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신랑과 영화관을 갔다

by 박현주

건설현장 용어로 대마(찌)가 났다며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래저래 아픈 분이 계셔서 일이 안된다고 했다.
다리가 아픈데도 기어이 출근하더니 하늘이 돕는 건지 강제휴가가 주어졌다.





오전에 아들의 학교에서 예비소집이 있었던 터라 학교에 내려주고 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출출하다는 신랑에게 국수맛집을 소개했다.

아빠는 국수, 딸은 김밥을 먹으며 배도 채우고 시간도 때웠다.
청소를 하고 나왔다는 아이를 다시 태우고 친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신랑은 카센터에 내려주고(시어머니차를 어젯밤에 맡겨둬서 찾으러 갔다) 우리는 친정으로 향했다.

점심만 먹고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점심을 먹고 나서려는데 이번엔 딸도 친정에 남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모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내 여동생과 딸은 코드가 잘 맞다. 점심을 먹으며 배꼽 잡고 담소를 나눴는데 너무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두 아이를 친정에 남겨두고 자유의 몸이 되어 홀로 집으로 향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표가 난다는 옛이야기처럼 돌아오는 내내 뭔가 허전했다.
쫑알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만 같았다.
너무 허전한 마음에 라디오를 틀고 공허함을 달래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 엄마가 바리바리 챙겨주신 짐들을 정리했다. 습하고 더워서 그런지 땀구멍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머리끝부터 솟아난 땀이 얼굴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그때까지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신랑.

일찍 올 줄 알았다며 3시가 다될 때까지 밥을 굶고 있었다. 맙소사. 얼른 밥상을 대령했다. 신랑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눈 감추듯 금세 먹어치웠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든든하게 한 끼를 먹더니 뜬금없이 영화를 보러 가잔다.

"요즘 재미난 거 있나"
"밀수 재밌다던데, 그거나 보까?"
"시간표 봐봐라"

급작스레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여기 얼마만이야~~~"
"우리 같이 본 게 연평해전이가? 공조 1 이가?"
"도대체 몇 년 만이고?"

간혹 집에서 결재하며 보긴 했지만 단둘이 영화관을 찾은 건 오랜만이었다.
옛 생각도 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왔더니 다리 올리는 것도 있고 좋다~"

나도 모르게 영화관을 두리번거리며 탐색하고 있었다. 촌여자의 향기를 풍기며 모든 걸 신기해했다.
집에 와서 나눈 이야기지만 신랑은 내가 많이 들떠 보였다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신랑이 이쁜 카페를 데리고 가겠다 했다. 웬일... 삼릉 앞 자판기커피를 가장 맛있는 커피라 노래하는 사람인데 오늘 참 낯설다.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다 꽃이 가득 핀 이쁜 카페를 보았다며 나를 데려갔다.
맙소사. 불이 없다.
외출 중 팻말이 우두커니 서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벌써 문을 닫은 거가? 아쉽네. 여기까지 왔는데"

경주가 아닌 울주군까지 넘어왔던 터라 아쉬워했다.
아쉬워하는 신랑에게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했다.
나와 오려고 염두에 둔 그 마음이 고마웠기에 괜찮다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오랜만에 영화관 와서 보니 진짜 좋네. 우리 또 올까?" 신랑이 말했다.
"응,8월에 한국영화 4편이나 나온대. 오자, 오자"

오랜만에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걸 한건 아니지만 2시간 동안 함께 즐겼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고 좋았다.
그 기분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거기에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발언은 또 한 번 행복감에 젖게 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순간만은 내 세상이었다.

영화 한 편 본 걸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집에서 본 범죄도시 3랑은 차원이 달랐다.
영화라는 명사보다 함께라는 부사가 더감동적이던 날이었다.
7년 만에 다시 얻은 감정이었다.
이 감정, 잊지 않고 싶어 오늘도 끄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