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이 방법뿐인 건지, 이러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아이를 위한다는 그 마음하나만 갖고 찾아갔다.
법당이라는 곳에는 불상과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 호랑이 동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내 생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무당은 나와 비슷한 나이또래의 여자분이라 크게 거부감이나 거리낌도 없었다. 신랑에게 종종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크게 낯설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쉽게 대화를 이어갔다.
일단 아이를 보고 싶어 했다. 다음날이라도 잠시 데려와서 법당밖에서 보자고 했다. 안 그래도 겁 많은 아이가 법당을 보면 무서워할 수도 있다고. 아이눈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보고 싶었다며 과자를 건네셨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계셔서 그런가 세심한 배려에 감사했고 감동했다.
아이를 법당 근처 친척집에 보내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아이는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리에 이어 이상한 것도 보인다 했다. 무언가가 획획 눈앞을 지나간다 했다.
"직사각형 네모난 하얀 것도 지나가고, 까만색 동그라미도 지나갔어요"
그이야기에 놀라시며 급한불은 꺼야 되니 굿을 하자고 권하셨다. 할머니부터 온 가족이 회의에 들어갔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방법도 없었고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날짜를 잡고 며칠 뒤, 굿판으로 향했다.
'굿판이라니, 내가 굿판을 가다니'
여태껏 입원 한번 한적 없고 감기도 잘 안 하던 건강한 아이였는데 아이가 아파서 굿을 한다니! 믿어지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가 아프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떠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하자는 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으슥한 산아래 화장장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건물이었다. 우리말고도 다른 방에서 굿이 한창이었다. 울부짖는 울음소리에 무서움과 두려움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신랑과 시어머니는 일 때문에 못 오게 되셔서 나 홀로 참석했다. 오는 길 내내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제사 때처럼 온갖 음식들이 탑처럼 쌓여있었고 무당(앞으로 보살이라고 부르겠다)이 여러 사람들과 굿에 쓰일 물건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멀뚱멀뚱, 두리번거리며 앉아있는데 갓난아이한복이 눈에 훅 들어왔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끊임없이 흘렀다. 그 눈물의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보살님은 그런 분들이 많다고만 얘기해 주셨다. 조금 진정이 되자 절을 시키셨고 세배 말고는 해 본 적 없던 내가 절을 했다.
'내 새끼 살릴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리'
하고 또 했다. 하라는 대로 다했다. 그러자 보살님에게 어느 할머니가 접신되었다.
"니 새끼 치니까 이제야 나를 찾나? 차사고도 내가 냈다"
깜짝 놀랐다. 그해 내 생일날, 지인공방 앞에 차를 주차하고 공방으로 들어갔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밖에서 쾅! 하는 굉음이 들려 지인과 함께 밖으로 뛰어나갔다. 내 차가 혼자 굴러 주차되어 있는 앞차를 박은 거다.
그것도 평지에서. 무사고 18년 경력이 무색하리만큼 어이없는 사고에 말문이 막혔다. 신랑도 어이없어했다. 생일이니까 아무 말하지 않겠노라 했고 우리 둘 만 알고 비밀에 부쳤던 일이었는데 그 얘기를 하시니 진심 놀랐다. 놀라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당신을 찾지 않음에 괘씸했고 서운했다 하시며 이제는 아이를 낫게 해 주겠노라 하셨다. 당신이 아이의 귀에 대고 그리했다고 말씀하시는데 밉기도 하고 짜증도 올라왔다.
'왜 하필 내 딸이냐고요. 왜!'
방울소리에, 장구소리에 정신이 혼미 해질 때쯤 보살님이 다가와 울며 이야기했다.
"엄마.. "
'엄마? 이건 또 뭐지?' 온갖 생각들을 끌어모아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머리를 스친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셋째?'
그때부터 대성통곡했다. 셋째 임신에 너무 기뻐했고, 그래서 꼭 낳고 싶어 했던 내 아기였다.
"엄마 미워하지 않아. 엄마는 나 낳고 싶어 했잖아. 할머니가 아빠 힘들까 봐 그런 거잖아, 할머니 미워.'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에 눈물이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미안해, 미안해"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 만나줬으니 이제 효수 안 아프게 해 줄게, 효수 밥 많이 먹는 거 내가 그런 거야, 나는 엄마젖도 못 먹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설마'
아이가 아픈 뒤로 밥양이 엄청 늘었었다. 가족들이 함께 먹으려고 밥을 한솥 볶아두면 국그릇으로 3번씩 떠먹길래 토하겠다고 그만 먹으라고 말렸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그저 크려고 많이 먹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그것이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다니, 놀랍고 혼란스러웠다.
보살도, 나도 울음의 굿판을 치렀다. 이런 것을 믿지 않던 내가, 눈앞에서 나의 과거가 다 털리는 현실을 마주하니 무섭고 두려웠다.