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부터 메였던 줄이 풀리듯 내 정신도 풀리기 시작했다.
내 범주안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별별챌린지가 시작되었고, 아이들 방학과 둘째 아이의 코로나 감염, 신랑의 사고까지 겹치며 나보다는 가족을 신경 쓰기에 바빴다.
운동과 식단으로 몸은 약간 가뿐해졌지만 마음은 추를 달아놓은 듯 무거웠고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흔들린다. 답답하고 혼란스럽다. 정답인 줄 알았는데 오답인 느낌, 잘 걸어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냥 서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느낌이다.
욕심이 아닌 것 같다.
그냥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기분이다.
사명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이 있다. 정말 몇 달을 기도하며 힘겨움을 이겨내고 있을 때 방송을 통해 응답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씀하셨다.
한 여자교수님께서 나오셔서 사명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꼭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이루고, 어느 자리에만 앉아야 사명을 다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사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힘차게 말씀해 주셨다.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아이를 돌보고 케어하면 그것이 사명이라고, 절대 세상을 잣대 삶지 말라고 하셨다.
응답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감사했다.
그분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셨다는 생각에, 나를 보고 계신 다는 생각에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상처에 딱지가 앉듯 나에게도 단단한 막이 생긴듯했다.
'그래,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게 사명이라 하셨잖아.'
이런저런 일들로 세월을 이겨내며 나는 서서히 익어갔다.
아니 익어갔다고 착각했다.
사명을 찾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 고집과 아집으로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지 며칠 전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나만 생각하는 것 같아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시어머니도 일을 하고 계시는데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싶어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 시어머님은 내가 집에서 일하는 걸 일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은 말투로 한 번씩 나를 작아지게 하실 때가 있다.
나도 벌고 있는데, 쉬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냥 조금 억울하다고나 할까.
신랑과 작년부터 계획했던 일이 있어서 취직을 안 한 것도 있는데, 눈치가 왜 이렇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친 듯이 살았다.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타인의 눈에는 보잘것없이 보이고 그저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억울했다.
타인의 시선은 필요 없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노래하듯 이야기하던 나인데 100% 그렇지 못한 내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자니 부끄럽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우직함도 없고 근성도 바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들은 좀처럼 서서히 내 가슴을 파먹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눈치 보는 삶이 됐는지,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아 왜 이 지경까지 끌고 왔는지 돌이켜보고 있는 요즘이다.
다시 기댈 곳은 한 곳뿐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잠언 16:9)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길로 걸었다면 이제는 다르다.
그분의 뜻을 알고 따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온전히 맡기겠다고 작정해 본다.
"나는 어디로 가면 될까요?"
기댈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게 위안이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