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것만으로 부족했더냐

눈물 젖은 등산

by 박현주

"산에 가자. 오늘부터 다시 몸을 키워야겠어"

"다녀와~나는 그다지... 내가 따라가면 자기 운동 안될 텐데, 혼자 다녀오셔유~"

"신랑이 가는데 마누라도 같이 가줘야지"


그 말에 서둘러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

경주남산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등산길에 올랐다.

상선암 가는길(경주남산)


둘째가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고 나은 뒤부터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에 자주 다녔다. 그곳에 아이들을 맡기는 의식을 치러놓았다는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 생일이나 아이들에게 시험, 큰 일을 앞두게 될 때 찾아가서 빌어주면 좋대서 수시로 다녔었다. 주 5일을 꾸준히 다닌 날도 있었다.

종교를 떠나 아이들에게 좋다는 건 다했다.

셋째를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찾던 곳이기도 해 나에겐 소중한 장소였다.

임신도 아니면서 임신증상놀이 하느라 산도 멀리했었는데 오래간만에 오니 좋았다.


산에 오른 지 10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신랑이 입을 뗐다.

"셋째는 어떻게 하고 싶노?"

"응?"

"어제 걸을 때 애들이 안 따라왔음 한번 물어보려고 했는데 못 물어봐서 네 생각은 어떤가 물어본다."

"왜? 자기는 싫어? 안 생기니까 조바심나제?"

"조바심보다도 1년 됐잖아. 안 생기니 스트레스도 받고 그렇네"

"그렇제, 나도 그랬는데 자기도 안 그랬겠나? 우리 그만둘까? 나는 자기 스트레스받는 거 싫다."


작년 11월, 굿으로 떠나보낸 셋째 아이를 만났고 한 달 뒤, 다른 굿을 한번 더했었다. 그때는 신랑도 참석했는데 셋째 아이가 또 찾아왔었다. 더 강력하게, 더 오랜 대화가 오고 갔다.

그 후, 신랑과 나는 다시 한번 셋째를 꿈꾸고 바랬다.

그렇게 1년이 흘렀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니 신랑도 애가 탔던 모양이다.

신랑이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니 욕심부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스쳤다.


"말자, 우리 빌만큼 빌었고 할 만큼 했잖아."

"니는 안 섭섭하겠나?"

"응, 아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둘이나 잘 키우고 살자"

"그래, 주말에 가방 둘러메고 애들 데리고 여행 다니고, 생기면 또 같이 다니면 되고."


말은 그렇게 하고선 섭섭함인지, 슬픔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여러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가슴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콧물도 흘러나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마스크 안을 가득 채웠다. 올라오는 울음과 흐느낌을 꾸역꾸역 삼키며 산을 올랐다.


다달이 생리예정일만 되면 잠 못 이루고 임신, 임신극초기증상, 노산임신, 임신테스트기 등등 임신에 관련된 질문과 답변부터 관련된 모든 것들을 검색하고 훑었다.

겨우겨우 잠든 날이 수두룩하다. 이제 하늘에 맡기고 그만 접자고 하니 그렇게 지낸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그림자가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숨쉬기도 힘든 것 같고 심장은 귀에서 뛰고 있었다. 내딛는 걸음마다 아령을 매단 것처럼 무거워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다리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가 다리로 전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산중턱 못 가서 상선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그곳에 도착해서 한참을 쉬었다.

식은땀이 빗물처럼 흘렀다. 마음의 고통이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진 것 같았다.


"땀을 콩죽같이 흘리노? 얼굴은 와 이래 노랗노?"


신랑의 얼굴에도 걱정이 묻어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더 가야 된다고 신랑을 잡아끌었다.

신랑은 내가 얼마 안 가 곧 주저앉을 것 같다고 하산을 요구했다.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했는데 예전의 내 몸과 다른 느낌이 들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경주남산에서의 경치

하산하는 길 뻥 뚫린 곳이 있어 잠시 쉬었다.

훌훌 털어버리자는 마음을 먹고 경치 모금했더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래, 하늘에 맡기자. 우리 아이들 잘 키우며 살자, 더는 욕심부리지 말자.'


내려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안 섭섭하나? 나는 솔직히 조금 힘들 것 같더라"


내려오는 길에 신랑이 다시 한번 물었다.


"놀아주기 힘들까 봐서?"

"아니, 노는 거야 실컷 놀아줄 수 있지. 애들 커가면서 돈 들어갈 것도 많고 해 달라는 것도 늘어나는데 일도 힘들고 하니까."


내 욕심부리기에 바빠 신랑을 못 살폈던 것 같아 내심 미안했다. 가장의 어깨가 무거운 걸 알면서도 거기에 돌덩이 하나 더 얹고 같이 가자 했던 것 같아 미안함에 눈물이 났다. 눈물은 볼을 타고 내려올 시간도 모자랐던지 땅으로 바로 곤두박질쳤다.


"설에 처갓집 갔다가 애들 부탁하고 한탄강 가자."


얼마 전부터 가자고 노래를 하더니 둘이서 걸으러 가잖다. 눈 내린 한탄강 잔도(트레킹코스) 사진을 코앞까지 들이밀며 보여주더니 마음먹었다고 꼭 가야 한단다.


자기도 힘들 텐데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알아보고 많은걸 함께하려는 신랑이 그저 고맙다.


아이는 하늘이 주시는 거라지만 신랑도 하늘이 주시는 거라 믿는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신랑이름도 '하나님 선물'이다. 나는 신랑과 아이들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사람이다.


'준 것만으로 부족했더냐'

신의 음성이 들리는듯하다.


더는 욕심부리지 말자.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