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명절이 너무 좋았다. 그날만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옷, '한복'을 입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새 옷을 사 입는다는 건 연례행사 같은 일이었고 명절이라는 명목으로 새것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한복이 유일했다. 나는 색동저고리를 무척 좋아했고 색동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어보는 게 그때 가졌던 유일한 꿈이었다. 그런 나에겐 선택권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주장하지 못했다는 게 진실이다. 다른 극의 자석이 꽉 붙어있는 것처럼 입은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반지르르한 핑크빛 양단의 한복, 그 한 벌이 내 초등시절 유일한 한복이었다.
'나는 알록달록이 좋은데.'
엄마에게 내주장 하나 못 내세우던 소심함 그 자체였다. 그러니 내가 색동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시는 건 당연지사.
원망도 할 수 없었다. 삼 남매 맏딸이라는 자리가 눈치가 보였던 것이었을까? 그때부터 부모님의 주머니를 신경 썼던 것일까? 나도 그때의 나를 모르겠다. 지금 맘 같으면 다양한 색으로 요구를 해댔을 것 같은데 일찍이 철딱서니 없는 짓은 내 선에서 잘랐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제야 소원성취를 했다. 진하지는 않지만 나름 예쁜 색동저고리였다.
"이게 제일 이쁜 것 같은데? 너는 어때?"
시어머님의 물음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 좋아요, 너무 이뻐요"를 연신 외쳤다.
한복을 고르며 어찌나 행복했던지,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너무 기뻤던 나머지 한복을 고른 뒤의 일들은 내 기억 속에 없다.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했던 그 잠깐의 시간이 내 기억의 전부다.
그리 좋아했던 한복인데 결혼 후 농장 신세가 되어 버렸다. 꺼내 주고 싶어도 꺼내 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장롱 안에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너무 슬펐다.
'저 이쁜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그런 나의 마음을 하늘도 아셨던 것일까?
어느 날, 지인의 카페를 방문했는데 사장 언니께서 앞치마인지, 치마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패션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나는 줄곧 그 옷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건 앞치마예요? 치마예요?"
원단으로 만들어진 이쁜 물건들을 보면 꼭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직업병을 갖춘 탓에 서슴없이 질문을 드렸다.
"이건 허리 치마야"
"그래요? 한복으로 입는 그 치마요?"
"응, 그래. 요즘 이렇게 많이들 입더라고"
'허리 치마? 한복이라고? 한복 원단은 아닌데?'
그리고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한복 느낌이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다양한 원단으로 허리 치마를 만들어 입고 있었다. '요즘 추세가 이렇구나' 무지한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세상을 배우게 됐다.
그렇게 사장 언니께 허리 치마 한 장을 샘플로 받아와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옷을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한복을 만드는 방법은 더더욱 모른다. 그러나 궁금하거나 갖고 싶은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런 성격 덕분인지 나는 그 허리 치마로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게 되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100장은 무던히 팔았다. 그렇게 나는 자리도 잡고 인정도 받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나의 허리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솔직히 만들어서 한 장 더 팔면 주머니는 두둑 해졌겠지만, 지인들의 충고는 내 생각과 판연히 달랐다.
"왜 너는 광고를 안 해? 네가 만든 것을 네가 직접 입는 게 광고하는 거야"라며 조곤조곤하게 알려주셨다.'유레카'를 외쳤던 순간이었다. 내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질 못했으니까. SNS의 광고보다 내가 입고 다니는 게 더 큰 홍보가 될 수가 있다는 걸. 그날 깨달았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해서 원하는 한복도 못 입었던 내가 직접 만들어 입다니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휘날리는 치맛자락은 나를 설레게까지 했다. 한복을 입게 되니 평상복처럼 입을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됐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누구에게 보다 나 자신에게 진솔하여지자 다짐했다. 어려웠던 주문임에도 솔직하지 못해서 끙끙대고 고민만 하다가 힘겹게 포기했던 날들이 있었다. 잠을 이루기 어려울 만큼 마음고생도 많았다.
이번 다짐은 어릴 적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세우는 도전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한복이 좋다. 그래서 지금도 만드는 중이다.
무엇보다 한복은 엄청난 손길이 필요하다. 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무(無)였던 원단에 형태를 선물하는 일이다.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정성과 사랑, 수백 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 나의 삶도 한복 만들기와 닮아있다. 혼자일 때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족은 물론 여러 사람의 관심과 애정, 가르침과 조언들이 하나씩 쌓이며 다채로운 인생이 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만 잘나서도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바느질해오면서 나는 '덕분에'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됐다.
나 혼자였으면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지인분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가 있었다. 그럼에 나는 오늘도 감사한 분들을 떠올리며 바느질을 이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