 방 창문에 방범창이 없다는 흠이 있었지만, 이사 전 집주인과 협의해 사비로 방범창을 설치하고 현관에도 잠금장치를 하나 추가했다.
그 옥탑은 여름엔 엄청나게 덥고 겨울엔 문이 얼어서 열리지 않을 정도로 추웠고, (수도도 한 번 동파되었었다) 내 월급에 비해서는 사실 비싼 편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거기서는 조금쯤 안전한 기분으로 퇴근 후 쉴 수 있었다.
나는 가난과 내 성별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빼앗아 간 그 시절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든 이사를 할 때면 내 발목을 잡고 살만한 집을 찾는데 까다로운 조건들을 잔뜩 추가하게 만든다. 반지하에 살아도, 1층에 살아도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꽤 많은 주거비를 아끼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은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5층에 산다. 반지하도 1층도 피할 수 있을 만큼 성공(?)했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반지하라는 주거형태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안전한 삶을 앗아가는 범죄자들이 사라지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몰카범들과 방범창 자물쇠를 뜯으려던 범죄자는 내가 아직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 경험으로 어떤 경제적 피해를 보고 삶에 수많은 제약이 생겼는지 관심이나 있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반지하에서 살면서 누군가의 호기심이나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거리를 걸으며 그런 건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굳게 닫힌 그 창문이 그저 미세먼지 탓이기를 바란다. 그때의 나처럼 창문을 열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 그 안에 산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슬프니까.
모두가 안전하게 사는 세상은 언제 가능할까?
한 번쯤은 사람들이 생각해봐 주었으면 좋겠다. 반지하에서도, 1층에서도 큰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특권일 수 있다는 생각. 누군가는 같은 환경에서도 더 큰 두려움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이 사회구조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봐 준다면, 이 글은 내게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