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언제 길었냐는 듯 금세 가을날씨다. 요 며칠 아침, 저녁으로 꽤 쌀쌀해져서 반팔을 입고 출퇴근하기가 힘들었다. 하룻밤새 외투라도 필요한 날씨가 됐다. 급변한 날씨가 당황스러웠지만 주말을 맞아 옷장정리에 들어갔다.
나는 옷을 잘 사지 않는다. 오히려 신랑이 옷을 잘 사다 준다. 나보다 센스가 있고 쇼핑도 신랑이 더 좋아한다. 내 신체사이즈를 기억했다가 옷과 신발을 기가 막히게 사서 온다. 내 취향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다. 나는 스티븐잡스나 마크주커버그처럼 티셔츠에 청바지하나면 된다. 옷을 고르는 스트레스도 싫고 그게 간편하고 좋아서 늘 단벌신사를 고집한다. 하루는 신랑이
"니는 그 옷밖에 없나?"
"주차장에서 병원만 왔다 갔다 하는데 입고 벗기 편한 게 최고다."
출근을 하면 병원복을 갈아입는데 굳이 출, 퇴근하는 잠깐을 위해 입는 옷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는 않다.
서랍장에 있는 여름옷을 다 꺼내고 가을, 겨울옷을 집어넣었다. '버릴 옷이 있을까?' 했었지만 입지 않던 옷이 야금야금 튀어나온다.
1년 혹은 2년간 입지 않은 옷들은 가차 없이 빼버렸다. '언젠간 입겠지?'라고 생각했던 옷들은 역시나 입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비닐봉지를 가져다 버릴 옷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한 봉지가 거의 가득 찼다.
여름옷장이 휑하다. 왠지 모를 후련함이 솟구친다.
이래서 비우라고 하는 건가? 설명할 수 없는 개운함과 쾌감마 저 느껴진다.
매일 1 버리기를 했던 봄이 떠올랐다.
'그래, 그때 그 느낌이다!!'
비웠을 때 오는 그 해방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1일 1 비우기를 다시 실천해야겠단 마음마저 스멀스멀 올라온다.
비워보니 알겠다. 얼마나 가득 채우고 살았는지, 얼마나 필요 없는 것들로 나를 괴롭혀왔는지.
앞으로 조금씩 더 비우며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졌다. 자유롭고 싶어 졌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비워내고 덜어내야겠다. 그러다 보면 한결 가벼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