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이 무당을 만났습니다 -3
전쟁 같은 날의 끝
"괜찮나? 어떻노? 소리는 안 들리나?"
굿을 하고 나서 매일아침인사는 '잘 잤니?'보다 '괜찮아?'란 인사가 먼저 나온다.
굿 한지 삼일째 되던 날, 학교를 가서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이제 됐다, 다 나았다.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이틀뒤, 집에 있던 강아지(복실이)가 죽고 담날부터 새끼 4마리가 줄줄이 죽었다. 안락사시키려던 복실이를 데리고 와 4년을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했다.
복실이는 두어 달 전에 새끼 5마리를 낳았고 주먹만 하던 아이들이 몇 달 새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 한창 이뻤는데 한 마리만 남겨두고 모두가 엄마와 함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우리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모두 입양 보낸 걸로 이야기를 했는데 선의의 거짓말이라지만 가슴이 아려왔다.
남은 한 마리는 무조건 살리리라 마음먹고 애지중지 키웠다. 지금은 마당에서 밥값을 잘하는 아이로 크고 있다.
보살님 말씀으론 우리 가족, 친척들을 대신해 먼저 가준 거라고, 은혜 갚고 간 거라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날, 하굣길에 아이의 눈에 또 무언가가 보였다.
까만 동그라미가 깡충깡충 몇 번 뛰더니 이내 사라졌단다.
보살님께 여쭤보니 강아지엄마(복실이)인 것 같다고, 남은 아기들 잘 보살펴달라고 이야기하고 간 것 같다고 했다.
동물을 좋아하고 복실이를 유독 이뻐했던 딸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고 간 건지 모르겠지만 그 인사를 끝으로 우리 딸은 씻은 듯이 나았다.
어떤 식으로 나았든 나는 감사했다. 하나님께도, 우리 가정을 지켜주신다는 그 할머니께도, 어쨌든 모두에게 감사했다.
그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르겠다.
눈물로 지새우던 밤, 술도 안 먹는 내가 술을 찾기도 했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도 있었다. 아이가 잠잘 때만큼은 편히 잤기 때문에 아침이 오는 게 싫었다.
아픈 동생 때문에 아들은 신경도 제대로 못써줬는데 담담히 자기 자리에서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작년을 아무 탈 없이 잘 보냈고 2023년을 맞이했다.
심리센터에서도 아이가 갑자기 좋아졌다고 이유를 물으셨고 지난 일을 말씀드렸더니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들었어도 실감이 안 나는데 원장님이 못 믿겠다는 건 당연지사.
지금은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게 중학생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42년간 하나님을 부정하며 산적이 없다.
나를 주관하시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계획하시고 이 땅에 보내주신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종교를 버릴 수 없다.
선한 목자교회에 담임 목사이신 유기성 목사님께서 그러셨다.
"고난을 당할 때 이 어려움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 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나는 기도한다.
'주님.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아이에게, 저에게 아픔을 주신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크신 뜻을 알 수는 없다. 먼 훗날 그 뜻을 알게 되는 그날까지 나는 나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신랑을 보필하고 부모님을 잘 모시다 보면 무심히 어느 날, 알려주시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살아가며 또 얼마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주님의 뜻대로 살길 원합니다.'라며 진정한 고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탄탄한 믿음의 자녀가 되고 싶다.
요즘에도 보살님을 간간히 만난다. 이제는 이웃주민이나 다름없다. 무당의 길이 보통일이 아니고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걸 곁에서 조금씩 보다 보니 애처롭기까지 했다. 아이를 낫게 해 주신 부분은 감사하지만 내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
양다리 신앙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하나님 말고는 내 중심에 두기 싫다.
신랑은 연초에 또 신수를 보고 왔다.
우리 부부는 일 년이 너무 좋단다.
'당연하지! 하나님이 내편인데 좋을 수밖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일 년이 되고 싶다.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의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