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걸쳐 밤낮으로 탄생시킨 글 하나가 사라졌다.
빈 메모장을 보며 허탈하고 공허해 헛웃음조차 나질 않았다.
'내 글, 장문의 글은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까지 얼떨떨하지만 나를 충분히 다독거린 후, 써 내려가고 있다. 어이가 없어 분노조차 나질 않는다.
신앙간증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를 보고 작곡가 '알고 보니 혼수상태'팀과 배우 '이하늬'님의 이야기를 썼었다.
무릎으로 사는 자들, 하나님을 찾으며 사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신 일들, 살아오며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이야기를 들으며 큰 은혜와 감동을 선물 받았기에, 나누고 싶어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써 내려간 글이었는데 자취를 감춰버렸다.
'종이에 썼으면 괜찮았을까? 얼마나 욕심을 부렸길래 숨어버린 걸까? 한심하다. 한심해'
반성에, 자책에 힘겨운 새벽을 맞이했다.
잠오기직전에는 쓰는 게 아니었는데 아마도 잠결에 쓰다가 날린 것 같다. 아무런 기억도, 흔적도 없다.
'꼭 일이 터지고 나서야 반성하는 이 못된 습관을 고치라고 그러시는 걸까? 조금 더 잘 써보고 싶어서 부렸던 욕심이 꼴 보기 싫으셨던 걸까? '
오만가지 감정들이 들어왔다 나갔다가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사라진 글 덕분에 이 글을 쓰는 지금, 소재가 생겼으니 감사해야 한다며 나 자신을 다독거려 본다.
흔적을 감춘 그 글은 다시 부활시킬 것이다. 그 방송 2편으로 나의 루틴을 재정비하기도 했고, 큰 영향력을 체감한 방송이었기에, 혼자만 보기엔 아깝디 아까운 방송이었기에 주말 내내 다시 써보려 한다.
불행이나 고난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도 은혜이리라. 짧은 시간에 이 불같은 마음을 다잡았으니까.
예전의 나라면 분노에 휩싸여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며 들들 볶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무슨 일이든 좋은 일로 받아들이자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벌어질 이유가 있을 거라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거웠던 마음은 금세 가벼워졌고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웃프지만 장족의 발전에 감격스럽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나. 그 말이 내 삶에 스며들었다. 화도 꿀꺽 삼킬 줄 아는 아량 넓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살짝 미소도 지어진다.
잃은 글 덕분에 자라난 내공의 키를 재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감사하면서도, 다시는 잠자기 전에 메모장을 오픈하지 않으리라 비장한 결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