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지만 중학생이 되었다

by 박현주

엄마를 만나고 왔다.

방학이라고 외갓집에 갔던 아들의 예비소집일이 내일이라 엄마도 보고 아들도 데려올 겸 포항으로 향했다.


일부러 식사시간을 지나서 갔는데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하는 엄마는 끝까지 분주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뭐라도 먹이는 게 엄마사랑의 표현방식 인가 싶어 다이어트도 재껴두고 주시는 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엄마와 여동생은 위, 아랫집으로 살고 있다. 엄마를 보러 가면 동생도 함께 볼 수 있어서 편하고 좋다.

조카와 우리 집 아들은 한 살 차이에 죽이 잘 맞아 방학이면 함께 보내는 날들이 많다.

이번 아들의 외할머니댁 방문도 조카와 놀기 위함이 더 크다.

오래간만에 자유를 선물한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께 인사부터 하고 동생과 조카를 보러 1층으로 향했다.

명절 때도 각자 바빠 못 보다가 오랜만에 봤더니 세상 반갑고 기뻤다.


오래간만에 회포를 풀었다. 맛난 것을 주문해 입도 즐겨가며 4시간을 알차고 빡빡하게 보냈다. 지난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가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내가 중학생 시절, 여자중학교였던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조카가 그 학교에 다녀서 우리 후배라는 이야기는 늘 단골이야기처럼 끄집어내어 졌다. 이번에 들은 놀라운 소식은 학창 시절 도덕선생님이셨던 황*숙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이 되셨다는 이야기였다.


옛 추억이 되살아나며 잠시 중학생이 되었다.

교생선생님과의 추억, 나를 아끼셨던 한문선생님의 죽음, 도덕선생님과의 기억, 모든 게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른 봄 새싹이 피어나듯 나의 기억 속에서도 하나 둘 피어났다.


잠시지만 그 시절에 흠뻑 젖어 행복했다. 그런 추억이 남아있어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했다.



한 반에 20명 남짓이던 중학교에서 50여 명이나 되는 학교로 전학 왔을 때, 뻘쭘해하던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친구들도 기억 속에서 소환되었다. 아무것도 몰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엄마를 보러 왔는데 동생과 추억놀이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일 예비소집이 끝나면 다시 외갓집으로 간다는 아들 덕분에 엄마를 더 볼 수 있게 됐다.



내일은 엄마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내일은 어떤 추억놀이로 설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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