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챙기기

by 박현주

오늘은 오후 내내 가슴이 쓰라렸다.

누가 톡 하고 건드렸으면 봉선화 씨방이 터지듯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한 어머님이 병원을 찾으셨다.

늘 보호자로만 오셨던 분이었기에 어머님만 방문하신 게 조금은 의아했다.


함께 오시던 아버지는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계셨고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마를 대로 말라계셨다. 움직이는 것조차도 자기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아버지를 기꺼이 모시고 병원을 찾던 분이셨다. 늘 단단하고 굳세게 보이던 어머님이 아팠다.


"시어머님은 치매에, 신랑은 암에, 뒷바라지하다 보니 내가 죽겠더라고.

다들 아프면 나에게 기대는데 나는 기댈 데도 없고, 아프니까 병원이라도 와야겠다 싶어서 왔어요.

잠시 쉬어야겠다. 나부터 살아야겠어."


수액을 다는 동안 엄마(나는 어머님과 할머니들을 보통 엄마라고 부른다.)는 아픔을 토해냈다. 여기서라도 쏟고 가셨음 해서 귀를 활짝 열고 듣기만 했다.


결혼하면서 시작된 고된 시집살이, 아픈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등 잠시였지만 마구 쏟아내는 이야기는 엄마의 한이었고 고통이었고 눈물이었다.


정작 본인이 아프니 의지할 곳은 병원뿐이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며 하소연을 하시는데 괜스레 울컥했다.


70대 엄마. 얼굴에는 세월의 고단함이 녹아 주름이 가득했고 초등학교 저학년정도되는 작은 키를 가졌지만 단단하고 야무져 보였다.


폴대에 달려있는 수액제들을 최대한 천천히 떨어트렸다.

잠자는 시간 말고는 엄마가 숨 쉴 시간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원에 있는 순간만이라도 숨 좀 쉬셨음 하는 게 내 마음이었다.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는 포도당과 약물이 엄마가 가진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다 맞고 돌아가시는 엄마의 얼굴엔 여전히 그늘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도 옅은 미소를 띠어주셨다.

그 미소가 오후 내내 나와 함께 했다.


나부터 챙긴다는 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해야 남을 위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나를 챙기는 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이타적이라는 걸 피부로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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