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피곤함에 절어있던 내가 바느질까지 하는 건 욕심이란 생각이 들어서 참고 참았는데 오늘은 무조건 오고 싶었다.
작업실문을 열자 그리웠던 향기가 가슴에 와 꽂힌다. 보이는 곳곳에 자리 잡은 원단들, 퀼팅 하다가 내버려진 가방, 바느질하고 남아 굴러다니는 원단을 보니 여러 감정이 실타래 엉키듯 엉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바느질인데, 내가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내 옆에 힘이 되어준 친군데 함께 할 수 없음에 애가 타고 속이 상한다. 만들고 싶은 것도 많고 선물하고 싶은 것도 많다. 치마도 만들어 입고 싶고 만들던 가방도 끝내야 된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럴 수 없는 환경이 달갑지만은 않다. 밉다.
아쉬운 마음에 이 원단, 저 원단 바라본다. 그러다 쓰다듬기도.
반가움에 뒤적거려 보기도 하고 자재박스도 괜스레 열어 들여다본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원단, 상자 안에 잠들어 있는 원단에게 생명을 불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요동을 친다.
바느질, 격하게 하고 싶다.
내일은 오전 근무만 있다.
이런 날은 지인들과 약속을 잡는데 이번달은 약속을 잡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니 집안과 작업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서다. 정리가 되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길 거란 믿음이 있다.
정리가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루에 30분만 투자해 보자는 마음으로 덤비려 한다.
그중에 바느질도 있다.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염려가 동시에 몰려오지만 물러서지 않을 거다.
포기할 때 하더라도 일단은 덤벼보려 한다.
작업실에 들어와 의지를 불끈 태우고 있다.
날씨는 영하를 가리키고 손끝이 시릴 만큼 작업실은 차갑지만내 가슴은 용광로처럼 뜨겁다.
잠깐이지만 행복함에 젖어본다.
강풍에 창문이 덜컹거려도, 바람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창문을 긁어대는 나뭇가지소리가 거슬려도 나를 잠재울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