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당에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다. 그 식당을 대표하는 음식, 혹은 가장 잘하고 인기 많은 음식을 시그니처 메뉴라 하고 적혀있는걸 심심찮게 봤다.
내가 허리치마로 한창 호황기를 누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허리치마가 니 시그니처네"
바느질에 소질 있다는 말하나 만 믿고 사업에 뛰어들면서 나의 색깔이 무엇인지 애타게 찾고 있었고, 헤매던 중이었기에 그 한마디는 애간장 녹던 내 마음에 갓 피운 모닥불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좋았다. 눈물이 날 만큼..
왜냐하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색깔을 전혀 몰랐다.
누군가가 작품을 보고
"아~ 이 작품 그 작가 작품이겠네!!"라는 말을 듣는다면 공예작가로 살아가는 길이 성공의 반열에 올라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최고의 칭찬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공예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공감하시리라 생각된다.
나의 작품을 보고 나를 떠올려주신다는 건 그 작품에 내가 녹아져 있어서 내 느낌, 내 손길, 내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것인데 그건 여느 작가나 바라는 최고의 시선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시선을 바라 왔다. 너무나 애타게, 너무도 간절히.
바느질은 특출 난 디자인이나 상표, 직접 제작한 원단이 아닌 이상은 작가를 분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너무나 대중적이고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디자인이라도 수입되어 들어오는 저단가의 작품들을 마주하자면 핸드메이드 작가들의 어깨에는 돌멩이가 아닌 바윗돌만 한 부담감까지 하나씩 얹게 된다. 그럴 땐 공예가 쉽지도 않고 돈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 살갗으로 와닿는다.
바느질 업계서는 이 단어가 쓰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쓰고 있다. 나를 대표하는 작품, 스터디셀러처럼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을 나의 시그니처 작품이라 부른다.
첫 번째 내 시그니처 작품이 허리치마였고, 허리치마를 잇는 2번째 시그니처를 구상했으며 얼마 전 탄생시켰고 자리 잡도록 주력하고 있다.
그게 바로 '패브릭 책갈피'다.
제2의 시그니처 패브릭 책갈피
작품도 만들고 있고 고객이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패키지도 꾸렸다.
지인들께 체험단을 부탁드렸고 한분씩 피드백을 해주고 계신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제2의 시그니처로 탄생할 것 같다.
나의 허리치마가 시그니처라고 인정받고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정말 많은 고민과 싸워야 했고 그 고통으로 끙끙 앓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수없이 몰아닥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바느질은 놓지 않았다.
잠깐의 방황과 휴식은 있었지만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바느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색깔? 시그니처? 그게 머시라고~" 한마디 무심하게 툭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는 왜 그리 힘들어했을까?
잘 나가는 공예팀 지인들, 자기만의 특색으로 본인의 색을 잘 알리는 작가들을 보면서 자괴감으로 나를 깎아내리기 일쑤였고 나를 비하하는 마음 해충이 스며들어 남아있는 자존감까지 갉아먹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밖을 향한 시선을 내부로 돌려보려 애썼다. 남을 부러워하는 그 시간을, 그 시선을 나에게 돌려 집중하자 다짐했고 그렇게 바느질을 이어 나갔다.
허리치마는 물론이고 가방, 지갑, 머리끈, 마스크도 만들며 계속 움직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기며 행동했다.
그냥 움직이기만 했는데 그 시간들이 쌓이자 시그니처가 탄생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려고 한다.
내 색깔을 찾는다는 것은 번쩍이는 번개처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색을 찾겠다고 나를 괴롭히며 힘들게 했다. 이거야말로 과욕이 부른 참사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농밀하게 내 시간을 채워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색이 묻어져 나오는 것인데 그걸 단숨에 알아내려고 했으니 쓸데없는 빠르게 병 때문에 내가 나를 병들게 했다.
어찌 보면 내 색깔을 찾는 길은 힘들고 고되며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지내다 보면 어느 날 최고의 선물로 내게 와 안길 것이다. 나도 그 터널을 지나왔다. 나 홀로 뒤처진 것만 같고 앞도 보이지 않아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도 있었지만 절대 주저앉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거 하나면 두려움의 터널을 충분히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 방송에서 방탄소년단 뷔(태형)의 아버지께서 뷔에게 그런 말씀을 했다 한다.
"나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라고 울면서 전화한 적 있어요. 근데 아빠가 힘들면 그만해도 돼.. 다른 직업 많으니 다른 직업 찾아보자... 그므시라꼬, 다른 일로 가면 되지.."라고 하셔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힘들다고 말했던 자신이 창피했다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