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넌 소중해, 너의 곁에 있을게, 정말 사랑한다

영화 '오두막'

by 박현주

"선과 악은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반반이다가 51 프로만 돼도 선한 건 선한 게 되고, 악은 악으로 치부되는 것 보면요. 이 영화 꼭 봐요"

며칠 전 만난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영화다.
예전에 한번 봤었는데 이야기의 결말이 기억이 안 난다.
분명 감동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으나 그 이상 말할 수 없는 깜깜한 상태.
종교적인 색이 짙은 영화였기에 받아들이는 것도 자유겠지만, 불교를 믿으시는 선생님께서 종교를 떠나 마음에 훅 들어온 게 있다며 추천해 주시니 결코 나쁜 영화는 아니란 반증이기도 하다.
어느 법경 전 보다도 강한 울림이 있었다 하시니 다시 안 볼 수가 없었다.





술중독인 아버지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던 주인공 맥이 비밀하나를 가슴에 묻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여름 어느 날, 아이들과 캠핑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밤하늘을 보며 막내딸 미시와 맥의 대화가 오가는데 유독 따뜻하다.
"아빠의 엄마가 뭐라 하셨게? 별이 반짝거릴 땐 천국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거래"

캠프 마지막날, 둘째의 장난에 첫째 아이가 물속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첫째를 구하러 맥이 강으로 뛰어든 사이 막내딸은 실종된다.
막내딸을 잃어버린 맥은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괴된 딸이 살해된 '오두막'으로 오라는 파파(아내가 신을 부를 때 쓰는 이름)의 초대장이었다.
초대장을 받고 고민하던 맥은 친구의 차를 빌려 오두막으로 향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에 사로잡힌 맥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를 돌보 신다. 하나님 외 2명이 더 나오는데 그 모두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한다는 걸 마지막이 다 돼서야 깨달았다.

하나님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마시며, 예수와 호수 위를 걷기도 하고 밤에는 별을 바라보면서 맥은 조금씩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밤별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게 아름다워도 우리 눈에 비친 당신과는 비교도 안 돼요."

그럼에도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분노와 좌절은 맥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내가 벌 줄 필요는 없어. 죄자체가 벌이니까.
아무리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난 자네가 엉망이라 여기는 모든 것 속에 존재하며 자넬 돕고 있어. 그게 내 일이거든..... 날 알고 내가 얼마나 자넬 사랑하는지 알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내가 자네 삶 속에서 선으로 애쓰는 걸 알 거야."

주옥같은 명언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얼마 후 맥은 지혜의 신을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이 없었더라면 맥은 딸을 죽인 자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선생님께서도 추천해 주셨던 부분이라 더욱 신경 써서 보았다. 이때부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의 역할을 맥에게 해보라고 하며 자녀 중 한 명은 천국에, 한 명은 지옥에 보내야 만한다고 한다. 맥은 차라리 자기가 가겠다고 말한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지혜의 신은 이야기 한다.
고통 없는 삶을 약속해 주길 원하냐고 지혜의 신이 또다시 묻는다. 맥이 그렇다고 하자 그런 삶은 없다고 한다.
주저앉아버린 맥은 더 이상 심판하지 않겠다고 한다. 곧 죽었던 막내딸 미시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즐겁게 뛰어노는 것을 보게 된다. 지혜의 신이 이제는 털어내야 될 때라 조언한다.
그날밤,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재회하며 용서하는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수용과 용서를 알아가는 맥의 모습이 그려져 뭉클했다.

다음날, 하나님이 맥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신다.
바위에 잠시 앉은 맥의 손 안에는 작은 무당벌레가 있었고 그것을 죽이려 주먹을 쥔다.

"그를 용서하라는 게 아니네. 나를 믿고 옳은 일을 하란 걸세. 최선이 뭔지 깨우치고. 용서한다고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네. 그저 그의 목덜미를 놓아주라는 거지. 맥, 내면의 고통이 자넬 삼키고 있어. 기쁨을 앗아가고 사랑할 능력을 잃게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함으로 인해 계속 자신을 옭아매고 있잖아"

맥은 쥐었던 주먹을 풀며 '난 널 용서한다'는 이야기를 되뇐다.
자신, 자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위로 끝없이 이어진 죄를 탓할 수 없듯이 딸을 죽인 자의 죄를 심판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맥은 어쩔 수 없었던 자신을 용서하고 살인범을 용서하는 게 최선임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긴다.

이내 죽은 막내딸의 시신을 찾아 예수가 만든 관에 넣고 맥 자신이라던 정원에 묻는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쓰러져우는 맥은 곧 나의 모습 같았다. 잃어본 자만이 아는 그 슬픔에 목이 메어왔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조용히 흘려보냈다. 눈물도, 아픔도.

나의 입은 맥처럼 '용서한다'를 되뇌고 있었다.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응어리가 녹아가고 있었다.

맥은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고 그들의 대화는 나를 토닥여주었다.

"집에 가면 일하고 좋은 사람 되려 애쓰고 가족을 사랑하고, 모르겠어요. 제가 뭘 하든 크게 상관있나요?"

"있다마다요. 당신은 중요해요. 당신이 하는 일도 모두"
"당신이 사랑하고 용서할 때마다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가 우주를 더 낫게 변화시키죠."
"한 가지라도 상관있으면 모든 게 다 상관있지."
.
.
.
"돌아가도 제 곁에 있어주시면 좋겠어요."

"늘 그래온걸요."
"늘 그러고 있고"
" 늘 그럴 거네"

하나님은 지금, 맥이 아니라 나를 고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용서할 수 없었고 얼굴을 마주하면 속으로 원망과 저주를 퍼부어댔다.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리던 세월이 12년이나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곪고 곪았던 내 안의 상처들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이만큼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숨기며 지내온 아픔의 세월이 너무나도 많이 흘러버려서 무뎌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위한 언어였고
'너는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해, 항상 너의 곁에 있을 거야. 혼자두지 않을 거야. 정말 사랑한다' 며 귀에 대고 속삭여주셨다.

이 영화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 수 있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어서, 특히 나를 사랑한다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고, 그러기에 이 선생님을 만나야 할 목적을 만드신 것 같았고, 나의 회복을 위해 여러 사람을 예비하셨던 모든 일들과 사건들에 감탄했고 감동했다.
타의로 자식을 잃었지만, 그 원망으로 나를 죽이며 살아온 시간을 반성했다.


몇 년 전, 귀띔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못 챈 나를 위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하나님 품 안에 있었다. 분명, 천국이었다. 다시는 그 품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